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야김 왕이 예레미아를 통해서 전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의 내용을 듣고도 오히려 그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따르기보다는 거부하는 죄악을 저질렀는데,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여호야김의 아들인 고니야(Coniah, 여호야긴 혹은 여고냐라고도 불림)이 왕이 되었지만, 고니야는 약 3개월밖에는 왕위에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바벨론이 고니야를 포로로 끌고 가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왕이 요시아(Josiah) 왕의 아들이며 여호야김의 형제인 시드기야(Zedekiah)를 남왕국 유다의 왕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1절). 이미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 제국의 손 안에 들어간 상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시드기야와 시드기야의 신하들과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하고 있었습니다(2절). 그러면서도 유다 왕국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위기에 계속 놓이게 되자, 시드기야 왕은 제사장 스바냐(Zephaniah)를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시드기야 왕과 유다 왕국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요청합니다(3절). 예레미야는 갇힌 상태가 아닌 자유로운 상태였습니다(4절). 2절과 3절의 말씀은 매우 미묘하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자기들을 이해 기도해 달라는 요청은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서도 자주 발견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하면서 자기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서는 기도해 달라는 매우 자기 중심적인 모습은 우리에게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그런 와중에 남왕국 유다를 돕기 위해 애굽(이집트) 군대가 애굽에서 출발했다는 소문이 들리자,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바벨론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5절). 유다 왕국은 애굽과 동맹을 맺고 바벨론의 공격을 막기 위해 애굽에 군대를 요청했었기에 애굽 군대가 유다를 좁기 위해 출발한 것입니다. 유다 왕국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떠난 것은 유다로 오는 애굽 군대를 상대하기 위해 떠난 것이지, 예루살렘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말씀하십니다(6절). 유다를 돕기 위해 애굽을 출발한 애굽의 군대는 유다 왕국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며(7절), 바벨론 군대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루살렘을 초토화(焦土化)시킬 것이라는 말씀을 시드기야 왕에게 전하게 합니다(8절). 하나님은 바벨론 군대가 유다 왕국에서 떠날 것이라며 스스로 속이면서 희망을 가지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9절), 설사 유다 군대가 바벨론 군대를 쳐서 바벨론에게 부상자만 남게 하더라도 그들이 일어나 다시 예루살렘 성을 불사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0절). 그리고 이러한 말씀을 시드기야 왕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에게 요청하여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했었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시드기야에게 혹독한 현실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7절)라고 하시면서 시드기야가 간구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간구하는 것이기에 헛된 간구라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대부분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문제가 발생하고, 어려움에 봉착하면 순조롭게 잘 해결되고, 어려움이 잘 극복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자기의 유익과 안전을 위해서만 간구하는 자들의 간구는 하나님께 상달(上達)되지 않습니다. 내 생각과 내 계획, 내 만족을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헤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귀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무조건 기도부터 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먼저 귀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 먼저 하나님을 온전히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게 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