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인 편견을 깨는 찻집 “느리게 살기”
이번만큼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겠다고 나서는 길 자락에 연일 매서운 날씨가 기승을 부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게 되었다.
잠시 망설이긴 하였지만 새벽같이 나서는 길이라 추운 것 보다는 낫겠지 싶어 난생 처음 가죽 장갑을 손에 꼈다...
역시 안하던 짓을 하면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법이다.
그 장갑이 내 손을 벗어나 어디선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장갑의 따스함을 느낀 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고
그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버스는 터미널을 벗어나 도로 위를 달리는 중이다.
어쩐지 험난한 길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온 몸을 엄습하는 가운데 찾아든 곳, 경기도 장흥의 찻집 “느리게 살기” 다.
아니나 다를까...웬만해선 인간 네비게이션이요 길 찾기의 도사라고 이름났지만 아주 오랜만에 찾은 장소여서인지
뭔가 확 뜨이게 변한 곳도 아닌데 예전의 기억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됨과 동시에
당황하여 선뜻 “느리게 살기” 찻집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다.
게다가 도로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 자체 1,2층 따로 라는 공간의 분리가 눈에 익지 않아서 더더욱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말하자면 당연히 찻집 이라는 개념은 1층 일 테고 전체적으로 보자면 어딘지 모르게 찻집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
보통의 잣대였다면 “느리게 살기”는 그 편견을 뒤로 한 채 곁 자락 계단을 통해 서로 다른 공간으로 분리되어
찾아들게 되어있어 한번쯤 이곳이 찻집이 맞나 싶은 의문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사고의 틀 ‘그럴 것이다‘를 깨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찻집의 공간치고는 굉장히 넓어 보이는데 관리하시기가 만만치 않겠어요?‘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찻집이 이렇게 클 필요가 있나 싶어 고생을 자초하는가 싶을 때도 있지만
저는 늘 ~이래야 된다 라는 속설에 민감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제 마음이 가는대로 하고자 하는 의도대로 움직이는 편이라서 이 공간을 마련할 때도 별로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사람들에게 다양하고도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차와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를 한 공간에서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부담 없이 큰 공간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많은 노력과 애씀이 있어야 이 공간이 활성화 되고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드는 공간이 되겠습니다만
'느리게 살기'는 이제 시작이니 최선을 다해 제 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쇼.”
그렇다...어려서 일찌감치 필드하키와 투창 선수로 승승장구의 앞날을 예비해 놓은 채로
잠시 해남 대흥사에서 수련 중에 만난 한 잔의 차가 그의 일생을 바꾸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중학교 2년생으로 첫 잔의 차 한 모금이 그의 폐부를 잠식하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차의 향기로움에 매료된 채
차의 세계로 인도받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 날 이후 그는 운동선수로서의 육체적 고단함을 정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일상의 변화를 꾀하고
차 문화에 관심을 가지며 일상의 다반사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
물론 달고 구수했던 첫 느낌의 차 맛을 잊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차인으로서의 긍지를 놓지 않으며
나름의 신념으로 대중들에게 차를 전파하려는 사명감 또한 지니게 되었음이니
어느 순간에 인생의 방향전환이 시도되는지는 민감하게 느끼지 않으면 모를 일이나
늘 자신의 변화하는 기운을 놓치지 않는 감각 또한 세상살이의 기본이 아닐까 싶다.
어쨋거나 한 잔의 차는 그의 운명을 바꾸게 되고 그 끈은 점차로 영역을 넓혀 우리 역사학에 관심을 갖게 하고
그러다 보니 저절로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것을 섭렵하도록 요구 당하게 되었지만
그것조차도 행복에 겨울 일이었다는 김다솔씨.
대학 내내 사학도로서의 긍지와 한민족의 자존감을 느끼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차 맛의 진수에 빠질 무렵
한영모-한묏부리- 스승을 만나게 됨으로서 다시 한 번 정신적인 승화감을 얻게 되었다는데
한낱 대학생의 신분으로서 1994년 무작정 전남 강진 다산초당 앞에서 ‘다솔당’이라는 찻집을 차려
일거수일투족을 차와 함께 하는 생활로 물들여가기 시작하던 그 시절이 행복의 절정이었다고.
그 이후로 조상들이 일궈놓은 차에 관련된 모든 것을 탐닉하면서 세상의 이치뿐만 아니라
온 우주에 관한 관심과 氣를 비롯한 본래의 정신문화 함양을 위해 노력하는 반면
실제적으로는 그를 활용한 척추 교정 및 역학 공부, 원예를 비롯한 실내 인테리어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목수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하니 완전한 내 공간에서의 차인이 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즐기며 차인 생활을 해내던 그 무렵,
생각보다 녹록치 않고 만만치 않은 찻집 쥔장으로서의 열망은 조금씩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절망을 선사받게 되고
좌절감을 안겨주게 되었으니 혈기 충천의 젊음은 세속의 잣대 앞에 무너지게 된 셈이다.
그러나 한 번 차인이 된 이상 쉽게 물러설 수는 없는 법, 새로운 활력소와 재충전의 기회를 얻기 위해 다시금 공간을 옮겨
1997년 전남 광주에서 ‘이서 가는 길’이라는 찻집을 다시 열고 가장 기본적이며 상식적인 자세로
대중과 교감을 나누기 시작하니 그로부터 소신 있는 찻집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면서 물오르도록
차생활의 묘미를 만끽하게 되는 횡재도 있었음이니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가 정답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바꿔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니 의도하지 않았던 건강의 적신호다.
정상인으로 태어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후천성 오른쪽 청각 장애인으로서 겪어내야 했던 삶의 질곡과
어려움은 두말 할 필요 없이 고달팠을 일이나 그나마 차를 접하게 되면서 위로받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지만
어느 날 또 다시 명명 지어진 난치성 구내염-베체트병-환자로서의 이중고는 삶에의 의욕을 정지시키고
한때 방황에 방황을 거듭케 하니 그의 인생 역정 또한 우여곡절의 연속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오뚜기 처럼 일어난 김다솔씨...
치료를 병행하기 위해 서울 근교로 삶의 터를 옮기고 다시금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아직은 시작단계라 많은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지만 또다시 성실함과 생활 속의 차를 지향하면서
한걸음씩 차근차근 그가 그리는 차의 세계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
개념을 깬,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찻집의 면모를 지니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367의 2, 2층. 년중무휴
오전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031-829-8890
첫댓글
동행했던 그 시간이 그립습니다, 벌써
녹록치 않았던 다솔님의 여정을 잘 그리셨습니다^*
그러게요...언제 다시 한번 찾아들 일입니다.
글이야 더 길게 쓰고 싶엇지만 한정된 페이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