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낙엽 떨어진 큰 나무 사이로 시리고 넓은 창공을 힘차게 나는 까마귀를 자주 본다. 이상하리만치 나는 까마귀를 본 날은 일이 절로 술술 풀린다. 그것은 까마귀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깬 이후부터이다.
월드컵 때 우연히 일본 축구대표팀의 유니폼 가슴 쪽에 새가 있어 알아보았더니 그것이 바로 삼족오(三足烏)였다.
알다시피 삼족오는 세 발 달린 까마귀이고 그것은 고구려 천마총(天馬塚) 등 벽화에 나오는 민족 영조이며 천(天)·지(地)·인(人)의 조화를 뜻하며 우리가 스스로 천손(天孫)임을 확인케 하는 것이 아닌가, 언제부턴가 그 까마귀가 흉조로 둔갑해 한 마디로 재수 없는 새가 되었다는데….
그 새가 진정 재수 없다면 일본이 국가 대표팀의 유니폼에 까마귀를 그려 놓을 리가 만무하다.
시각을 달리해서 바라보면 까마귀는 진정 유익한 새이다, 하긴 하늘을 수놓는 새를 보고 좋다 나쁘다고 규정짓는 인간 의식에 근본적인 착오가 있긴 하다만 까마귀를 흉조라고 막연히 폄훼하는 분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싶고 이미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바꾸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째, 까마귀는 사랑의 가교 역할을 한다.
전설 같은 우리의 칠월칠석은 견우직녀가 일년에 한번 은하수 다리를 건너 오작교에서 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그 ‘오작’은 ‘烏鵲’으로 쓰고 까마귀와 까치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길을 까마귀와 까치가 제공한다.
둘째, 알려진 바로는 까마귀는 효조(孝鳥)이다.
일명 반포조라 해서 병든 어미에게 먹이를 갖다 주는 유일한 새라 한다. 부모 자식간의 간격이 커지는 세태에 가히 본 받을 만하다.
셋째, 단결력이 무척 강하다고 한다.
먹을 것이 있으면 늘 여럿이 같이 먹고 의리 또한 강하다. 무리의 새 중에 한마리가 죽으면 많은 까마귀가 날아와 하늘을 한참동안 조문하듯 선회한다한다. 그리고 어느 추운 겨울날 국군 장병 잔반통에 독수리 몇 마리가 먹이를 먹다 수십 마리의 까마귀 떼에게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넷째, 환경친화적인 새이다. 주로 썩고 버려진 고기와 음식을 먹는다. 자연환경 속에서 그냥 버려진 짐승의 사체나 음식 찌꺼기는 쓰레기가 되어 그냥두면 토양이 오염되겠지만 까마귀는 그것을 먹어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환경을 지키는 고마운 파수꾼이다.
다섯째, 예로부터 까마귀는 태양의 사명조이다.
태양 없인 생명활동은 기대할 수 없다. 그 태양의 중심, 즉 흑점을 향해 힘차게 나는 새이다. 자신감과 도약과 성공의 표본이다. 무릇 삶에 있어서 자신이 없으면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낼 수 없고 힘이 없으면 그토록 장쾌하게 날 수 없으며, 자기 비전에 대한 성공과 확신이 없고 마음이 밝지 못하면 그 빛나는 태양 속으로 감히 오를 수 없다.
여섯째, 까마귀는 깨달음의 전령사이다.
하늘 높이 날며 “까악 까악” 노래 부르며 그것은 한자로 ‘覺 覺’으로 표현할 수 있다. 세상사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과 알되 실천하지 않는 사람, 또 얼이 빠진 이를 보고 ‘매 순간 순간 깨달아 가며 살라’며 혼을 내는 것이다. 검은 색은 모든 색을 모아두면 그렇게 되고 그 의미는 포용이며 사랑이다. 까마귀는 검고 크다.
일곱째, 아주 총명하다.
까마귀는 병에 든 물을 먹고 싶으면 그 병에 돌을 채워 물을 마신다고 하며 딱딱한 호두를 높이 물고 날아올라 떨어뜨려 깬 다음 먹는다고 한다.
여덟째, 한단고기에서 지적하길
붉은악마의 상징인 우리 배달국의 치우천황께서 4300여년 전 탁록이라는 곳에서 중국 최초의 황제 헌원씨를 쳐부수고 환도하시어 관을 쓰실 때 우아한 까마귀 깃털을 이용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전통이 고구려 등 삼국시대 인재양성소에서는 오우관을 널리 사용하여 내려왔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상징성을 갖고 있는 새를 우리가 반겨주지 않고 외면하다보니 과거 자기들을 알아주었던 우리네 조상 무덤가로 자꾸 찾아가는 것은 아닐는지….
고구려 이전부터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우리의 영조(靈鳥)가 기분 나쁜 새로 왜 전락됐는가.
동네 할머니들이 까마귀의 힘찬 목소리를 들으면 침을 뱉는 습관이 된 것은 우리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자기들의 마음대로 우리들의 뇌를 쓰기 위한 일제의 영악한 고등 술책이었고,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동화되었던 것이다.
사람 이름까지 강제로 바꾼 그들이 새의 상징을 왜곡하는 것이 무에 그리 힘들었겠는가. 그래 놓고 자기들은 까마귀를 국조(國鳥)라고 명명하니 그들의 이중성에 새삼 아연해 질 수밖에 없다.
어릴 때 3류 만화에서도 악한 검객의 어깨위에 앉아 악역을 담당했던 까마귀를 이제 우리가 당장 신원회복시켜야 한다.
고구려 벽화는 이천년 가까이 생생하게 까마귀의 신령스러움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까마귀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싹 바꾸자.
첫댓글완전절대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큰 소리 칩니다. 완전절대 안전장치를 만드니는 누구입니까 그렇게 감싸안아 존재하도록 하는 한울한나흼은 무슨 흼입니까 한울한나흼은 완전절대도 감싸안은 영원무궁도 감싸안은 초막대막강한 한울한나흼입니다. 완전절대 보다 더한 흼이 있다고 하면 완전절대의 고정된 한틀에 박혀 사는자는 완전절대 이상에 대해서 결코 생각하거나 벗어나려는 것은 불안정하고 혼란이 야기된다고 어리석고 한심한 자가당착에 빠져 삽니다. 완전절대 보다 더한 흼이 있기에 완전절대 보다 더한 영원무궁 보다 더 강력하게 안정된 흼이 초막대막강하게 있는 것입니다.
의식이란 어떠한 의식으로 전환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운명 나라의 운명과 더 나아가 겨레의 운명까지도 결정됩니다. 까마귀와 까치를 두고 길조냐 흉조냐 하는 것은 요즘 안전유지관리와 같습니다. 참환한 한안전유지관리란 한결같이 끊임없이 최소한의 기본적으로 성심성의껏 내 스스로가 안전관리를 365일 지속적으로 했을 때 참환한 한안정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까마귀는 새입니다. 까치도 새입니다. 고귀하고 존엄한 생명력이 있는 새입니다. 여기에 길조 흉조를 생각하는것 자체가 만물의 영장 사람 의식 수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까치와 까마귀 등 새는 새로써 존중합시다. 까마귀에 대한 수준 낮은 의식은 반드시 고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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