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위제(위나라 황제)가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려고 세수대야에 물을 담았다. 그런데 맑은 물 위로 여덟 개의 수려한 암봉이 병풍처럼 일렬로 비치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황제는 그 장엄하고 기이한 풍경에 반해 화공들에게 명하여 대야 속에 비친 산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게 했다. 그리고 이 신령스러운 산이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지 찾기 위해 신하들을 동방으로 파견했다.
전국의 명산을 찾아 헤매던 신하들은 바다 건너 조선의 동남쪽 끝인 고흥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황제의 세수대야 속 그림과 토시 하나 틀리지 않는 여덟 봉우리를 발견했다. 황제는 이 사실을 보고받고 "중국까지 그 그림자가 비친 산"이라 하여 '여덟 팔(八)' 자와 '그림자 영(影)' 자를 써서 팔영산(八影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팔영산은 평지나 바다 근처에서 바라보면 여덟 개의 기암괴석 봉우리가 일렬로 병풍처럼 서 있어 시각적인 강렬함을 준다. 고흥반도는 예로부터 중국 및 일본을 오가던 서남해안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다. 중국 상인이나 사신들이 바다 위에서 바라본 팔영산의 기괴하고 신령한 모습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전설이 더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스러운 나무 곡선을 살린 약간의 배흘림 기둥과 덤벙주초(자연석 그로대로 사용한 징검다리 형태의 초석)를 사용하여 멋을 더했다. 내부에는 4개의 높은 기둥(고주)을 세우고, 불단을 조성한 뒤 그 위에 화려하게 장식된 닫집을 올렸으며 천장은 층단형 우물천장으로 마무리했다.
첫댓글 능가사가 있는 산 정상부에 병풍처럼 일렬로 이어져 있는 8개의 암봉(유영봉, 성주봉, 생황봉, 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 깃대봉)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팔영산(八影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 산둥성에서 보면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가 그림처럼 비친다고 하여 '그림자 영(影)' 자를 쓴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팔영산(八影山) 이름에 담긴 '중국 산동성 세수대야 전설'은 산의 독특한 지형과 한중 문화 교류의 상징성이 결합한 흥미로운 대표 민담이다.
옛날 중국 위제(위나라 황제)가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려고 세수대야에 물을 담았다. 그런데 맑은 물 위로 여덟 개의 수려한 암봉이 병풍처럼 일렬로 비치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황제는 그 장엄하고 기이한 풍경에 반해 화공들에게 명하여 대야 속에 비친 산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게 했다. 그리고 이 신령스러운 산이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지 찾기 위해 신하들을 동방으로 파견했다.
전국의 명산을 찾아 헤매던 신하들은 바다 건너 조선의 동남쪽 끝인 고흥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황제의 세수대야 속 그림과 토시 하나 틀리지 않는 여덟 봉우리를 발견했다. 황제는 이 사실을 보고받고 "중국까지 그 그림자가 비친 산"이라 하여 '여덟 팔(八)' 자와 '그림자 영(影)' 자를 써서 팔영산(八影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팔영산은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팔봉산(八峰山)이라 불렸다.
지리적으로 산동성에서 약 600km 이상 떨어진 고흥의 산 그림자가 실제로 비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 설화가 만들어지고 정착된 데에는 몇 가지 인문·지리적 배경이 있다.
팔영산은 평지나 바다 근처에서 바라보면 여덟 개의 기암괴석 봉우리가 일렬로 병풍처럼 서 있어 시각적인 강렬함을 준다.
고흥반도는 예로부터 중국 및 일본을 오가던 서남해안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다. 중국 상인이나 사신들이 바다 위에서 바라본 팔영산의 기괴하고 신령한 모습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전설이 더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문헌에 '팔영산'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면서, 당시에 이 기이한 전설과 함께 공식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능가사 대웅전(보물 제1307호)은 18세기 중엽(조선 후기)에 중건된 불전으로, 호남 지역 건축 특유의 화려함과 장식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목조건축물이다.
대부분의 사찰 불전이 남향이나 동향을 바라보는 것과 달리, 능가사 대웅전은 북향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평지사찰 구조에서 사찰 진입로 및 입구(사천왕문 등)의 배치 동선에 맞추어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사찰 대웅전은 주로 정면 3칸 규모가 많은 데 비해, 능가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커다란 규모를 자랑한다.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어 매우 웅장하고 안정감 있는 형태를 띤다.
건물의 지붕 무게를 받치는 공포(栱包)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배치한 다포계(外3출목, 內4출목) 양식을 취하고 있다.
정면 기둥머리에 공포를 받치는 안초공(按草栱) 부재를 사용하고, 기둥 위에 용의 머리(용두)를 입체적으로 조각해 화려하게 장식했다.
건물 내·외부 공포 끝단에 연꽃 봉오리(연봉) 등의 문양을 화려하게 깎아 넣었다. 이는 영광 불갑사 대웅전, 부안 개암사 대웅전과 함께 18세기 호남 지역 불전 건축의 전형적인 장식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나무 곡선을 살린 약간의 배흘림 기둥과 덤벙주초(자연석 그로대로 사용한 징검다리 형태의 초석)를 사용하여 멋을 더했다.
내부에는 4개의 높은 기둥(고주)을 세우고, 불단을 조성한 뒤 그 위에 화려하게 장식된 닫집을 올렸으며 천장은 층단형 우물천장으로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