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아톰에서 둘리·짱구까지 목소리로 46년간 국민 울고 웃긴 성우계의 전설
박영남씨
"능청 100단 짱구로 20년 살다보니 나도 짓궂어졌네요"
김윤덕 기자/조선일보 : 2012.09.01.
건강 악화로 짱구역 하차_병원선 만성위염이라는데 암 진전 가능성 있다기에 좀 쉬겠다고 했어 은퇴? 죽는 날까지 할 거야
한때 배우될 뻔…_1966년 데뷔, 첫 배역이 소음 당시엔 탤런트가 부족할 때라 궁녀로 몇번 사극에 출연했지 김무생·전원주 등 다 성우 출신
내 목소리엔 엔도르핀 돈다_손오공·딱따구리·왕눈이… TV엔 목소리만 나가지만 마이크 앞에선 온몸 던져 연기
◀ 박영남의 대표작인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위)와 '아기공룡 둘리'의 둘리.
'짱구는 못 말려' 팬들이 두 번 놀랐다. 작년 5월 극장판 '초시공! 태풍을 부르는 나의 신부'가 개봉됐을 때, 다섯 살 짱구 목소리를 내는 성우가 60대 할머니란 사실이 밝혀져 입을 벌렸다. 이번 여름 또한번 놀랐다. 그 할머니 성우의 '전격 하차' 때문이다. 20년간 귀에 익은 능청 100단의 짱구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성우의 건강 위독설, 심지어 사망설까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다.
'스캔들'의 주역인 성우 박영남(66)을 만났다. "짱구, 안 죽었쩌요. 이제 건~강해요." 부리부리 엉덩이춤의 달인인 짱구의 목소리와 제스처로 답하는 그녀의 넉살에 인터뷰가 즐거웠다. 짱구뿐 아니다. 1970년대 '우주소년 아톰'의 아톰 목소리로 주목받기 시작한 박영남은 '아기공룡 둘리'의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의 손오공, '개구리 왕눈이'의 왕눈이, '이상한 나라의 폴'의 폴 등 어린 남자 주인공 목소리를 섭렵해온 한국 성우계의 '전설'이다.
데뷔 이후 46년 동안 끄떡없던 건강이 지난해 급속히 나빠졌다고 했다. "밥도 쓰고, 물도 쓴 게 몸이 영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만성위염이래요. 초기 암으로 진전할 수도 있대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무리 아파도 마이크 앞에만 서면 선파워처럼 힘이 펄펄 솟았는데, 이번엔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좀 쉬겠다고 했지요." 은퇴설은 일축했다. "2㎏이나 살이 쪘는 걸. 만선(滿船)이 되려면 멀었는데 은퇴는 무슨. 죽는 날까지 할 거예요."
◇'능청 100단' 짱구 20년
―인터넷이 난리더라. '국보급 성우'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국보급? 와아~ 기분 좋다. 사망설은 좀 그랬지만, 내 목소리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싶은 게 힘이 불끈 솟더라. 미국 시카고에 사는 팬들까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전화가 왔으니. 내가 헛살진 않았나 보다."
―건강은 회복되신 건가.
"물론이다. 목소리 짜랑짜랑한 거 봐라, 하하! 밥을 규칙적으로 안 먹어서 생긴 병이다. 신경이 예민한 데다 완벽주의이고, 녹음한다고 밤샘하는 일이 잦아 젊어서부터 위가 안 좋았다. 주치의가 제발 밥 좀 많이 먹고 다니라고 사정하더라."
―짱구 목소리가 바뀌어서 실망하는 팬들이 많다.
"웬만하면 계속 하려고 했는데, 마이크 앞에 서면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몸이 안 좋았다. 내가 NG라고는 안 내는 사람인데, 나 때문에 대사 흐름이 끊기면 후배 강희선(짱구 엄마), 오세홍(짱구 아빠)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고사했다. 짱구의 새 목소리를 맡은 후배 정혜선이 열심히 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짱구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후배도 잘하더라."
―박영남의 짱구는 숨소리까지 능청과 익살이 뚝뚝 묻어날 만큼 악동이었는데, 새로 바뀐 짱구는 살짝 모범생이 된 것 같아 어색하다.
"내가 하도 오래 해 익숙해 그렇겠지. 정혜선이 나를 따라 하지 말고 자기만의 짱구 목소리를 창조해냈으면 어땠을까 아쉽긴 하다. 나는 생활 자체가 짱구일 만큼 20년을 짱구에 푹 빠져 살았다. 강희선, 오세홍이랑 셋이 마이크 앞에 서면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지 애드립이 줄줄 쏟아졌지. 후배들이 잘 받쳐준 덕에 박영남의 짱구가 빛날 수 있었던 거다."
―지난해 다섯 살 짱구 목소리를 60대 할머니가 낸다고 해서 대단한 화제가 됐었다.
"녹음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바람에 그 난리가 났지. '개그콘서트'인가 하는 프로그램이 날 화나게 했다. 개그맨이 어린이들에게 '너희들 짱구가 네 또래 친구로 알고 있지? 미안하지만 이 60대 할머니가 그 짱구야' 하면서 내 사진을 떡하니 보여준 거다.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싶어서 펄펄 뛰었다. 사진 보고 아이들이 실망했을 걸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찬다."
―일본 원작인 '짱구는 못 말려'는 들여올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외설적이고 비교육적이라고 해서.
"원래가 성인만화로 제작된 걸 SBS가 들여와 어린이용으로 만들었다더라. 원작 보고 나도 처음엔 이런 만화가 어떻게 방송에 나갈 수 있을까 싶었다. 녀석이 바지를 훌러덩 벗질 않나, 예쁜 누나들 가슴 만지는 상상을 하지 않나. 그런 장면은 죄다 편집해서 어린이용으로 만들었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애는 무척 이상하게 생겼는데 볼수록 묘한 매력을 지녔더라. 어수룩해 보이지만 실은 아주 똑똑하고 영리한 꼬맹이다. 능청스러운데다 고집도 있고. 착하고 정의롭기만 한 주인공이 아니라는 게 짱구 인기의 비결 아닌가 싶다."
―짱구 목소리는 어떻게 만드시나.
"짱구스럽게! 처음 시작할 때 담당 PD는 똑똑한 목소리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내 생각은 달랐다. 능청과 장난기와 고집스러움을 버무려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걸 살리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20년 하다 보니 나도 짱구처럼 짓궂어졌다."
―일본 원작인 '크레용 신짱'에 나오는 짱구 목소리도 들어보셨나.
"물론이다. 나와는 다르지만 개성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성우(야지마 아키코)는 1967년생이라더라.
"그렇게 젊어? 좋겠네(웃음)."
◇처음 맡은 배역은 '소음'
1966년 TBC 성우로 첫발을 디뎠다. 한국 성우의 간판스타 배한성과는 서라벌예대 동창, TBC 성우 2기 동기다. 80년 언론사 통폐합 때 KBS로 자리를 옮겨 8기 성우로 활동했다. 처음부터 어린이 목소리를 전담한 건 아니다. "왜요. 나도 젊은 여자주인공 목소리 많이 했지요. 주로 라디오 드라마였지만. '아차부인 재치부인'이란 드라마 들어봤어요? 완전 인기였는데." TV 시대가 열리면서 만화영화 주인공 목소리를 독차지했다. 아톰을 시작으로 마루치, 딱따구리, 둘리, 신밧드, 꿀벌 마야, 꼬마유령 캐스퍼, 손오공에 이르기까지 박영남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자란 세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다 어린이 목소리를 도맡게 됐을까.
"성우 숫자가 워낙 적을 때라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어린이도 맡게 된 건데, 잘하니까 자꾸 시키더라. 철없는 내 성격과도 잘 맞고(웃음). 이제는 젊은 여자 목소리를 어떻게 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성우가 원래 꿈이었나?
"전혀. 국어책 낭독시키면 감정을 실어서 재미있게 읽는다고 선생님한테 칭찬받았을 뿐이다. 수다스러운 데다 얘기를 재미나게 해서 애들을 좀 웃기긴 했다. 연극을 해볼까 생각은 했어도 성우 될 생각은 안 해봤는데, 서라벌예대 한 교수님이 배한성과 나한테 TBC 성우시험이 있으니 쳐보라고 하시더라. 끼가 좀 있었는지, 몇천대 일을 뚫고 합격했다."
―배한성씨와는 굉장히 오래된 친구다.
"'야, 배돌이' 하고 부르는 사이지. 하하! 내가 만날 어린애 역만 하니까 나이도 어린 줄 알고 (목소리) 광고료도 적게 주길래 한 번은 그랬지. '내가 배한성 동기예요!'라고. 다들 화들짝 놀라더라."
―성우가 된 뒤 처음 맡았던 배역, 기억 나시는지.
"'소음'. 웅성웅성, 시끌시끌한 소음 말이다. 배한성도 나도 선배들 뒤에 조르르 서서 소음부터 시작했지(웃음). 그러다 '불이야, 불!' 하는 외침, '손님, 뭐 드시겠습니까?' 하는 다방 종업원 목소리도 내고. 그 한마디를 진짜 잘 해내고 싶어서 톤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TBC 성우 1기에는 장유진·이선영·김세원 등 스타 성우들이 포진해 있었다.
"선배들마다 개성이 진짜 강했지.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등 '공주' 목소리는 장유진 선배가 도맡았고, 이선영 선배는 캐서린 헵번 같은 연기파 배우들 목소리를 정말 잘했고. 후배이지만 성선녀의 우피 골드버그 목소리도 훌륭했지. 김세원 선배의 우아하고 고상한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다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세계적인 배우들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성우들이 부럽지 않았나.
"전혀. 내 목소리로 연기하기엔 굉장히 과장되고 불편한 캐릭터들이다. 설령 내게 배역이 들어왔어도 거절했을 거다. 아이들 목소리 연기할 때 나는 가장 즐거웠다. 할머니가 됐어도 다섯 살 아이를 연기해달라니 행복해 죽겠다."
―유명 탤런트 중에 성우 출신이 많더라.
"TBC가 TV를 개국했는데 탤런트 숫자가 많지 않으니 성우들을 동원해 연기를 시키더라. 사극에 궁녀 자리가 모자라서 나도 몇 번 궁녀 분장을 했다(웃음). 그러다 정말 좋은 배우가 된 분들이 많다. 김성원·김무생·김민자·김을동·전원주·김용림 선생까지."
―배우를 하셨으면 어땠을까.
"노(no)노노노! 한국방송대상(1996)도 받고 한창 잘나갈 때, 나도 대중 앞에 나서볼까 생각해본 적은 있다. 동기 배한성이 MC로 너무 잘 나가길래 자극을 받은 건데, 길게 생각할 것 없이 판단이 딱 오더라. 이유는 하나. '비디오'가 안 됐다. 주제를 안 거지, 하하!"
◀ 성우 박영남은 하나의 목소리로 각기 다른 캐릭터를 변주했다. 위에서부터 아톰, 딱따구리.
◇내 목소리에 엔도르핀이…
―박영남의 대표작은 역시 '짱구는 못 말려'인가?
"나는 '날아라 슈퍼보드'도 참 좋았다. 어린이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저팔계를 연기한 노민, 사오정을 연기한 유해무와 함께 환상의 팀워크로 만들어간 작품이다. 녹음하다가 웃음보가 터지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온 에너지를 쏟아부어 만들었던 좋은 작품이다."
―한국 대표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아기공룡 둘리'에서 둘리 역을 하신 것도 자랑스러울 것 같다.
"물론이다. 그런데 1편만 내가 했다. 2편은 둘리 목소리를 바꿨는데 그래서 아쉽다. 내가 연기한 둘리는 귀엽고 똑똑하면서도 약간의 외로움, 연약함도 지닌 아기공룡이었는데 2편의 둘리는 캐릭터가 전혀 다르더라. 팬들의 평가도 분분했던 기억이 난다."
―짱구나 둘리처럼 목소리가 바뀌니 캐릭터의 성격도 다르게 느껴진다.
"목소리는 생명과도 같다. 소리로 그 사람의 심성을 느끼듯이, 소리가 있어야 캐릭터가 살아 움직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소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누구나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화면만 보고 마이크 앞에서 연기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마이크 앞에서 그야말로 생쇼를 한다(웃음). TV에는 목소리만 나가지만 성우들은 마이크 앞에서 온몸으로 연기한다. 내가 맡은 배역의 감정은 물론, 걷고 달리는 동작 하나하나, 호흡까지 정밀하게 따라잡아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 연기 흐름에 푹 빠져 있을 때는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쉬지 않고 녹음에 몰입하지. 한 번은 PD가 '선생님, 우리도 화장실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얼굴 없는 연기자'의 보람은 어떤 걸까.
"내 목소리 들으면 엔도르핀이 확 돈다더라. 정신이 반짝 들고. 그거면 충분하다."
―성우들 설 자리가 없다고 한다. 요즘은 상업광고에도 성우가 아닌 유명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새로움을 찾는 광고업계는 새로운 목소리를 찾는 게 당연하다. 성우들이 노력하지 않은 탓도 크다. 연기를 목숨처럼 여기며 사는 후배들이 우리 때보단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평소에도 이렇게 짱구 목소리를 자주 내시나.
"버릇이 되어서(웃음). 친구고, 사위고, 손자고 전화가 걸려오면 '잘 있었쩌요?' 하고 인사를 했더니 미국 사는 큰딸이 핀잔을 주더라. 애들도 크는데 이젠 좀 점잖게 사시면 안 되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너, 내 나이에 애들처럼 즐겁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남편 되시는 분은 성우 아내를 자랑스러워하는지.
"내가 워낙 애교가 많아서, 하하! 출근할 때 어린애 목소리로 '다녀오세요~' '일찍 오세요~' 하면 귀여워하더니, 이젠 지겨운가 보다. 반응이 없다. 시어머님이 '우리 집안 여자들은 밖으로 나돌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하셔서 결혼 후 1년 쉬다가 분가하자마자 다시 방송사로 달려간 게 지금까지다."
―다시 태어나도 성우 하실 건가.
"어우~ 그 정도는 아니다. 딸만 셋이라, 하나는 성우로 키워볼까 했는데 다들 펄쩍 뛰더라."
―건강해 보이셔서 좋다.
"한 번 오지게 아프고 나니까 큰 욕심이 사라졌다. 인생은 어차피 쇼 아닌가. 아등바등 전전긍긍하며 살 필요 없더라.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가능하면 사람들에게 칭찬, 덕담 건네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몸이 조금 회복돼 공원으로 산책을 갔는데 어떤 어르신이 '웃는 얼굴이 건강하고 행복해 보인다'고 하시더라. 아프고 난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텐데도 그 응원 한마디에 살아야겠다는 힘이 솟구치더라. 그래서 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덕담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좋은 일 생길 겁니다~'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