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박성은 리아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성지는 감곡매괴 성모 순례지 성당입니다.
순례는 먼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괴 성모 순례지는 그 한걸음을 조용히 내딛게 해 주는 아름다운 성지였습니다.
감곡 매괴 성모 순례지는 남양 성모 성지와 국내의 성모 성지로 이름이 높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순례지일 뿐, 한 등급 위인 성지는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신자들 사이의 인지도는 웬만한 성지들과 대등한 수준이라고합니다.
매괴는 해당화를 가리키는 한자어로 한국 카톨릭 초창기에 묵주를 부르던 말입니다. 묵주의 원래 용어인 로사리오가 장미꽃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감곡 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130년이나 되는 충청북도 최초의 성당이라는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초대 본당 임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중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밑에 대궐 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 즉시 임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 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습니다. 당시 대궐 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 왔던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매괴성월인 10월 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임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 대로 감곡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이 된 것입니다.
매괴성지를 방문한 날은 장마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너무나 예뻤 던 날이었습니다.
매괴성지의 연보와 안내입니다.
읽어 보고 순례를 한다면 매괴 성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성당 입구를 들어서면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글귀와 임가밀로 신부의 동상이 보입니다.
프랑스어 본명은 카미유 부이용, 한국 이름은 임가미입니다. 먼 이국땅으로 가는 아들을 위해 임 가밀로 신부의 어머니는 선물로 기적의 패를 한 보따리 안겨주며 "요긴하게 쓰일데가 있을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합니다. 결국 임가밀로 신부는 프랑스에서 직접 제작한 루르드의 성모상과 기적의 패를 한 보따리 들고 조선으로 입국했습니다.
그리고 전술한것처럼 여주 부엉골에 부임한 임가밀로 신부는 민응식의 집을 보고 성당을 세울 결심을 하지만, 당시 권력과 부를 손아귀에 쥔 민응식은 집을 팔지 않겠다고 하자 이에 돈이 없던 임가밀로 신부는 "저 땅에 성당을 세우게 해서 당신께 봉헌하게 해 주십시요.!"라며 성모마리아께 청하며 밤에 몰래 민응식의 집 주변에 기적의 패를 묻었다고 합니다. 결국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민응식은 임가밀로 신부에게 땅을 팔게 되었고 즉시 성당을 지었습니다.
성당 정면 사진입니다. 붉은 벽돌과 높은 첨탑이 아름답습니다.
성당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오래된 기둥과 아치형 천정이 성당의 역사를말해 주는듯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특이한 점은 제대 뒤에 십자가와 예수님이 아닌 성모님이 계셨습니다.
매괴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제작하여 1930년 대성전 건립 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성당은 인민군 사령부로 이용되었는데 인민군이 성당 안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일을 겪자, 그 원인이 성모상이라 생각하고 총을 쏘았습니다. 그러니 7발을 맞고도 성모상이 부서지지 않자 기관단총으로 사격 했으나 총알이 피해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끌어내리려 올라갔을 때 성모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인민군들은 성모상을 건드릴 수 없었고 그때부터 성당에서 철수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는 이 성모상은 '칠고의 어머니' 또는 '매괴의 어머니'로 불렸으며 성모상 앞에서 또는 이콘 앞에서 기도하고 많은 이들이 외적 내적 치유를 받고 있습니다.
성당의 오른쪽에는 성모님상이 정말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성모님상의 오른쪽에 매괴박물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촬영 금지인지라 아쉽지만 눈으로만 보고 마음에만 담아 왔습니다.
광장의 예수님께서 손을 벌려 반겨 주시며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하십니다. 신기하게도 정말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꼈답니다.
성모광장과 성모동굴에 관한 안내문입니다. 정말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이곳이 위의 안내문에서 말하는 성모광장과 성모동굴입니다.
임가밀로 신부의 독문무공이자 절세신공인 기적의 패 땅에 심기는 일제가 성당 뒷동산에 강제로 신사를 세우려고 하던 때에도 발휘되는데 일제의 만행을 본인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자 임가밀로 신부는 "당신께서 주셔서 성당을 지어 봉헌한 거룩한 땅이니, 당신께서 지켜 주십시오!!"라고 하며 또 밤에 몰래 신사 주변에 기적의 패를 묻었다고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후 신사 공사만 하려하면 야생동물이 떼거지로 나타나 방해하거나, 억수 같은 비가 내리거나, 인부의 팔, 다리, 손가락이 부러지는 안전 사고들이 겹쳐 공사를 할 수 없어 결국 신사 공사가 철회 뵈었다고합니다.
사형 선고까지 받은 임가밀로 신부는 "마지막으로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를 드리고 죽게 해주시오." 라고 말 했으며 이것이 받아들여져 감곡 성당으로 돌아와 마지막 미사를 봉한하고 일본 경찰들이 사형을 집행 하려 하자 동네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와 해방을 알려 사형 집행이 중지되었다는 영화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합니다.
이곳은 가밀로 명상의집입니다. 정원이 참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는데 기둥을 따라 십자가의길이 있어 비가와도 눈이와도 언제 어느때나 기도드릴 수 있을거 같았습니다.
이렇게 영화 한 편을 본 거 같은 매괴성지 순례를 마칩니다.
연중 제18주일 주보에 김덕심 아우구스티노(1798~1841)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김덕심 아우그스티노는 망설임속에 형제들보다 늦게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속에 머물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배 밖으로 발을 내디뎠듯이 김덕심도 모든 의문이 풀려 신앙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 라고 아우구스티노가 고백했듯이 그도 자신을 부르시는 주님께 마침내 삶을 맡겼습니다.' 라는 내용을 읽었을 때 성지 순례를 하며 매번 제가 느꼈던 의문이 바로 주님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모든 의문이 풀리고 두려움이 사라진 뒤에 내리는 결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확신의 결과가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내딛는 결단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바로 지금 부르고 계십니다.'라는 글이 제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