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大智度論)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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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이 15심 안의 것을
무엇 때문에 8인라 하는가?
[답]
사유도(思惟道) 안에서는 지혜를 이용함이 많고
견제도 안에서는 견해[見]를 이용함이 많다.
인지(忍智)는 인(忍)에 따르나니,
그것은 왜냐하면
인(忍)의 공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인지의 두 가지 일,
곧 능히 끊고[能斷]
능히 증득[能證]하면서
8인(忍) 가운데에 머무르나니,
그 때문에 8인(人)이라 한다.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 및
벽지불의 뜻에 대하여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처음 뜻을 낸 보살
[初發意菩薩]이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 뜻을 낸다는 것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모양에 따라
마음을 낸 것이니,
이것을 처음 뜻을 내었다 하며
진실로 낸 마음[眞發心]이라고도 한다.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똑똑히 알고
그리고 마음의 모양을 알면서
모든 번뇌를 깨뜨리기 때문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좇아
무너지거나 뒤바뀌지도 않기 때문에
이 마음을 처음 낸 마음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범부는 비록
모든 결사(結使)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공덕을 듣고
대비(大悲)의 마음을 내어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서
‘나는 당연히 부처님이 되어야 한다’고 하나니,
이 마음이 비록 번뇌 안에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높고 귀하기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이 공경하게 된다.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의 태자가
처음 태 안에 있을 적에도
모든 다른 아들들보다 뛰어나므로
모든 천인과 귀신들이
모두 함께 존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살의 마음 또한 그와 같아서
비록 결사 안에 있다 하더라도
모든 천인과 신통 있는 성인들보다 뛰어나다.”
또한 보살로서 처음 발심해서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전에
수기(授記)를 받고 법위(法位)에 들어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이를
아비발치(阿毘跋致)라 하나니,
아비발치의 모양은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이와 같은 등의 대중에서
우두머리가 되기 때문에 마하살이라 한다.
이 보살은
온갖 성인들의 주(主)가 되기 위하여
큰 마음[大心]을 내어서 온갖 고통을 받나니,
마음이 견고하기가
마치 금강과 같아서 동요되지 않기 때문이다.
금강과 같은 마음[金剛心]이라는 것은
온갖 결사와 번뇌로서는
동요시킬 수 없는 마음이다.
비유컨대 마치
금강으로 된 산은
바람에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모든 나쁜 중생과
악마 같은 사람이 와도 뜻을 따라 행하지 않고
그의 말을 믿거나 받지도 않으며
성을 내고 욕을 하고
헐뜯고 때리고 가두고 찌르고 벤다 하여도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이가 와서
그의 머리와 눈ㆍ골수ㆍ뇌ㆍ손ㆍ발
ㆍ가죽ㆍ살ㆍ근육ㆍ뼈를 구걸하게 되면
그에게 남김없이 다 주며,
구하는 이가 아직 만족하지 못한 채
다시 성을 내고 욕설을 퍼붓는다 해도
그때에 마음으로 참으면서 동요하지 않는다.
비유컨대 마치 견고한 금강산에
어떤 사람이 와서 찍고 파고 헐거나
모든 벌레들이 와서 문다 해도
훼손됨이 없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금강과 같은 마음이라 한다.
부처님은 스스로
금강과 같은 마음의 모양을 말씀하셨다.
“이른바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한 달ㆍ한 해ㆍ한 세상ㆍ두 세상
ㆍ나아가 천만 겁의 한량 있는 세상 동안
큰 서원[大誓]으로 장엄해서는 안 되며,
나는 한량없고 수 없고 끝이 없는 세상에서
나고 죽는 동안에
온갖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해탈시켜야만 한다.
둘째,
나는 모든 안팎의 가지고 있는
귀중한 물건들을 버려야 한다.
셋째,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동등한 마음을 지니면서
미워하거나 애착함이 없어야 한다.
넷째,
나는 3승(乘)의 여(如)로써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 해탈시켜야 한다.
다섯째,
이러한 중생을 제도한 뒤에도
실로 제도한 바가 없고 그 공(功)도 없으며,
이 가운데에서
마음 또한 후회하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여섯째,
나는 모든 법의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오지 않고 가지도 않으며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도 않는 등의
모든 모양을 알아야 한다.
일곱째,
나는 청정하고 뒤섞임이 없는 마음으로써
6바라밀을 행하여
살바야(薩婆若)에 회향해야 한다.
여덟째,
나는 온갖 세간에서 할 일과
그리고 출세간(出世間)에서
알아야 할 바의 일을 잘 알아서
모두 다 통달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아홉째,
나는 모든 법의 한 모양의 지혜문[智門]을
분명히 이해해야 하나니,
이른바 온갖 법들은 필경공(畢竟空)이라
온갖 법들은
마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모양과
같다고 관하면서
모든 억상분별을 여의는 것이다.
열째,
나는 모든 법의
두 모양[二相]과 세 모양[三相]
내지 한량없는 문을 알면서
분명하게 통달해야만 한다’고 해야 하느니라.”
두 모양이라 함은
온갖 법에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니,
있다거나 없다는 것과
나거나 없어진다는 것과
짓거나 짓지 않는다는 것과
형상이 있다거나 형상이 없다는 것 등이다.
세 모양이라 함은
하나라거나 둘이라거나 여럿이라는 것이니,
셋부터 그 이상은 모두 여럿이라 한다.
있다거나 없다거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과
상(上)ㆍ중(中)ㆍ하(下)와
과거(過去)ㆍ미래(未來)ㆍ현재(現在)와
삼계(三界)와
세 가지의 법인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 등의
세 가지 문이다.
네 가지 문과 다섯 가지 문 등,
이렇게 하면서
한량없는 법의 문을 모두 통달하고
막힘이 없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마음은 뉘우치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의심하지도 않으면서
믿어 받고 통달하여 막힘이 없으며,
항상 행하면서
쉬지 않고 모든 번뇌를 없애며
그리고 그 과보와 모든 장애되는 일을
모두 부서지게 하는 것이
마치 금강의 보배로
모든 산을 꺾어 부수는 것과 같으며
이 금강과 같은 마음 안에 머물러
대중에서 우두머리가 되어야 하나니,
불가득공(不可得空)이기 때문이다.
불가득공이라 함은,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이 큰 마음을 내는 것이
마치 금강과 같으면서도 교만한 마음을 내면
그 죄는 범부들보다 더하니,
이 때문에
“얻을 바가 없는[無所得] 것으로써 한다”고 한다.
모든 법은 일정한 모양이 없어서
마치 환과 같고 변화한 것[化]과 같다.
또한 마음이 마치 금강과 같다고 함은
“3악도(惡道)에 떨어질 온갖 중생을
내가 대신 갖은 고통을 받아야 하고,
이 낱낱 중생들을 위하여
대신 지옥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
나아가
이 중생들이 3악도로부터 나와서
모든 선의 근본[善本]을 쌓고
무여열반에 이르고 난 뒤에는
다시 온갖 중생을 구제하리니,
이와 같이 하면서
차츰차츰
온갖 중생이 모두 다 제도되고 나면
그 뒤에는 스스로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모든 공덕을 쌓고는
그제야 부처님이 되어야 한다”고 하나니,
이러는 동안에
마음으로 후회하거나 위축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생을 대신하여 갖은 고통을 받고
스스로 모든 공덕을 지으면서
오래도록 나고 죽는 데에 머무르되
마음으로 후회하거나 위축되지 않나니,
마치 금강의 땅[金剛地]이
삼천대천(三天大千)세계를 받치고 있으면서
동요하지 않게 하는 것과 같이
이 마음이 견고하기 때문에 금강과 같다고 한다.
크게 흔쾌한 마음[大快心]이라 함은 ,
비록 견고한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 크게 흔쾌하지 못함은
마치 말이 비록 큰 힘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 크게 흔쾌하지 못한 것과 같다.
중생들에 대하여
두 가지의 동등한 마음을 얻기 때문에
음욕의 마음을 내지 않나니,
만일 치우친 사랑이 있으면
이것은 도둑이 되어서
나의 동등한 마음을 깨뜨리게 된다.
부처님 도의 근본을 위하여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행하기 때문에
성내는 마음이 없고
언제나 모든 법은 인연으로
화합하여 생긴지라
자기 성품[自性]이 없다고 관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마음이 없으며,
중생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갓난아이[赤子]보다 더하기 때문에
괴롭히는 마음이 없고
중생을 버리지 않으면서
부처님 도를 귀히 여기기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