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기] 물질의 빠라맛타가 물질 자체에 고유하게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인식했을 때만 있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사야도] 내가 알지 못해도 물질 자체의 빠라맛타의 성질은 있습니다. 닙바나도 빠라맛타입니다.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닙바나는 있는 것입니다.
[요기] 좌선을 하면서 새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는 있지만 새는 없다는 이해가 바로 생겼습니다.
[사야도] 새라는 것은 새의 그 뜻, 의미만 있을 뿐이지 진짜 새는 없습니다.
[요기] 다음에 소리가 진짜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또 내가 소리의 빠라맛타를 아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제가 소리의 빠라맛타를 모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지 빤냣띠가 있기 때문에 그런 빠라맛타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뿐입니다.
[사야도] 그렇습니다. 소리를 아는 것만으로 빠라맛타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론적으로만 아는 것이고 들은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요기] 위빳사나 수행은 빠라맛타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빠라맛타를 대상으로 사띠를 둘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찾아보니까 제가 빠라맛타로서 사띠를 둘 수 있는 것은 아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는 마음을 알 때 아는 마음은 모양도 색깔도 없습니다. 아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것이 빠라맛타입니다.
[사야도] 소리를 대상으로 이해하지는 못합니까?
[요기] 마음의 대상으로는 이해합니다.
[사야도]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빠라맛타입니다. 대상이라고 알면 대상의 알아지는 빠라맛타적 성질을 안 것입니다.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또 알아야 할 것이라고 아는데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아는 성질을 아는 것과 같이 이것도 알아야 할 것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