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프는 무선(無線)으로 프로필을 주고받는 아이폰의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이하 앱)이다. 아이폰에 이 앱을 설치하면 다른 아이폰과 부딪칠 때 자동으로 상대편의 프로필이 저장된다.
손씨가 주변을 둘러보니 10여명의 모임 참가자가 명함 대신 아이폰을 꺼내 들고 서로 부딪치며 상대방의 이름과 연락처를 자동으로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가 스마트폰 열풍에 휩싸였다. KT가 지난 18일 애플의 '아이폰4' 예약 판매를 시작하자, 일주일 만에 무려 20만명이 몰렸다.
지금 추세라면 '아이폰3GS'(국내 누적 판매량 85만대)의 판매량을 넘어설 기세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는 지난 6월 출시 후 3개월 만에 80만대를 팔며 '올해 최고 히트폰' 대열에 올라섰다.
스마트폰은 지난달 국내 판매량(누적) 300만대를 돌파한 데 이어 연내 500만대, 내년 1000만대까지 팔릴 전망이다.
스마트폰의 빠른 보급은 일상생활 곳곳에서 '스마트폰 문화'를 만들고 있다. 스마트폰 문화는 버스를 탈 때,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을 때, 친구와 약속 장소에서 만날 때, 심지어 비즈니스 미팅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全)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를 도입하고 있다.
◆버스정류장·도서관·술자리… 생활 곳곳에서 스마트폰 활용
"날씨가 이렇게 더울 때 버스 정류장에 미리 나가 땀 흘리며 버스 기다리는 것은 고역이잖아요.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버스가 몇 시에 집 근처 정류장에 도착할지'를 확인하고 맞춰서 나오면 되죠."
경기고 3학년 유주완군은 이런 생각으로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주는 '서울버스'라는 응용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아이폰·갤럭시S 등에서 '서울버스'를 다운로드받아 설치한 이용자는 무려 70만명에 달한다.
유군은 "매일 아침 집 현관에서 버스의 도착 예정 시간을 체크한 후 정류장까지 뛰어갈지 걸어갈지 정한다는 친구도 있다"며 웃었다.
대학교 도서관 풍경도 변했다. 중앙대생 문석환씨는 "도서관에 가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도서관에 빈자리가 있는지 미리 확인한다"고 말했다.
문씨는 "헛걸음할 필요없이 도서관에 자리가 없다고 뜨면 빈 강의실로 직행한다"고 했다. 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 등 전국 20여 대학이 비슷한 스마트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대학들은 도서관 잔여석 확인뿐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구내식당 메뉴(연세대)나 도서 대출·연체 현황(한양대), 학교 주변 맛집(한국외대) 등의 정보도 제공한다.
술자리에도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성균관대의 진모씨는 "요즘 대학생들은 동아리 뒤풀이에서 '폭탄 깨기' 같은 게임을 해서 벌주를 마시게 하는 게 유행"이라고 했다. 폭탄 깨기 게임은 휴대폰을 흔들 때마다 화면의 폭발물이 부풀어 오르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게임이다.
젊은 연인들 사이에는 '무한대의 공짜 문자' 방법이 인기를 끈다. 공기업에 다니는 강모씨는 최근 남자친구와 무료 문자를 하려고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스마트폰에서 '왓츠앱'이란 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문자가 무료다. 중앙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정상준씨는 "여자친구와 스마트폰으로 공짜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예전에 비해 휴대폰 문자 요금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30~40대 직장인들에게는 스마트폰이 다이어리의 대용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의 일정 프로그램에 각종 약속이나 회의 일정을 기록해두는 것.
한 40대의 직장인은 "스마트폰에 일정을 저장해두면 PC의 일정 프로그램과 연동시킬 수 있어 편리하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다이어리 제작·판매업체들은 매출 축소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구 전문판매점 핫트랙스의 관계자는 "고급 다이어리 시장의 1위 업체 플랭클린플래너의 경우 작년까지는 판매량이 매년 3~16%씩 증가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10% 정도 줄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언제 어디서나 근무" 고통 호소하는 목소리도
반대로 스마트폰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 임원들은 스마트폰을 족쇄처럼 느낀다.
한 영국계 기업의 한국지사 임원은 "회사에서 블랙베리를 지급받은 후로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1시간에 한 번꼴로 본사에서 온 이메일이 없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시차 탓에 영국 본사의 업무 시작 시간(오전 9시)이 한국에선 퇴근 시간(오후 6시)인 것이다. 이렇다 보니 퇴근 후에도 본사에서 수시로 오는 이메일을 블랙베리로 확인해 답장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계 기업의 한 임원은 "아침에 일어나면 블랙베리로 본사에서 보내온 이메일을 읽고 답장을 보내는 게 첫 일과"라고 했다. 그는 "그래도 우리는 본사가 미국 서부지역이라, 미국 동부나 유럽계 기업의 한국지사처럼 저녁에 시달리는 일은 덜하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최금주씨는 '스마트폰 붐'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최씨는 "휴대폰은 통화만 잘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스마트폰 얘기를 꺼내, 화제를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스마트폰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주부 윤모(40)씨는 "실제로 스마트폰을 써보니 자주 사용하는 앱은 몇 개 안 되더라"면서 "신기하고 재미있기는 한데 요금이 비싸고 실속이 없다는 느낌도 있다"고 말했다. 8/27일자조선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