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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1. 요한복음의 목적은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1)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3:14-15; 요 20:31).
2) 기독교의 구원은 죄사함에 그치지 않으며, 그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내용으로 하게 된다.
3) 이 영생은 하나님과 그 아들과 더불어 갖는 사귐과 누림이며(17:3), 궁극적으로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17:24).
2. 요한복음은 선재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한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 요한복음의 태초는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before the beginning of time), 곧 '창세전'을 의미한다.
2) 창세전 태초에 말씀(헬, 로고스)이 있었다!
- 신약에서 말씀(로고스)은 아들이자 동시에 그가 전한 메시지로서 복음이다.
- 여기에서 로고스(말씀)는 창세전부터 현존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
3) 요한일서에서 이 말씀은 생명을 주는 말씀이며, 아들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생명을 주는 말씀)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3.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1) 요 1:1의 ‘함께’는 1:18의 ‘품속’과 같은 뜻이다(수미쌍관, inclusio).
- 곧 아들은 아버지의 품속에 거함으로 아버지와 함께 한 것이다.
2) 그리고 이 같은 ‘함께’ 또는 ‘품속’안에는 권위와 질서가 존재한다.
- 아버지가 아들보다 크시다(14:28;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3) 하위권위인 아들은 상위권위인 아버지께 복종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였다(15:10).
- 상위권위인 아버지는 복종하는 아들을 사랑하여 그에게 영광을 주셨다(17:24).
- 여기서 영광은 아버지의 ‘본질의 계시’ 또는 ‘존재의 드러남’을 뜻한다(1:18).
4) 아들은 아버지께 복종하는 사랑을,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하신다.
4. 하나님 품속에 있는 말씀(아들)이 세상(우주)을 창조하셨고 그가 없이는 지은 바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 생명을 주는 말씀은 창조주다. 예수님의 본래 자리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2) 예수님에 의해 만물이 운행되고, 유지되고, 열매를 맺고 쇠퇴한다.
5.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4절). 빛이 어둠 속에 비치니 어둠이 빛을 깨닫지(이해하지) 못하였다(또는 이기지 못하였다)(5절).
1) 아들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 창조전에 성부께서 하신일은 성부 속에 있는 생명을 성자에게 주어 그 속에 있게 한 것이다.
3) 창세전에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사람에게 주기로 약속하셨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4)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한 이유는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다.
6.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인 것은 구원론적 측면을 말한다.
1) 이 빛은 피조된 빛이 아니며(창 1:3), 광명체로서 빛은 더더욱 아니다(창 1:14).
2) 이 빛은 창세전부터 현존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다(고후 4:6).
- 이 빛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이며 생명을 주는 말씀(생명의 말씀)이다.
3) 그러나 어둠에 속한 세상에 있는 사람은 그 영광을 아는 빛을 깨닫지 못한다.
- 깨닫다(카타람바네인) ‘이기다, 잡다’의 뜻이며 중간태로 쓰일 때에는 ‘이해하다, 마음으로 파악하다’의 뜻이다.
4) 어둠은 빛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 그 빛을 이기지도 못한다(끄지도 못한다).
7. 우리는 “어둠”이었다. 어둠은 빛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빛을 이기지도 못한다.
1) 우리의 힘으로는 생명을 주는 복음을 깨달을 수 없지만, 그 복음을 이기지도 못한다.
2) 그 복음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둠, 견고한 진, 고집과 싸워서 결국은 이긴다.
3) 그 빛은 인간의 지식과 힘으로 알 수 없고 오직 성령을 통해서 비추어진다(요 3:34; 고전 2:10).
8. 말씀 앞에 나온 것은 곧 이 빛 앞에 나온 것이다.
1) 우리는 만물 위, 영원하신 하나님 품속에 거하고 싶으나 어둠인 우리는 그 영광과 생명을 알지 못한다.
2) 그러나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성령님은 계시로 이 빛을 알게 하신다.
- 그 빛이 우리의 어두움을 이기고, 우리의 영을 빛으로 밝혀 주신다.
3) 자연세계에서 빛은 항상 어두움을 이긴다. 그리고 이것은 영적인 계시에 대한 그림자다.
- 성령님이 비추시는 빛(생명, 생명을 주는 말씀)은 우리의 어둠(완악함, 고집, 세상 사랑, 자아추구)을 이기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의 교제에 이르게 한다.
4) 이것이 우리가 말씀 앞에 나온 이유이며, 요한복음을 묵상하는 이유다.
9. 성령님을 통하여 비추어지는 빛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 빛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이 빛을 증거할 사람을 보내신다.
1) 그의 이름은 (세례) 요한이었다(6절).
2) 이 사람은 증거하러 왔다. 빛에 대하여 증거함으로 모든 사람이 자기를 통하여 믿게 하려하였다(7절). 이 사람 요한은 빛이 아니다. 그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왔을 뿐이다(8절).
10.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요한처럼 빛에 대하여 증거하는 사람을 우리에게 보내신다.
1)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통하여 생명을 주는 빛을 믿게 하시려고 사람을 보낸다.
2) 복음생명캠프도 하나님이 “생명을 주는 빛을 믿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마련한 잔치다.
11. 복음을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적인 계시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1)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인데, 복음의 빛이 비추어져야만 믿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2) 빛의 비추임을 받으려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나와야 한다.
3) 이성과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모함과 순종이다.
12. 생명을 주는 복음이 이론이라면 듣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 그러나 생명을 주는 복음은 “창세전 성자”이며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2) 창조주 하나님을 어찌 이해하여 알겠는가?
- 창조주 하나님은 성령으로만 알며, 우리의 순종과 가난한 심령으로만 알게 된다.
13.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었다”고 하였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1)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이신다.
2) 그 빛은 어둠을 이기고, 사단의 방해를 이기고 우리의 마음을 향해 비추고 계신다.
3) 말씀묵상은 그 빛 앞에 머무르는 시간이다. 그 빛이 우리 마음을 비추시도록...
◈ 나의 묵상
2005년 요한복음 세미나를 듣고 마음이 두근거렸다. 창세전 하나님과 생명에 대한 말씀이 놀라웠다. 하지만 영으로 성령으로 생명을 알지 못함으로 복음을 통해 생명에 이르지 못하였다. 복음에 그쳤고, 생명을 사모할 뿐, 생명을 알지 못하였다.
15년이 지났다. 복음생명캠프를 계속 참여해도 그 생명을 알지 못하였다. 참으로 성령이 비추이지 아니하면 알 수 없는 빛(생명)이다. 창조주 하나님, 창세전 성자를 어찌 내 힘으로 알겠는가? 그런데 감사하다. 빛(생명)이 어둠을 이긴다. 내 안에 있는 어두움, 내 안에 있는 가시, 내 안의 견고한 진, 내 안에 있는 탐심과 자아추구....그 모든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 그 빛이 어둠을 이기고 비추일 것이다.
그리고 빛이 어둠을 이기는 날, 어둠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모든 벌레들이 다 도망갈 것이다. 어둠안에서 왕노릇하던 모든 악한 것들이 떠나갈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나에게 비추신다. 그리고 나는 복음을 통하여 그 빛으로 나아간다. 사실 나는 그 빛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모른다. 다만, 거기서 만나자고 하신 하나님을 알고자 말씀앞에 머물뿐이다. 성령께서 맹인과 같은 나를 이끌어 그 빛앞에 세울 것을 믿으며 말씀앞에 나아간다.
나는 나의 어두움을 이기지 못한다. 내 마음안에 있는 어둠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은 내 안의 어두움을 이긴다. 할렐루야!!! 주님이 하실 것이다. 창세전부터 나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하신 그분의 지혜와 능력으로 주님이 하실 것이다. 내 안의 어두움을 가지고 말씀앞에 나아간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을 가지고 십자가로 나아간다.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의 어두움을 용납하시고 사랑하시고 품으신 주님께 나아간다.
◈ 묵상 기도
주님, 창세전에 계신 말씀, 창세전에 계신 빛, 그 빛을 알기 원합니다. 내 어둠을 처리하고 오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그 어둠을 가지고 빛으로 나아오라고 하신 그 사랑과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내 속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이 너무 많습니다. 아니...나 자체가 어둠입니다. 주님, 그러나 이 어둠을 멸시하고 외면하고 무시하지 아니하시고, 이 어둠을 향하여 오신 그 사랑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이 어두움에 빛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 주님, 제 영혼에 빛을 비추소서. 제 안에 감추인 어둠까지 빛가운데 드러내시어 어둠에 속한 모든 것은 소멸되고, 빛가운데 있는 생명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요한복음을 묵상하면서 생명에 대한 계시가 열어지게 하시고,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알게 하옵소서. 생명을 아는 자들을 하나 둘씩 일으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시는 생명의 공동체가 되어져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신년초 요한복음 통해 생명의 빛이 더욱 비추어지길 기도합니다.
매일의 신실한 나눔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