팔불출 시아버지
서태원
팔불출이란 낱말을 한글사전에서 찾아보면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적어놓았다. 그 어리석은 사람 중에서도 으뜸가는 팔불출은 자식 자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 중에서도 한술 더 떠서 며느리 자랑하는 팔불출 시아버지가 되어본다.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에 맏아들이 제 여동생과 막내에게 자기가 있는 서울로 가족을 전부 초청해 함께 지내자며 제의를 했을 때 모두 찬성을 하며 좋다고 했단다. 그러나 늦게 퇴근해 이 소식을 들은 며느리가 달력을 보며 26일이 증조부님 기일인데 혼자 제사음식을 준비하시는 어머님 일손도 돕고 제사도 지내러 강릉으로 가면 좋겠다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서울로 오려던 가족들 모두가 의견을 모아 강릉으로 모두 내려온다는 딸내미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집에는 내 조부모님 내외분과 선친을 합쳐 세분의 제사가 있다. 요즘은 간소화라는 이름으로 제사를 두 분씩 합쳐 지낸다고들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아직 그런 간소화가 통용이 안 된다. 그래서 기일 날에 맞춰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단 새벽 제사를 저녁 제사로 시간만 옮겼을 뿐이다.
다른 집 보다 개방이 늦다며 투덜거리기도 하련만 군말 없이 따라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황금 같은 연휴를 시집에 와서 제사 준비를 하며 시어머니를 돕겠다는 며느리의 말이 얼마나 고맙던지 잘 키워 보내주신 사돈에게까지도 고마운 마음을 드리고 싶었다.
결혼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우리 며느리는 큰아들과 연애시절에도 매일 아침 모닝콜로 입사 시험 준비를 시켜 D그룹에 합격 시켰고, 결혼하고는 본인도 공부를 마저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대학원 진학을 했다. 본인이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우리 내외는 며느리의 대학원 입학금 명목으로 돈을 준비해놓았었는데, 준비한 돈을 주려니 달라는 말은 하지 않고 좀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장학생 선발고사에 합격하여 전 학년 등록금을 면제 받는다며 장학생 합격 증서를 들고 왔다.
대학원 합격하면 주려고 준비해 두었던 등록금을 장학생이 되었으니 고마운 생각에 축하금으로 주려고 하였으나 친정아버님도 오백만원을 축하금으로 주셨다며 극구 사양하는 며느리에게 “우리 며느리 고마워 주는 장학금이라”며 억지로 손에 쥐어주었다.
사돈양반한테 전화를 걸어 “자랑스러운 우리 며느리 시집 주셨으면 그만이지 시집 준 다음에도 이렇게 큰 선물을 하시느냐고?”고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시집가기 전부터 대학원가면 입학금 주려고 준비해두었었다며, “별말씀을 다 하신다”는 사돈님 답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저 오늘 부자 되었어요”라는 말로 며늘아기는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한다.
며느리는 두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과 유치원생이 될 때까지 아이들을 돌봐줄 여유로운 할머니가 한사람도 없어 아무도움도 받지 못 했다. 힘들어도 혼자서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박사학위 논문 통과를 기다리며 모교인 E대학에서 강의까지 맡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집안의 생일과 기일을 빠짐없이 챙기는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마음에는 항상 대견스럽기만 하다.
나는 우리 집 식구들 생일은 가족 전원이 참석할 수 있는 날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생일날이 들어 있는 주일의 일요일로 정해 보았다. 그랬더니 훨씬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화기애애한 생일잔치로 탈바꿈되었다.
생일행사도 집안의 어른이신 시할머니 생신과 시아버지인 내 생일은 강릉 집에서 한다. 생일 전 날인 토요일저녁에 횟집에서 전야제로 생일파티를 시작한다. 횟집에서 생일파티가 전야제로 시작하게 된 동기는 이렇다. 우리식구들은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육류를 좋아해서 쇠고기를 많이 장만하는데 며늘아기와 사위는 그 반대다.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생일 전날 저녁에 며늘아기와 처갓집을 찾아 온 사위를 위해 횟집에서 전야제를 하게 되었다.
전야제를 마치고 집에 오면 “아버지! 한판 해야지요!”라며 고스톱 판을 벌리는 딸내미 성화에 노름판이 벌어진다. “누구 돈을 따 먹겠다고 줄고를 하느냐?”고 말리는 집사람 말은 쇠귀에 경 읽기로 듣고, 밤이 깊어 가면서 돈을 딴 사람은 입가에 느긋한 미소를, 잃은 사람은 약속 시간을 연장하자고 떼를 쓴다. 아직도 고스톱을 할 줄 모르는 며늘아기는 시아버지의 쓰리 고에 신랑이 피박을 쓰는데도 좋다고 박수를 치며 응원에 열을 올리는 며늘아기가 천진스럽기만 하다.
생일잔치가 끝나고 갈 준비를 할 시간이지만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처럼 아직도 고부간에 못 다한 이야기가 산처럼 남아있는지 일어설 줄 모른다, 대관령 산허리의 저녁노을이 작별의 시간을 재촉한다.
“할아버지 아이스크림 뽀뽀”하고 제비새끼 같이 내밀던 손주들의 입, 할아버지 귀 잡고 쪽하며 입 맞추는 손주가 귀여워 나는 주머니에서 돈 한 푼 꺼내 “아이스크림 사 먹어라”하고 손에 쥐어준다. 그동안은 아이스크림 뽀뽀하는 녀석이 한명이었는데 이젠 두 명으로 늘었으니 기쁨도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생일이 며칠 남지 않은 안사람은 아들 며느리가 재촉하는 바람에 서울로 함께 떠나기로 한다. 자기 생일날 손수 음식을 만들기 싫다며 아들네 집에 가서 생일을 지내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다음날 나도 가계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서울로 가서 집사람과 합류하기로 했다.
큰 아들이 챙겨주는 안사람의 생일날에는 온 가족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함께하고 마당놀이 공연장도 찾는다. 저녁 식사는 식도락가인 사위가 모셔야한다며 골목골목 누벼서 아늑한 음식점에 자리를 잡는다.
다음 날,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며늘아기는 어머니! 생일 선물로 뭘 사드려야 좋아하실지 몰라 선물 준비를 못 했다며 시어머니 손에 봉투를 쥐어준다. 그러면 아기야! 네 마음만으로도 좋은 선물 받았다며 사양하는 시어머니지만 막무가내다. 안사람은 손주들이 주는 아이스크림 뽀뽀를 받으며 차에 오른다.
차창을 잡은 며느리 “먼 길 오시느라 힘드셨는데 어렵게 오늘 내려가지 마시고 주무시고 내일 가시면 좋겠다.”는 간곡한 말을 뒤로하고 떠난다. 시아버지의 머릿속엔 즐거웠던 서울 나들이의 추억을 가득 담아 준 며늘아기, 가족의 화목을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는 며늘아기를 업어 라도 주고 싶다.
오늘은 사랑스러운 며늘아기를 한껏 자랑하고 싶은 팔불출 시아버지가 되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