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귀순용사 오청성씨의 목숨을 살려준
이국종 교수.
늘 그를 매스컴으로 볼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왜저렇게 맨날 독립투사 같은 표정을 짖고 있을까?
의사 생활을 꽤오래 한것같은데,왜 저렇게 부(富)티가 안날까?
그를 한눈에 알아볼수 있는글을 보게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한쪽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2급
국가 유공자 였다.
아버지는 그에게 달갑지 않은 이름이었다.
"병신의 아들"이라는 친구들의 놀림 때문이었다.
가난은 그림자처럼 그를 둘러 쌋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때마다
술의힘을 빌려말했다."아들아 미안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학교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는데....
치료를받으려고 병원을찿아 국가유공자 의료카드를 내밀면
간호사들의 반응이 싸늘했슴니다.
다른병원에 가보라는말을 들었고 몇몇 병원을 돌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슴니다.
이런일들을 겪으며,이사회가 장애인들과 그가족들에게
얼마나 냉랭하고,비정한곳인지 잘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을 받아줄 다른 병원을 찿던중 자기 삶을 바꿔줄
의사를만나게된다.
"이 화산"이라는 이름의 외과의사인데,
어린 이국종이 내민 의료복지 카드를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그는 진료비도 받지 않고,정성껏 치료한후
마음을 담아서 이렇게 격려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그 한마디가 이국종의 삶을 결정했다.
"의사가 되어서 가난한 사람을돕자, 아픈사람을 위해서
봉사하며 살자"
그를대표하는 삶의 원칙도 그때탄생했다.
"환자는 돈낸만큼이 아니라,아픈만큼 치료받아야한다"
어린 이국종이내민 의료복지 카드를보며,
"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라는 말을한 의사가 업었다면,우리가 아는 이국종이라는
의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러자료를읽으며,왜 그가 늘 독립투사와같은 표정을지었는지,
많은 의사 경력에불구하고 왜 그에게서 부(富)티가 나지 않았는지
의문을풀게 되었다.(끝)
*이글은 삶의 이야기방에 올렸던글이며,친구후배들과 같이
공유하고 싶어서 돼지띠방에 다시한번올림니다.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람니다.
첫댓글 몇 번을 들어도 가슴 뭉쿨한 감동이 전해지는 글입니다.
진정한 한국의 슈바이처 존경하는 이 국종 님입니다.
노방초님~~나는 저글을 작성하면서도 몇번이고 울컥했답니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지요.
추운데....잘지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댓글 고맙슴니다.
수없이 읽고 수없이 글을봐도 가슴 뭉클하고
울컥한 마음은 그대롭니다 이종국 선생님 건강하시고 우리겯에 오래오래
계시길 바랄뿐입니다.
이종국으로물렀던 본질은같슴니다.
체리꽃님은 워낙 진지한 분이니까요
이국종교수님 진짜 한국의 슈바이쳐 같은분입니다.
윌리스님 반갑습니다
너무 좋은 글주셔서 너무 울컥했나봐요
이국종 선생님을
이종국 선생님이라 했네요 나이탖이 겠지하고 봐주시기요.
체리꽃님~~이름을 잠시 착각한들 그게무슨대수입니까?
내용이 중요할분이지요.
요즘 체리꽃님의 일과가 많이 바쁜듯합니다.
추위에 감기조심하길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