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탐정물 [그림자 살인]은, 시작은 창대하였지만 끝은 미미한 아쉬운 스릴러 영화다. 왜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일제 강점기인가였을까에 대한 의문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다. 내러티브의 전개과정을 보면 굳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시대극이 아니어도 될텐데,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시대배경에 대한 처절한 고민이 없다. 일제강점기가 갖는 정치적, 사회적, 혹은 심리적 억압감이나 민족적 집단무의식을 영화적 장치에 사용했다면 훨씬 더 의미있는 작품이 만들어졌을텐데, 왜 작가나 연출자는 시대적 배경을 깊이 있게 건드리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시켰을까?
외적 형식과 내적 의미가 맞물리지 않으면 형식은 장식으로 전락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자 살인]에서 공들여서 섬세하게 만든 셋트나 의상 소품 등은 존재의 의미를 잃고 시각적 눈요기에 그친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생성될 수 있는 민족적 갈등이나 심리적 억압이 연쇄살인이나 유아 집착의 성도착증으로 연결되었다면 [그림자 살인]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평범한 스릴러 영화의 하나로 기록될 [그림자 살인]에서 전직 경찰이며 지금은 도망친 유부녀나 빚쟁이를 찾아주는 탐정을 등장시킨 것이 그렇게 새로운 시도로 보여지지도 않는다.
사설탐정 진호(황정민)는 전직 순사였지만 지금은 바람난 유부녀나 돈을 갚지 않고 도망친 빚쟁이를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게 새로운 사건 의뢰가 들어왔는데 의뢰자는 의대생인 광수(류덕환)고 내용은 자신이 숲에서 주워온 시체를 살해한 사람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진호에게 광수는 거액을 제의한다. 광수는 해부학 실습을 위해 버려진 사체를 집으로 가져와 실습하고는 했는데 자신이 주워온 사체가 당대 최고 권력자의 아들인 민수현이라는 것을 알고,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쓸까 두려워 살인자를 찾아달라는 사건의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림자 살인]은 이렇게 사건 의뢰를 받아서 사설탐정이 살인마를 찾는 이야기이다. 코난 도일의 소설 셔일록 홈즈 시리즈와 얼개가 유사하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따. 탐정 옆에서 사건 해결에 발벗고 나서는 조력자도 홈즈 곁에 있던 의사 왓트슨처럼, 의대생 광수다. 광수는 전문적인 의학실력을 발휘하여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준다. [그림자 살인]의 전반부는 살인사건이라는 문제를 던져 놓고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된 두 인물, 진호와 광수의 유머러스한 연기와 극적인 사건 전개로 관객들의 호기심과 재미를 충족시켜 준다. 더구나 잘 셋팅된 일제강점기의 경성은 충분히 믿음을 줄 정도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그림자 살인]의 문제는, 권력가 집안의 자제인 민수현의 실종이나 민수현과 비슷한 방법으로 살해된 경무국장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진호와 광수가 살인자를 쫒아가는 방식과 살인 동기를 푸는 방법론에 있다. 두 살인사건이 모두 곡예단 단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노출시킨다. 결말에 등장하는 진짜 살인범의 정체도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약하다. 진짜 살인범을 둘러싼 문제도 명확하지가 않다. 죽은 민수현과 경무국장의 공통점을 찾고 그것이 그들의 독특한 성적 취향과 관련이 잇으며 곡예단 단장이 죽은 그들에게 어린 여아를 공급해주는 공급책이었다는 것도 너무나 거칠게 드러난다.
[그림자 살인]은 겉은 화려하지만 내무 인테리어가 조악한 고급주택과 같다. 진호와 광수의 조력자로 양가집 규수인 순덕(엄지원)이 등장하는데 그녀의 정체성도 애매모호하다. 진호와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것도 아니고, 당대의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전문적인 식견으로 은밀히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은청기와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만시경을 제작하는 과학도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건과 관련된, 혹은 두 남성 캐릭터와 얽히는 순덕의 어떤 역할이 있었어야만 했다.
또 진호 일행과 범인들 사이에 놓여 있는 중간적 존재로서 살인사건의 수사를 책임맡은 순사부장 영달(오달수)이 등장하는데, 오달수의 뛰어난 개인기로 영달의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하고 있지만, 극적 구조상으로 보면 캐릭터 설정에도 문제가 드러난다.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 권력가와 민중 사이, 그리고 탐ㅋ정들과 살인범 사이에 걸쳐 있는 중요한 역할인데, 권력지향의 다중적 인격체가 아닌 오달수 개인의 캐릭터가 반영된 유머러스하면서도 약간 비어 있고 조금은 따뜻한 인간미도 있는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감독이 캐릭터의 부분적 즐거움에 현혹되어서 전체적인 대세를 놓친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