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주
한 신도가 무언가 급한 마음이 든 것인지,
마치 달려오듯 다급하게 나를 찾아왔다.
"스님, 큰일이 생겼습니다!
찜질방에서 여러 보살과 어울려 덕담을 나누는 중에 문득 스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스님께서 기(氣)를 잘 쓰시는 분이라
했더니, 어느 보살님이 그런 스님이 계신다면 자기 별장을
시주할 테니 공기 좋은 그곳에서 중생을 제도하시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대답했다.
"듣고 보니 전혀 급한 일이 아니구나.
보살도 생각을 해보아라.
이 세상에 자기 것을 남에게 그냥 준다니, 아마도 미친 사람의
헛소리일 것이다. 내가 겪어 알기로는 석가나 공자 같은
성인이라면 남에게 베풀었다는 말을 들었으나, 일반 중생이
어찌 자기 것을 선뜻 남에게 준단 말이냐.
정신 차리라고 전해드려라."
얼마 뒤,
그 보살은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며 사업가인
오빠를 증언자로 세웠다. 그리고 즉시 명의를 넘기겠으니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신도들의 간곡한 독려에 결국 만남을 가졌다.
장소는 도곡동의 공기 좋은 곳으로,
마당은 오백 평에 건물은 백 평이나 되는 50억 상당의 요지였다.
나는 오빠와 함께 참석한 그 보살을 보고 한마디 건넸다.
"보살님, 시주하고 싶다면 공부가 필요한 젊은 스님에게
하시는 게 좋습니다. 나는 산전수전 다 겪어서 이런 50억 시주를
받고 당신에게 구속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대개 자기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있어도,
주었다는 인연으로 관심을 놓지 않고 관여하거나 간섭하기
마련이지요. 나는 주고 나서 내가 팔아먹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시주를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내가 관상을 보니 당신의 기색이 맑지 않습니다.
마음이 맑으면 기색도 맑은 법인데, 기색이 어두우면 필시 병이
있을 터이니 나와 인연이라 생각한다면 나중에 나에게 들러 병이나
하나 고쳐 가세요."
그렇게 자리를 뜬 후 헤어졌고, 큰 기대를 했던 신도들은 낙담했다.
얼마 뒤,
그 보살이 청담동 포교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불단에 인사하는 예법을 보니 영락없는 불자였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느냐고 물으니 그녀가 답했다.
"왼쪽 발등이 부어서 일 년이 넘도록 붓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침도 맞고 약도 먹어보았으나 차도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붓기는 빠져야 하는데 일 년 넘게 그대로이니,
혹여나 사람들이 미친 사람 취급할까 봐 한여름에도 가죽 장화를
신고 다닙니다."
나는 "잘 왔다. 그것은 내가 잘하는 일이니 오늘 고쳐 가라"고
말한 뒤 기 체험을 해주고 돌려보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그녀가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웠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을
때였다. 문득 발을 쳐다보니 그토록 괴롭히던 붓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고 한다. 그제야 그녀는 "그 스님이 정말 고승이었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보살은 자주 나를 찾았다.
때로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나를 시험해 보기도 했으나,
그녀는 대한불교인의 불자다운 면모와 호쾌하고 담대함을 갖춘
영락없는 여걸이었다.
나를 시봉함에 있어서도 지극 정성이었고 조금의 허물도 없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능인선원 등 큰 불사에 이미 몇백억씩 시주한
공덕자였음에도, 시주했다는 생색이나 '상(相)'을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보살이 내게 말했다.
"스님, 제가 스님께 3천억 원을 바치겠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서울에 4층 건물을 올리고 포교하십시오.
그래야 스님의 원력을 성취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내게 시골의 공기 좋은 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해달라.
꽃에 향기가 있으면 십리 밖에서도 벌이 날아오는 법이다.
그러니 시골에서 불사를 할 수 있게 해다오."
결국 내가 서울행을 거절하자 보살은 뜻을 굽히고 물러섰다.
나는 지금도 서울의 공기가 싫다.
그 탁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면 3천억 원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만약 그 대보살이 시골을 고집하는 나의 뜻을 지지해주었더라면,
오늘처럼 이 작은 초암(草庵)에서 쓸쓸히 지내고 있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의 인연일 뿐,
언제나 나를 향했던 그 보살의 지극한 정성만큼은
늘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