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초여름의 북한산을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
오르다 유독 눈에 띄는 예쁜 꽃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후일 검색해 보니, 그 꽃을 피운 키 작은 나무 이름이
누리장나무, 속칭 개똥나무, 방귀나무라 하였습니다.
꽃은 예쁜데 줄기와 잎에서 나는 냄새가 고약해서
붙여진 별명이라더군요.
우리 조상님들은 나무나 꽃의 이름을 붙일 때
그저 있는 그대로, 느낌 그대로 붙여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나무나 꽃이 알면 그 마음 상하지 않을까 싶어
꾸며둔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오늘은 개똥나무 이야기 들려 드리겠습니다.
<개똥나무>
"심봤다~~~~"
깊은 산속, 심마니의 외침이 폭포 소리보다 더 크게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네가 산삼이었어? 몇십 년을 가까이 살았어도 몰랐네..."
"나도 내가 산삼인 줄은 모르고 살았어. 이제 나도
쓰일 곳이 생겼나 보다..."
심마니의 부들부들 떨리는 절을 받던 산삼이 가까이
이웃하며 살아온 개똥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산속의 모든 나무와 풀들이 다 쓰임새가 있는데,
몇십 년을 살아도 쓰임새가 없이 살던 개똥나무와
산삼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며 오랜 세월
가깝게 살아왔는데, 어둡고 습기 많은 곳에 살며
늦봄이면 빨간 꽃 하나 수줍게 피우며 살던 그 풀이
산삼이라니...
"잘 가... 너는 이제 쓰일 데가 생겨 참 좋겠다."
"그래. 잘 있어... 너에게도 곧 쓰일 일이 생길 거야."
산삼은 드디어 쓰일 곳이 생겼다며 좋아라 하고
떠났습니다. 산삼이 떠나자 개똥나무는 마침내
쓰임새를 찾은 산삼이 부러운 반면에 쓰임새가 없는
자신의 신세는 더욱 외롭고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개똥나무가 뿌리를 내린 곳은 불행하게도 큰 폭포 위,
약간 경사진 넓은 바위의 폭포 쪽 모서리였습니다.
흙이래야 조금밖에 없다 보니 개똥나무는 살아남기
위해서 바위틈을 뚫으며 모질게 뿌리를 내려야만
했습니다. 몇십 년을 살았지만 워낙 영양분이 별로
없는 곳이라 뿌리는 튼튼했지만 줄기는 아주 보잘것
없이 조금밖에 자라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도대체 저를 왜 이런 곳에서 살게 만들었어요."
물길 건너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을 보며 억울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허허~ 세상 만물은 다 쓰임새가 있느니라.
기다리다 보면 너도 곧 쓰임새가 생길 거야."
부처님이 자상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저 만들 때요... 부처님 졸았지요?"
"허허~ 아니래두.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이름도 개똥나무라니 원~ 이게 뭐예요?"
개똥나무는 볼멘소리로 불퉁하게 말하며 씩씩거렸습니다.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 물이 불어 개똥나무가 사는
바위도 물에 축축하게 젖었습니다.
저 아래쪽 폭포는 모처럼의 큰비로 물이 불어나자
더욱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빠~ 엄마~ 같이 가요. 아유 힘들어~"
예쁜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의 아빠 엄마가 산행을
나왔나 봅니다.
폭포도 있고, 그 폭포 위 바위에 새겨진 부처도 있어서
가끔 사람들이 산행을 오면 들리는 곳이었습니다.
"자~ 비가 와서 바위가 미끄러우니 엄마 손을
잡고 건너자~"
아빠가 먼저 건너가고 여자아이 엄마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물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조심해요~ 여보. 바위가 많이 미끄러워요~"
먼저 건너간 아빠가 걱정스러워 말을 건네는 순간,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가 바위 위에서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엄마~! 아빠~! 아악~!!"
아이 엄마가 넘어지며 아이의 손을 놓쳤나 봅니다.
엄마 손을 놓친 아이는 뭔가 잡을 것을 찾아
허둥댔지만 비에 젖어 미끌미끌한 바위 위에는
아무것도 잡을 게 없었습니다.
"날 잡아~!!"
처음부터 아이의 가족들을 부럽게 지켜보던
개똥나무는 아이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오자
아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 외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바위틈에 박은 뿌리에 온 힘을 주고
보잘것없이 자란 줄기를 아이를 향해 최대한 내뻗었습니다.
다행히 미끄러져 내려오던 아이의 손에 개똥나무
줄기가 닿았습니다. 개똥나무는 뿌리가 뽑힐 듯
힘들었지만 온 힘을 다해 버텼습니다.
그간 몇십 년을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보람이
있었던지 그런대로 견딜만했습니다.
놀라서 달려온 아이의 아빠 엄마가 개똥나무줄기를
붙잡고 매달린 아이를 구하고 난 다음 놀란 마음이
진정되자 자세를 고치더니 개똥나무를 향해 넙죽
절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이의 목숨을 구해주신
개똥나무님 너무 고맙습니다."
갑작스러운 절을 받아 얼굴이 붉어진 개똥나무가
물 건너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을 바라보니 부처님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아이를 구한 개똥나무는 더 이상 자신의 신세가
외롭거나 처량하지가 않았습니다.
개똥나무란 이름에도 속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날 이후 더욱 열심히 바위틈에 깊이
뿌리를 박으며 살았습니다.
혹 또 다른 사람을 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서요...
* 개똥나무꽃의 꽃말은 '깨끗한 사랑' 이랍니다.
꽃말이 아름다워 참 다행입니다.
첫댓글 정겨운 글입니다.
휴식 취하며 개똥나무 닮은 나무를 보셨나 봅니다
제 집 뒤뜰에는 우리말로 말채나무라고 하는 나무가 아주 많아요
추운 지방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말채찍처럼 생겼어요
오래전에 여의도 샛강에서 몇그루가 자생한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dogwood 라고 하니 개나무란 말이지요
서양 사람들도 우리랑 느낌 그대로 이름을 붙이는 모양이지만
개하고는 전혀 연관없어 보이네요
저는 우리꽃과 채소과 그리워 이번에 몇가지 가지고 왔습니다
개똥나무는 2m 정도 자란다는데,
말씀하신 말채나무는 10m 정도
자라는 키 큰 나무라네요. ㅎ
꼭 우리 조상님들만 그렇게 이름
붙이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ㅎㅎ
꽃과 채소씨 가져오셨다더니...
캐나다 흙에도 잘 적응해서
단풍님과 가족분들 사시사철
기쁨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개똥나무 이야기를 읽으며
세상 모든 사람이나 사물은 공평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대로 쓰임을 받고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 쓰임을 받 듯
사람들이 귀하게 생각하는 산삼이나
이름조차 미천한 개똥나무도 나름 다 쓰임을
받는다는 것을 글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마음자리 님 글 읽으면서 전 왜 아직도
개똥나무를 보지못했나
싶어요. 쥐똥나무는 그 향기가 좋아서
잘 알고 있는데요.ㅎ
고운 글 잘읽었습니다.
저는 사실 꽃이나 나무 이름 거의
모릅니다. ㅎㅎ
그런데 검색하다 보면 그 이름이나
전설들이 귀에 걸리는 것들이
있어요. ㅎ
그러면 이름을 새로 지을 수는 없으니
이야기나 새 전설들을 만들어보곤 합니다.
마음을 열고보면 쓰임이 없는 생명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자리님. 이글 동화창작 공모하면 좋겠어요. 너무 잘 썼어요
어? 푸른비님.
지금 포르투칼 여행 중이시죠?
ㅎㅎ 여행 정리하기도 바쁘실 텐데,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만에 마음 따스한 동화를
읽네요
오래전 모난 돌이란 글을 썼는데 그 돌이 다이어먼드
였다는~~^^
아침에 마음정화된 글을
보게 되어 운이 좋네요
고맙습니다 ~^^
요즘 제가 길 다니기 바빠
수필방에만 간신히 들렀다
가다보니, 갑장 글벗님 안부도
제대로 모르고 살았네요.
반갑습니다.
그 글, 저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아름문학 때 올리셨던 글인가요?
늘 평화님의 세상을 보는 시선에
늘 공감하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된
쥐똥나무는 사랑스러운 나무입니다.
운치 만점이지요.
이전에 대문 앞에 한 그루 있었네요.
개똥나무는 모르는데요.
검색해 봐야겠습니다.
고운 눈으로 보면 세상이
다 아름답구나 합니다.
좋은 이름도 많구만...
쥐똥나무 개똥나무... 왜들 그렇게
이름들을 지으셨는지. ㅎㅎ
저는 쥐똥나무 찾아보겠습니다.
압니까?
혹 또 다른 이야기가 풀려 나올지.
오랜만에 마음자리님의 따스한 동화한편 보며 제 마음 또한 봄날이 되었습니다.
선한 마음의눈으로 보아 주시는 마음자리님.
글 잘 읽었습니다.
선하다 말씀해주시는 그 마음이
참 고맙습니다. ㅎ
대체로 곱고 예쁜 이름을 원하시지만,
우리 어릴 적에 아들 이름을 똥개, 개똥 등
이름을 보았습니다.(학교 갈 때 까지)
대체로 자손이 귀한 집 아들을 아무렇게 부르도록
그 댁 부모님의 자식 사랑 방법입니다.
개똥나무를 동화로 만드신 마음자리님의
평소 심성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쓰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따스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릴 때 집에서 불리던 이름을
학교에 가져와 놀려먹던 같은 동네
아이들 때문에 속상해하던 코흘리개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그때 생각하면 웃고 있겠지요?
세상 만물은 정말 다 그 쓰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똥나무 몰라서 검색해보니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는 나무였네요.
본 듯도 하고 못 본 것 같기도 하네요.
척박한 바위틈을 뚫고 자라는
나무나 꽃을 보면
자연의 생명력에
안쓰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해서
눈길이 더 가더라구요.
산삼을 부러워하던 개똥나무가
어린아이의 생명을 구했다니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음을 깨우치게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예쁜 꽃 사진을 같이 올리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린하님께서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예쁘지요?
글 고맙습니다.
개똥나무...
키가 2 ~3m 정도로...
목재와 뿌리는 한약재로 사용하지요.
일전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단지 쓰레기장에 한 뼘 길이의 목재가 잔뜩 내다버려져 있대요.
개똥나무 목재.
아깝더군요.
솥 안에 넣고는 물 끓여서 마시면 건강에 좋은데도.... 내다버렸대요.
제 시골 선산 아래에 잔뜩 있는 누리장나무.
꽃 피고 열매 맺으면 그런대로 예쁘지요.
'개똥나무'를 '누리장나무'라고 하지요.
개똥나무를 나타내는 말 :
'취동(臭桐), 추엽(秋葉), 취목(臭木), 취오동(臭梧桐), 해동(海桐), 해주상산(海州常山), 명목단수(冥牧丹樹), 누루장나무, 포화동,
취수, 야취포, 취추, 추골풍, 구릿대나무, 노나무, 개나무, 깨타리, 이라리나무, 누룬나무, 개똥나무, 누리개나무, 누린내나무'
글 좋아서 엄지 척!
늘 글로 소개하시던 그 고향마을에
개똥나무가 잔뜩 자리하고 있군요.
감사합니다.
@마음자리 예.
덧글 고맙습니다.
서낭댕이 바로 위에 있는 선산이지요.
야트막한 선산에 오르는 고갯길 길목에 누리장나무가 있어서... 냄새도 독특하고....
선산에 오르는 길목에서 서해안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지요. 대천해수욕장, 원산도, 외연도로 가는 서해가 훤히 내려다보이지요.
갯바람도 쏴아 불어오고.
올 4월에 고향에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개똥나무, 쥐똥나무, 산벚나무, 산앵두나무에 자잘한 열매가 맺기 시작하겠지요.
송화가루 심하게 날리는 4월 말 ~ 5월.... 고향에 내려가면 눈병이 도져서.... 그래도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무창포해수욕장 어항에도 들러서 생선, 갯조개 등도 들여다봐야겠습니다.
마음자리님은
이미 작가이십니다.
개똥나무꽃의 꽃말
깨끗한 사랑을 생각하면서
저도 오늘 하루 깔끔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저 글쓰기가 좋아 글 씁니다. ㅎ
작가는 괜히 어깨가 무거워지는
이름입니다. 감사합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더니
이름이 개똥같지만 사람들 목숨을 건졌군요.
참 재미 있네요.ㅎ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은 목숨을 중히 여겼는데
그래서 그러라고 이름을 천하게 짓기도 했어요.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오래 장수하라고 일부러
천한 이름을 지어 불렀다구요.
사춘기 때, 나는 왜 무책임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
개똥나무 이름을 들으니 '며느리 밑씻개' 가 떠올라요.
특징이 이름이 되기도 하지만, 이름이 운명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 여여하시군요.
좋은 이름 지어주어도 될 텐데...
어느 조상님이 지으셨는지... ㅎㅎ
뭐든 사로잡히거나 붙잡고 놓지 못하면
운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