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단원고 고(故) 제세호(17)군의 아버지가 23일 오후 팽목항 부둣가에서 충무김밥 네 상자를 해경정에 실었다. 100인분이었다. 상자 속에는 먹다가 목 메지 말라고 콩나물 뭇국도 함께 넣었다. 목적지는 세월호 실종자를 수색하는 구조팀이 머물고 있는 진도 앞바다 바지선. 아버지 제씨는 "현장에서 제일 고생하는 잠수사들이 힘 빠질까 걱정돼 음식을 챙겼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아들의 시신을 찾았지만 그 이후로도 진도를 찾아 바지선을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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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단원고 2학년 제세호(17)군의 아버지가 23일 오후 진도 팽목항에서 잠수사들에게 전달할 충무김밥이 담긴 상자를 해경정에 싣고 있다. /김승재 기자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로 달려왔을 때 제씨는 '해경이 학생들을 수색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고 말했다. '내 눈으로 보겠다'며 바지선에 올랐다. 하지만 그곳에서 잠수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잠수사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말도 못합니다. 진심을 다해 아이들을 찾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그는 빈손으로 바지선에 온 적이 없다. 정조 시간을 맞추느라 끼니를 건너뛰는 잠수사들을 위해 수육을 삶았고, 영양제를 챙겼다. 그의 힘만으로는 안 될 일이었다. 여러 자원봉사자가 십시일반 비용을 댔고, 대한약사회에서 약을 지원했다.
아들이 시신으로 돌아온 날 제씨는 "잠수사들이 너무 고맙다"며 인사하며 진도를 떠나왔다. 안산에서 장례를 치른 지 2주 후인 지난 21일. '해경 해체' 결정이 나온 이후 잠수사들의 어깨가 처졌다는 말이 들려 왔다. "그 말을 듣고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아직 찾을 아이들이 많이 남았는데 내 자식 시신 찾았다고 나 몰라라 할 수 없더라고요." 그는 다시 진도로 내려가기로 했다.
진도에 닿기 전 그는 전남 목포 새벽 수산시장에 들렀다. 기력에 좋다는 세발낙지 100마리를 샀다. 어떤 실종자 가족들은 낙지의 빨판처럼 아이들을 착 데려오라는 뜻에서 잠수사에게 낙지를 먹이기도 한다고 했다.
바지선에 올랐더니 해군 조리사 2명이 있었다. 그들은 제씨가 건넨 낙지를 탕탕 썰었다. 참기름장을 만들어 상을 차렸다. 바지선 위 잠수사 100여명은 말도 하지 않고 순식간에 낙지를 먹어 치웠다. 민간 잠수사 윤모(43)씨는 "낙지를 주신 분이 아들 장례 치르고 우리 때문에 다시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힘이 났다"고 말했다. "더 사올 걸 그랬다"며 미안해하던 제씨는 낙지와 함께 싸왔던 김치와 삼겹살로 김치찌개를 끓였다.
제씨는 "나도 평생 뱃일을 한 사람이라 바다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고 했다. 그의 고향은 경상남도 통영이다. 어려서부터 바다와 배를 보고 자랐고 조선소에서 20년이 넘게 일했다. 그래서 이번 사고가 더 가슴 아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