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이후 지금까지 온갖 비난과 왜곡의 중심에 섰던 이승만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은 '사실'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실'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만약 내가
믿고 있던 신념이 사실과 부딪칠 경우, 선택해야 할 것은 신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3년 반의 시간 동안 이승만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대한민국의
역사를 되돌아봤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반전이 일어났다.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에 통렬히 반성해야 했다. 그리고 사실을 왜곡시키고
거짓이 진실이 되게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친북적 사고방식에 빠진 역사
학자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에게 이념의 고향은 남한이 아니라 북에 있었고, 역사의 정통성을 건
싸움에서 승자는 북한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저지른 가장 심각한 잘못은
바로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시킨 것에 있다.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킨 역사의
반역자들이다.
북한 입장에서만 놓고 본다면, 이승만 정권은 한반도 소비에트 공산화
프로젝트의 마지막에 모든 계획을 파탄시킨 장본인이다.
남과 북의 이념 대결에서 자신들에게 치명타를 안긴 용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에게 '이승만'은 철천지원수였다.
남한의 경제적 번영과 한미 동맹이라는 토대를 닦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1995년 북한을 방문한 한 목사의 눈에 평양 거리
한복판에 '이승만 괴뢰 도당 타도'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들어왔을까.
아직도 북한은 '이승만' 타도의 구호 아래 통일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슬픈 것은 이런 북한의 주장에 여과 없이 동조한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이
권력과 손을 잡은 것에 있다. 권력화된 거짓 이론은 대한민국 사회를 송두리째
거짓의 공화국으로 몰고 갔다. 그들이 퍼붓는 비난과 왜곡의 화실이 집중된 곳
역시 '이승만'이란 과녁이었다. 그들은 소위 '우리 민족끼리', 화해와 통일을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북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보조 수단에 불과했다.
'이승만'이란 존재를 악마화시키고, '이승만'이란 개념을 더럽히는 것이야말로
북의 입장에선 어느 시기에나 절실한 이념적 과제였다. 그것 없이 자신들이
늘 한반도 역사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70여 년 동안 '이승만'이 철저하게 대한민국 역사에서 비난과 왜곡의
중심이 되어야 했던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 거짓의 역사를 알면서도 침묵했다.
◆ '사실만이 진실로 나아가는 길을 인도한다'
이승만의 복원은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에 많은 의미를 갖는다.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뛰어넘어 진정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이승만에 대한
저주는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실'의 복원이다.
영화 '건국 전쟁'에서 비중 있는 발언을 했던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의
그렉 브레진스키 교수는 한국인들을 위해 뼈 있는 충고를 한 마디 한다.
그는 한국이 더욱 성숙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1950,60년대 사실에 대한
철저한 원전 조사와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조언하고 있다. 한국과 같이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회에서 진정한
해결책은 오로지 '사실'로 복귀하는 것에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걸 통해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라는 주문이었다.
그의 주문은 결국 친북 좌파 역사학자들, 이론가들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담고 있다.
'한강 다리를 끊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대통령, 런승만', '한강 다리 폭파로
800명을 숨지게 한 죄인', '친일파 이승만 정권', '미국의 꼭두각시 이승만', 심지어
하와이 갱단 두목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사실에 대한 검증도 없는 온갖 거짓말들이 난무했다.
주로 인기를 끄는 유튜브 학원 강사들이 이런 거짓의 나팔수가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선 이승만을 젊은 여성편력에 빠진 플레이보이라고까지 칭했다.
심지어 이승만이 그 일 때문에 기소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이 근거로 내세운 '하와이 이민국 조서' 두 번째 페이지에 수사 담당관이
이승만을 보호해야 할 인물로 주장하고 있는 부분은 왜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가?
'이승만은 미국이 보호해야 할 중요한 인물'이라면서 수사를 담당한 검사가
이승만의 보증인이 되었다는 사실에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그걸 몰랐다면, 그들은 무능한 역사학자들이다.
그걸 알고도 침묵했다면, 당신들은 역사의 범죄자들이다.
'이승만이 수백만 달러를 스위스 비밀계좌에 넣고 하와이로 망명했다'라고
경향신문은 보도했다.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경향은 그 보도가 오보였음을
스스로 인정할 용기는 없는가? '똥은 비단보에 싸서 하와이로 보냈다'라며
조롱했던 시인 구상과 동아일보 역시 그 비난이 지나쳤음을 사과할 용기는 없는가?
이승만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선 프랑스 사회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겸허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建國戰爭”이 드디어 오늘 개봉을 한다.
전국 140여 개 극장이다. 누구나 어디에 있든 쉽게 영화관에 가서 진실이 담긴
영화를 볼 수 있다.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키가 커져 새 옷을 입어야 하듯, 국가나 사회 역시 발전할수록
새로운 가치로 변화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사회 공동체의 진정한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영화 “건국 전쟁”이 그 작은 출발이 되길 희망한다.
때론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걸 믿는다.
- 김덕영(영화 '건국 전쟁' 감독) (202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