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 자비롭고 정의로운 구세주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감옥에 갇혀서 죽음을 직감한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시켜 예수님께 여쭙게 한 말이다. 예수님이 그분인 줄 잘 알고 있었지만 자기 소명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불안해졌던 거 같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메시아 그리스도 시대가 열리면 악인은 모두 심판을 받아 추풍낙엽처럼 다 떨어져 나갈 줄 알았던 거 같다. 요한은 메시아를 이렇게 예언했다.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마태 3,12) 하느님의 정의가 늦가을 서리 내리는 거처럼 바로 여기서 실현되는 줄 알았었나 보다.
악인을 사적으로 속 시원하게 응징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심심치 않게 상영된다. 공권력 집행은 더디고, 거기에 부정부패로 심판과 징벌도 유야무야하는 거 같으니 답답한 마음에 그런 드라마라도 보면서 위안을 삼으라는 거 같다. 1년 전 황당한 장면을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봤고 그 일로 국민 대다수가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 아직도 1차 선고도 내려지지 않았다. 거기에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불길한 예측까지 들린다. 그런데 올해 초에도 그렇게 불안하고 화나고 그랬는데, 그들은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나머지 일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으면서도 그 시간이 지체되니 다시 불안해진다.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은 그렇다 아니다 대신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을 기록한 예언서 말씀을 들려주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5-6) 멋지다. 그것은 예수님이 실제로 일으키신 기적들이었다. 하느님 말씀이 말 그대로 남김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신 것이다. ‘그렇다.’보다 더 확고한 대답이다.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대답이다.
악인들, 나쁜 사람들, 얄미운 사람들을 단죄하고 복수하고 벌주고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천주교 신자는 그럴 수 없다. 아니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 우리는 남을 심판하고 단죄할 권한은 없고 사랑해야 할 의무,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마태 5,44)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참으로 고되고 어려운 일이다. 복수하고 벌주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래도 선하신 하느님을 믿고 그분이 주신 계명을 묵묵히 따라야 하기 때문이겠다. 하느님의 선함과 정의로움을 믿고 그분의 충실함을 신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복음서는 전하지 않지만 예수님의 그 대답을 전해 들은 요한은 마지막 회개, 심판하고 단죄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지극히 자비로운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리며 기쁘게 불의한 권력의 칼을 받았을 거다. 김대건 신부님과 다른 순교 성인들이 그랬던 거처럼 말이다. 예수님께 극진한 칭송을 받은 세례자 요한도 그렇게 흔들리고 의심했으니 우리가 흔들리고 불안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심판과 단죄는 정의로운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늘도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야겠다.(마태 6,33)
예수님, 구약에서 하느님은 백성을 대신해서 싸우고 전쟁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저희는 나서서 싸우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으시고 늘 한결같은 주님께 저의 모든 송사와 복수까지 맡깁니다. 저는 일상 안에서 하느님 뜻을 찾는 일만 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 작은 입처럼 예 할 것에 예, 아니오 할 것에 아니오만 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