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노트북과 100세 시대
지난주 서울의 한 포럼에서 강연 요청을 받아 오랜만에 예전에 쓰던 노트북을 들고 길을 나섰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건만, 건물이 낯설어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30분을 남기고서야 강연장에 들어설 수 있
었다. 서둘러 PPT를 띄우기 위해 인터넷을 연결하고 모니터에 HDMI 선을 꽂았으나 접촉이 나쁜지 화면이 나오
지 않았다. 할 수 없이 USB로 옮겨 보았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한 기계는 한없이 굼떴다.
보다 못한 포럼의 총무라는 분이 자신의 노트북을 내밀었다. “이걸로 하시죠.” 그 순간 내가 들고 온 노트북이 문득
사람처럼 느껴졌다. 15년도 훨씬 넘었으니 사람 나이로 치면 이미 노인이다. 한때는 제법 최신형이었지만, 반도체
의 세계는 무어의 법칙이니 황의 법칙이니 하며 해마다 성능이 배로 뛴다. 지금의 기계들과 비교하면 숨이 찰 수밖
에 없다. 게다가 저장 공간의 90% 이상이 차 있으니, 컴퓨터로서도 제대로 숨을 쉬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득 생각해 보니 사람도 컴퓨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면 뇌세포는 줄어들고, 생각을 이어 주는 신경망인
시냅스의 연결도 점점 느슨해진다.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사라지고, 익숙한 이름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
에 알츠하이머병 같은 질환이 더해지면 기억은 물론 일상의 기능마저 무너진다. 심해지면 걷고, 삼키고, 반응하는
본능적인 동작조차 어려워진다고 한다.
치매는 환자 한 사람의 병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족 전체를 긴 고통 속에 밀어 넣는다. 요즘은 국가가 일정 부분 돌봄
을 맡고 있지만, 예전에는 오롯이 가족의 몫이었다. 문득 고려장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비정하고 잔인한 풍습으로
만 여겨 왔지만, 어쩌면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나온 마지막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친구의 어머니가 십여 년의 병상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이 찾아가 얼굴을 마주해도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던 세월이었다고 한다. 식사를 할 수 없어 코로 호스를 꽂아 영양
분을 공급받으며 생명을 유지하셨다니, 그 시간을 견뎌야 했던 가족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의학의 발달로 우리는 ‘100세 시대’를 말한다. 그러나 수명만 늘어난 삶이 과연 축복일까. 건강이 동반되지 않은 장수는
본인에게도, 곁에 있는 이들에게도 고통의 연속일 수 있다. 강연장에서 남의 노트북으로 발표를 마치며, 나는 늙은 노트
북을 가방에서 꺼내 다시 바라보았다. 오래 버텨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할 때를 준비하는
지혜가 사람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든 사람이든,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작동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 있고,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일 것이다. 100세
시대를 산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존엄과 건강을 지켜 가는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