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 이야기] 녹두나물 '쉽게 변하는 특성'에 빗댄 별명
申叔舟(신숙주)와 숙주나물
숙주나물은 맛이 빨리 변하는 특성을 지녔다. 그래서 성삼문과 함께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가담하여 변절했던 申叔舟(신숙주)의 이름을 따서 '숙주나물'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 설에 의문이 든다.
단종 1년(1453) 11월 4일 安平大君(안평대군)의 역모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수양대군이 그 기미를 밝혀 역모자들을 제거한다. 나이 어린 단종은 그 사건 이후에도 금성대군의 집에서 무사들이 모이는(1455) 등 불안한 거동이 끊이질 않자, 종묘사직을 능히 보존하기 어려웠고 또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역모사건을 잘 해결한 수양대군에게 국정을 대리토록 하다가 정식으로 양위를 하게 된다. 상왕이었던 단종이 또다른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노산군으로 강등 유배된 일은 그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단종이 정식 양위를 했으므로, 세조의 신하가 된 신숙주가 변절을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그 경위가 어떻든 간에, 사육신의 후손들이 세종 때의 명신인 정인지 또한 세조의 영의정이었지만 신숙주에 대한 반감이 더 큰 것은 성삼문 일행이 세조를 시해하려는 계획을 신숙주가 망쳤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들이 가장 미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역모를 고변하여 영의정까지 오른 정창손일 것이다. 하지만, 영조실록에 "세조 때 성삼문이 신숙주에게 말하기를, '너는 집현전 달밤에 세종께서 원손을 안으신 채 하교하신 일을 생각치 않느냐?'"라는 부분 때문에, 신숙주 한 사람에게만 모든 미움을 집중적으로 몰아서 조선 말기 또는 일제 시대 때, 쉬이 변하는 특성을 가진 녹두나물에 '숙주나물'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숙주는 세종대왕을 도와 우리 민족의 영원한 보물인 훈민정음 창제에 가장 큰 공헌을 하였고, 또 세종 때에는 북방 오랑캐의 수많은 침입을 막아내는 등의 큰 업적을 세운 인물로, 숙주나물에 얽힌 불명예를 떠안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옥소산인이 한글 8-8, 통권 81호(1940. 11. 1.)에 게재한 "신숙주가 평소에 녹두나물을 즐겨하여 밥상에 이 나물 반찬이 끊일 데가 없었다. 그러자 세조대왕이 앞으로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명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라 한다."라는 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것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주된 인식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