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년
지난 한 달간,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미국의 네 개 주 네 교회에서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행기를 모두 일곱 번 타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들을 만난 것도 덤으로 누린 큰 즐거움이었고요.
시카고에서 말씀을 나눈 뒤 찾아간 곳이 위스콘신이었습니다.
후배 목사가 차를 몰고 내려와 함께 올라갔지요.
그는 그곳에서 미국인들이 출석하는 세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자상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다가가는 한국 목사를 존중하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미국 신앙인들의 모습이 참 성숙하게 여겨졌습니다.
위스콘신 목사 사택에서 하룻밤을 잔 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후배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또한 미국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데, 인근이라고는 하지만 차로 두 시간 거리였습니다.
사모님은 우리를 위해 정성이 가득한 우리네 반찬으로 점심을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마음이 찡했던 것은 대부분이 직접 길러 만든 음식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달래며 살고 있다 싶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후배 목사는 미리 약속을 해 둔 한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지금 목회를 하고 있는 작은 도시 Black River Falls에서 알게 된 미국인 부부하고 약속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은퇴한 의사와 교사 부부인 부부는 도심에서 벗어난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을 끼고 있는 넓은 터에 자리를 잡고 살며 말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말을 키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원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말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동안 사진을 찍기 위해 잠깐 말 등에 올라본 적도 없습니다.
어떻게 말을 탈지 두려웠는데 두 부부는 전혀 걱정하지 말라며 말에 올라타는 것을 도와주었고, 우리가 말을 다 타자 부인은 맨 앞에서, 남편은 맨 뒤에서 우리 일행을 인도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곳으로 내달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는 달리 말은 앞의 말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앞의 말이 천천히 걸으면 천천히 걸었고, 앞의 말이 달리면 함께 달렸습니다. 오르막길을 오르기도 했고 비탈길을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시내를 건너기도 했고, 물가를 달리기도 했습니다.
굽은 길은 물론 나무와 나무 사이를 달릴 때는 아슬아슬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두 부부는 우리를 안심시키며 4, 50분 길을 이끌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섭고 떨렸지만 말과 친해진 것일까요,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이 편안했고 그 드문 경험을 즐겼습니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두 부부와 인사를 했습니다.
마침 준비한 부채가 있어 선물을 했고, 부채에 쓰여 있는 ‘동행’이란 짧은 시를 소개했더니 아이처럼 좋아라 했습니다.
환하고 따뜻한 웃음, 몸에 밴 환대,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따로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누가 원하든지 말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가는 은퇴 부부의 모습이 더없이 넉넉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밤길을 달려 돌아오는 길, 우리의 노년은 어떠해야 할지 불쑥불쑥 생각은 그리로 갔답니다.
[글쓴이: 한희철목사/ 정릉감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