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상여(司馬相如)는 출세와 입신양명을 위해 사람을 호리는 글을 적극적으로 도구로 사용했던 인물입니다. 마지못해 힘에 굴복한 글을 썼다면 필자가 그를 욕할 리가 없습니다. 그는 한무제가 도교적 신선술과 거대한 제국적 스케일을 좋아한다는 점을 파악하고, 황제의 비위를 맞추는 화려하고 장엄한 사부(辭賦)들을 자발적으로 지어 바치고, 무제의 총애를 받으며 고위 관직에 올랐고, 권세와 부를 누리고 뽐내며 시시덕거리며 목에 힘주고 금의환향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사마상여열전>을 보면, 그가 한무제의 사신 자격으로 파촉(쓰촨성) 지역에 파견되었을 때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상여가 파촉에 이르자, 현의 태수 이하가 친히 교외까지 나와 영접했다." "거마(車騎)가 으리으리하고 옹용(雍容)하여 그 행차가 매우 성대했다." 요즘 말로 하면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똘마니들 수백을 거느리고 고향을 찾으니 군수영감까지 버선발로 달려 나와 맞았다. 정도가 되겠네요.^^)
사생활 처세에서도 부호 탁왕손의 무남독녀인 탁문군을 거문고 연주와 감성적인 유혹(봉구황)으로 사로잡아 야반도주를 감행했으나, 막상 출세한 이후에는 마음이 변해 첩을 두려다가 탁문군의 항의 시(백두음)를 받고야 멈추는 등 세속적인 면모를 강하게 보였습니다. 필자가 부의 천재작가라 칭하는 사마상여를 필자가 "화려한 기교와 선전선동으로 사람의 영혼을 호리는 영적인 사기꾼"으로 평가한 것은, 그가 문학을 진실된 내면의 관조를 통해 인류에게 두고두고 빛이 되는 길이 아닌 정치적 출세와 대중의 감정을 흔드는 도구로 썼기 때문입니다.
탁문군이 진짜 문학을 아는 천재 작가입니다. 다음 글을 보시면 알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속여 놓고 자기 마음을 속인 줄도 모르는 작가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글들이 버젓이 문학상을 받고. 전부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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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랑시 (怨郞詩)/탁문군
一朝別後, 二地相懸.
只說是三四月, 又誰知五六年?
七弦琴無心彈, 八行書無可傳.
九連環從中折斷, 十裏長亭望眼欲穿.
百思想, 千系念, 萬般無奈把郎怨.
萬語千言說不完, 百無聊賴, 十依欄杆.
九重九登高看孤雁, 八月仲秋月圓人不圓.
七月半, 秉燭燒香問蒼天.
六月三伏天, 人人搖扇我心寒.
五月石榴紅似火, 偏遇陣陣冷雨澆花端.
四月枇杷未黃, 我欲對鏡心意亂.
忽匆匆, 三月桃花隨水轉.
飄零零, 二月風箏線兒斷.
噫, 郎呀郎, 巴不得下一世, 你爲女來我做男.
한 번 헤어지고 나서,
두 곳으로 서로 떨어지게 되었어요.
서너 달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대여섯 해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칠현금도 뜯을 마음 없고,
여덟 줄 편지도 전할 길 없으니,
구련환은 가운데를 끊어 버리고,
십 리마다 설치된 정자에 올라 눈 빠지게 기다립니다.
백 가지 생각,
천 가지 그리움,
만 가지로 그대를 원망하기 시작했소.
만 가지 천 가지 온갖 말로도 내 마음 다하지 못하고,
백 가지도 넘는 무료함으로
열 번도 넘게 난간에 기댔지요.
구월 구일 높은 곳에 올라 외로운 기러기 바라보았지만,
팔월 추석에도 우리 만나지 못하는군요.
칠월 중순엔 촛불 들고 향 사르며 하늘에 빌었고,
유월 삼복엔 부채질에도 내 마음 시렸답니다.
오월 석류는 불처럼 붉은데, 어쩌다 한바탕 찬비 꽃잎을 치는군요.
사월 비파는 아직 푸른데 거울 마주하고 싶어도 마음 어지럽습니다.
삼월 복사꽃은 바쁘게도 물 따라 흘러가는데,
이월 연은 줄 끊어져 하늘하늘 날아갑니다.
아, 그대여, 그대여, 다음 한 세상에서는 그대 여자 되고 나 남자 되어요.
[출처] [司馬相如와 卓文君] 마음을 흔드는 詩 : 봉구황☞원랑시☞백두음|작성자 후투티/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