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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국내 외국인 이슬람 사역 필요성
들어가는 말
몇 개월 전에 있었던 일이다. K신학대학 졸업반에 재학 중인 B라는 형제가 갑자기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히게 되었다. 이 형제는 M에서 개종을 했는데 신앙고백을 통해 세례를 받고 신학대학에 갔다. 문제의 발단은, 5년 전 한국에 들어오면서 처음 여권이 아닌 새로운 여권으로 이름을 바꾸어서 입국을 했다. 여권 위변조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B라는 형제는 개종을 한 후 기독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전도를 열심히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학교생활, 교회생활 그리고 수업이 없는 날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시간 날 때 마다 전도를 하려 다녔다. 많은 친구들을 여러 모양으로 교회에 대리고 왔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N 지역의 이슬람 형제들에게 표적이 되었다. 심지어는 B형제의 신변처리 문제로 모임까지 가질 정도였다. N 지역에는 모스크를 세우기 위해 열심히 모금을 하고 있고 상당한 금액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나 걸림돌이 하나 있으니 바로 B형제였다.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약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여권법위반 이었다. 자국민끼리 감정싸움에서 비롯되어 서로 고발하거나 밀고하는 일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종교적인 일 때문에 이렇게 밀고하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다. 결국 국내에서도“이슬람과의 전쟁”이 선포된 것이다.
여권법 위반자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만약 이 형제가 여권에 문제가 없었다고 해도 분명 다른 건으로 밀고를 했던지 아니면 협박과 테러를 자행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자국민 개종사역자를 타국이라 해서 가만히 두고만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본국과 한국의 이슬람 조직력은 대단하다. 지금 B형제는 본국에서도 활동의 제약을 받으며 비밀리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1. 국내 외국인 이슬람 사역의 필요성
1990년대 초부터 외국 인력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한국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소위 단일문화 사회에서 다문화 사회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여러 분야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반만년동안 단일민족이라 자랑해 왔던 한국도 이제는 결코 단일민족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 외국인근로자, 유학생, 새터민, 결혼이주민, 난민 등, 현재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120만 외국인(1,155,654명 09,6,30일 법무부통계)시대에 진입을 했고 국제결혼 쌍도 126,155명(09,6,30 법무부통계)이나 되기 때문이다. 300여 개가 넘는 성씨는 앞으로 귀화 성씨까지 몇 백 개가 더 늘어날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성씨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어디를 가나 쉽게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안산의 원곡동에는 이미 오래전에 외국인마을이 형성되었고 지난 2008년 3월 외국인전용 주민 센터까지 개소해 잔치를 벌였다. 공단주변의 야간시간대에는 한국인을 구경하기 힘들어 졌으며 거의 외국인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렇듯 수많은 외국 인력들이 우리가 일하기 싫어하는 소외된 곳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국내 외국 인력을 담당하는 중소기업 중앙회나 노동부나 산업인력공단이나 그리고 기업인들의 생각은 외국 인력을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하나의 노동력으로 보고 일을 시키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 그들을 하나의 노동력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처럼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며 존경받아야 할 하나님의 인격체임을 믿고 사랑과 복음으로 제자 삼고 양육하여 본국으로 재 파송하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 사역은 하나님께서 120만 미전도 종족 선교를 위해 한국교회에 맡겨주신 축복의 선물이며, 축복의 땅 한국을 찾아온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놓쳐서는 안 되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양육하고 역 파송 시키는 사역을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의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 등 회교권 출신 외국인들만도 전체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와 선교 단체에게 맡기신 외국인 근로자 선교는 “선교전략적” 의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국내 이슬람 증가와 글로벌 포교전략
전세계인구의 20%인 약 13억이 이슬람 인구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기독교는 47%의 성장을 보인반면
이슬람교는 500%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선교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21세기 초에는 26.7%가 이슬람화 될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그 이유는 유럽교회들이 약세에 몰리고 있어 예배당을 매입하여 모스크로 활용하거나 이슬람 서점, 카페 등으로 용도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영국 그리고 유럽지역에서 엄청난 속도로 무슬림화 되어 가고 있다. 1976년 세계에서 최초로 열린
이슬람교 축제가 200만 달러를 들여 영국에서 개최되었는데 여왕이 개회선언을 했고 London City Mission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영국은 지난 15년 동안 6000개 이상 Anglican Church가 문을 닫았는데 이 중 3500개 이상 교회가 무슬림 사원이 되었고,
영국에서 무슬림 인구가 2천만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1990년부터 유럽을 무슬림화 시키기 위해 영국을 무슬림 전초기지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의 급성장에는 공동체적인 정신문화와 단결심, 산아 제한을 하지 않고 무조건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과 더불어 이슬람 산유국들의 거대한
포교자금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슬람국가 하면 중동의 사우디아라비라 이라크 등 몇 개 국가를 떠올리지만 사실은, 유럽과
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거의 대부분 이슬람 문화와 제도, 정치권으로 탈바꿈한지 오래 되었다.
중국은 약 4천만(1994년
통계)이었던 이슬람 인구가 지금은 약 1억이 넘어섰고, 중동의 포교자금이 중국으로 유입되면서 급진적으로 증가를 하고 있다. 힌두교 국가인 인도
역시 북쪽으로 약 2억의 무슬림들이 있고, 태국은 불교가 쇠퇴하면서 이슬람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필리핀도 지난 30년 동안
민다나오 섬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슬람 세력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도 9.11 테러 후에 오히려
역화현상으로 이슬람이 성장하고 있는데 천만 명을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아직까지 세계에서 이슬람의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면 한국과 일본이라고 말할 정도다. 지난 2005년 세계이슬람연맹에서는 의례적으로 이슬람국가도 아닌 한국에서“이슬람세계선교대회”를 개최하고
2020 [프로젝트]를 세워 한국을 집중적으로 이슬람화 하겠다고 선포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이슬람 포교자로 약 2만 여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에서 온 각국 대사관 직원들, 유학생, 그리고 수적으로 우세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들고 있다. 이들은 외국인 예배사역에 침투해 개종자로 그럴듯하게 위장하고 앞장서서 목회자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본국의 지시를 받으며 한국에서 전국망을 가지고 네트워크를 통해 한 몸같이 움직이고 있다.
1)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도를 통한 외국인력 대거 유입
정부가 1993년 11월 처음 도입한 산업연수생제도는
개발도상국과 경제협력을 도모하고 기업연수를 통하여 선진기술을 이전하기 위한 제도이다. 국내 3D산업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는 창구역할을
해왔다. 다수가 근무지를 이탈하여 불법체류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며 인권유린이라는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고, 인력수급에 있어서
관련기관의 비리도 발생하였다. 이러한 폐단을 막고자 2004년부터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함께 실시되고 있는데, 고용허가제 외국인근로자에게
고용조건에 있어 국내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 주는 제도인데, 대부분의 유럽국가와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2003년 8월 16일 법률
제6967호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04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 이후에는 “산업연수제”와 “고용허가제”를
병행 운용하다가 2007년1월1일부터“산업연수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되어 외국 인력의 도입과 관리를 규율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를 비롯해서 15개국과 MOU를 체결하고 수만 명의 인력을 송출하고 있다.
15개국 중에 이슬람국가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키르키스탄 등 5개국이다. 나머지 10국에는 이슬람국가는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가도 있다.MOU가 체결된 국가는 5개국이지만 중동국가나 구 소련지역 외국 인력도 무시를 못한다. 고용허가제의 계약조건은 아니지만 여러 조건으로 국내에 체류하거나 국제결혼을 통해 국내에 체류하면서 이슬람 포교나 그에 관계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남동 중앙 성원을 비롯해 전국 60여개의 크고 작은 이슬람성원에는 7-80% 가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리를 메 꾸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슬람권 외국인근로자의 유입은 이슬람의 확산에 큰 공헌을 하고 있는 추세임이 분명하다.
2) 국제결혼 급증에 따른 다문화 가정
국제결혼의 급증은 외국인 근로자들로부터 시작이 아니라 사실 농촌 총각들로부터
시작하여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일본, 캄보디아, 몽골 등지에서 시집온 여성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다문화가정이 형성된 것이다. 2009년 6월
30일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 배우자와 결혼한 사람이 126,155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로서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약 3천여
명의 한국인 자매들이 이슬람국민 즉,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구소련지역 사람들과 결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한쪽이 이슬람 영향을
받았기에 한국 배우자와 결혼은 매우 걱정스럽다. 특히 파키스탄 지역과 방글라데시의 남성들과의 결혼은 이슬람포교를 위한 정략적인 배경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이슬람 국가의 일부다처제도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가짜[미혼증명서]를 얼마든지 발급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문제는 그들의 생각과 한국여성들의 입장이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 있다. 이는 무지의 소산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예를 들면 현지에서 이슬람 신자로서 그리고 이슬람포교를 위해 현지처 하나 두는 것 쯤 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단지 한국여성들만 모르고 있기 때문에 당하는 여성이 한둘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많은 무슬림 남자들은 한국여성과 결혼을 시도한다. 이슬람 교리 자체가 무슬림 남자들은 기독교나 유대교 여자와 결혼을 권장한다고 한다. 이슬람의 결혼은 단순히 포교적 차원을 넘어 이들의 삶이요 생존전략인 것이다. 결혼을 통하여 한국 국적을 얻고 직장을 가지면서 당당하게 포교를 하는 것이다. 이미 무슬림과 결혼한 수많은 여성들이 후회와 더불어 이혼을 결심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신중히 결정을 해야 할 사안이다.
3) 외국인 유학생 증가에 따른 변화
2009년 6월30일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들어와 있는 유학생이 57,107로 집계되었다. 이 외에도 다른 체류자격으로 있으면서 공부하는 사람도 꽤 있으리라 본다. 유학생 중 5만여 명이 중국에서 온 학생들이다. 정부는 내년까지 해서 10만 명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목표로 내걸고 유학생들을 받을 계획이라 한다. 지방대학까지 외국인 학생 유치에 경쟁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니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
그러나 통계상 많지는 않지만 소수의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학생들이 문제이다. “인권”이란 힘으로 소수인 이슬람 학생들에게도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을 달라고 때를 쓰는 이들을 무조건 묵살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이들은 캠퍼스라는 활동무대를 배경으로 이슬람이 급속히
학생들을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이들은 등 하교 시에 학교정문에 흰색 이슬람복장(빠에자마펀잡이)을 하고 서 있다. 이 학교에도 이슬람 학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특히 학생들 중에는 아랍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교환학생이란
명분으로 선교사로 훈련시켜 국내에 파견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안에는 이미 이슬람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지속적인 모임을 갖고 있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와 명지대학교, 한양대학교 아랍어과 등 학생들의 교류가 활발해 지고 있고 중앙연합회 산하에 “한국이슬람교회 학생회”를 조직하여
네트워크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외국어 대학 아랍어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슬람 선교와 교리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1985년에는 광주 조선대학교 내에도 아랍어과가 개설되어 활발한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4) 새터민, 난민. 귀화
등 한국 국적 취득 증가
2009년 6월 법무부 자료에 국적회복자와 귀화자의 통계를 보면 11,943명으로 집계되었다. 물론 중국계 인구가 가장 많지만 파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이슬람 국가의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 된다. 이들은 완전한 한국인으로서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이슬람종교를 포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추방을 시킬 수 없고 국내 형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비자면제국가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대부분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 동남아 외국인들의 최대 소망이 있다면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시민권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귀화자들 가운데 국내 출입국법이나 국제범죄에 개입되어 단속되는 사례가 빈번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한국인으로 자긍심을 갖고 살기 보다는 자기의 사리사욕과 종교적인 목적을 수행하려는 속셈을 잘 드러내는 결과라 할 수 있다.
3. 한국 이슬람의 역사
불교와 그리스도교 문화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에게 생소한 이슬람교가 그 두꺼운 벽을 뚫고 한국에 전래된 것은 1955년이다. 이슬람교의 전파는 1955년 9월 6·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던 터키 부대의 압둘 라흐만 종군 이맘과 주베르코취 종군 이맘의 지도와 협조아래 국내에 정착을 하게 된다.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한국 [이슬람교회협의회]를 발족했고 초대회장 김진규,부회장겸 사무국장 윤두영 신도 70명으로 시작했다. 초창기 10여 년간에 포교운영의 고난을 극복하고 1965년 한국이슬람교 중앙연합회로 재발족하여 1967년 5월 현재의 용산구 한남동에 중앙 성원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1980년 9월에는 부산 금정구 남산동 제2성원을, 1981년 6월에는 경기도 광주시 역동에 제3 성원을 건립하였다. 1986년 4월에는 전북 전주에서 이슬람 성원이 개원되었다.1986년 4월에는 안양의 한 한국인 무슬림이 기독교 교회를 매입하여 이슬람 성원으로 개원하기 되었다. 2001년 11월에 개원한 안산시 원곡동에 있는 안산 이슬람 성원, 2004년 10월에 개원한 인천부평 십정동에 이슬람 성원, 그리고 인천 동암에 있는 이슬람성원, 2006년도 건축된 파주시 월통면에 이슬람 사원, 그 외에도 대구, 마천, 마석,김포 등 전국에 5-60여개의 임시성원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이슬람대학 개교를 위해 용인에 건립 중에 있으며 이를 위해 이슬람중앙연합회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1976년 이슬람대학 위원회를 발족하였고 1980년 5월 최규하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시 고 칼리드 왕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 이슬람대학교 설립 공사 일체의 제공을 확약 받았으며 경기도 용인에 13만 평의 대지를 확보하고 기공식을 가졌다. 이슬람국가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 무슬림 근로자들과 주한 이슬람국가 대사관, 영사관 등 외교관 신분으로 들와 있는 이들이 공적 자격을 가지고 무슬림 확장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위와 같이 전국적으로 모스크 건립은 이슬람 세력 확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전체주의 집단인 무슬림들은 공동체 속에서 자라 자의반 타의반 모스크에 갈 수밖에 없다. 한국에 와서는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좋은 핑계거리였다. 그런데 지역마다 아니 동네마다 대형 모스크뿐만 아니라 임시 사원까지 들어서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보면 한국이슬람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무엇보다 모스크 건축과 확장이다. 건립과 동시에 각 모스크에는 이슬람 연구센터가 설치되었고 각국에서 파견된 이슬람 포교자들의 전략적 교육 및 네트워크 거점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외국어대, 명지대 아랍어과 학생들과 교수들의 활동은 번역을 통한 친 한국어로 젊은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게 했던 것 등은 괄목할 만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이슬람 중앙 성원(한남동) 이슬람의 효과적인 포교를 위해 이슬람에 관한 책자를 번역하고 배포하는 일을 하였는데 100여종의 자료를 제작하여 포교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이슬람중앙회 선교교육국에서도 [예배입문] [초보자를 위한 이슬람 바로알기] 등 이슬람 이해를 돕기 위한 각종 기초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한편 한국무슬림연맹(KMF) 한국어와 영어로 “이슬람 주보”“ 알 이슬람”“코리아 이슬람 헤럴드”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출간하였고 “주간이슬람”을 지금까지 발행하고 있고, 새로운 컬러판 격월 잡지 [한국의 이슬람] 한국어판과 영어판으로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계속)
김성수 선교사 (방글라데시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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