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전교조 보성지회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선생님 가족들이 많이 참여하셨습니다. 걷기를 끝내고 풍물로 한 판 놀고 아이들에게 오늘 걸은 느낌을 적어 달라고 했습니다. 생각 밖으로 잘 적어 주었습니다.
나는 오늘 덕정회관에서 벌교까지 갔다. 근데 계속 일등을 해봤다. 조금 힘들었지만 제비랑 뱀을 봤다. 그때 조금 으스스했다. 반쯤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철도를 건넜다. 조금은 사고가 날 것 같았다. 근데 차가 너무 빨리 다녀서 둘이 같이 못갔다. 처음에는 깃발을 안 들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지팡이 주세요” 해서 깃발을 줬다. 안정환 아저씨 같은 사람을 보았다. 엄청 멀리서 보면 그런데 가까이어서 안 같았다. 지금이면 얼마나 좋을까… 걷고 또 걸었다. 도착만하면 얼마나 좋은데 걷기운동을 하니 이제는 많이 걸어도 안 쉬게 계속 간 사람이 되면 좋겠다. 아주 보람찬 하루고 축구도 했는데 7:5로 우리팀이 이겨서 좋았다.
*보성초등학교 3학년 3반 백승재
아침부터 가족 모두 부산이다. 눈은 무거운데 설레이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덕정으로 갔는데 참으로 쑥쓰러웠다. 나는 내가 아니게 얌전 떨었다. 몇분? 몇 시간? 후에 말동무 평화가 생겨 점점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리는 약간 아팠지만 행복했다. 왜냐면 오랜만에 여러 사람과 걷는 것이 의미있었고 우리나라 쌀을 위하여 걷는 것이 뿌듯했다. 사람들이 점점 게을러졌다는 걸 느꼈고, 언뜻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공기, 좋은 아빠,엄마, 자유, 좋은 물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다. 몸이 풀리면서 더 힘든 것 같았다. 엄마, 아빠와 상의한 후 난 끝까지 걷기로 했다. 너무 기뻤다.손이 떨린다. 지금 쓰는 글은 글이 아닌 것 같다. 그만 쓰련다. 즐겁다. 행복하다. 이것만이 내 진실한 들림이다.
*송한내 14살
특별했던 하루
100일 걷기 관련 이야기와 자료를 열심히 보고 있는 혜영이와 은희
선생님의 권유로 오늘 하루 쌀 지키기 걷기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엔 왠지 낯선 감이 있었지만 금새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덕정회관을 출발해 벌교로 향하는 길.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약간은 의식이 되었지만 길을 걸으며 방송을 들으며 풍경을 보며 생각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왠지 내가 뭔 큰일인가를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는 중간에 큰 나무 아래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초등학생의 신명나는 판소리를 들었다. TV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더욱 흥겹고 멋스러운 소리였다.
그렇게 또 한참을 수입쌀 개방이 2004년에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라디오 방송이 나왔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조금 더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고 남의 일처럼 모른척 한다면 농촌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인지. 미국 평당 1,300원 우리 나라 40,000원 이런 엄청난 차이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래도 정부의 지원금과 여러가지 이유 등에서 우리나라 안의 사정보다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한 공기에 201원 우리 부모님, 농민들의 정성과 흘리는 땀에 비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돈. 그런 정성과 피와 땀들이 섞인 우리의 쌀인데 수입산 쌀에 비교한다는 것은 모욕이나 같은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그것도 자기가 먹을 것도 아닌 쌀들을 얼마나 정성들여 얼마나 좋은 것을 줄 것인지가 의문이다. 의심하며 맘 불편히 식사를 하는 것이 낫겠는가. 아니면 맘 놓고 우리의 맛좋고 품질좋은 쌀을 먹겠는가. 이상이 사람들이 이런 것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나의 생각이다.
걸어오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자신과 상관이 있긴 하지만 별로 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농촌과 우리 나라 쌀을 위해 이런 운동을 펼친다는 것이 대단하다. 또는 왜?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덥고, 힘들고 이런 일을 하며 오늘 하루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아무 의미없이 보냈던 일요일 하루가 오늘만큼은 정말 특별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번일이 잘 되었으며 좋겠고 힘들지만 재미있는 하루였다.
송혜영 (예랑중 3학년)
농부가를 부르는 승이
아빠 차를 타고 덕정회관에 갔다. 난 거기서 농부가를 불렀다. 그 다음 벌교까지 걷기 시작했다. 가다가 개천을 보았는데 그 옆에 이상한 분홍색 물질이 있었다. 꼭 벌레 같아서 가까이 가서보니 알이었다.
걷고 있는데 앞에가는 트럭에서 이런 스피커 소리가 났다. “쌀은 우리 모두의 주식인데 한 달에 우리가 쓰는 돈에서 쌀이 들어가는 자리는 100% 중 4% 밖에 되지 않을만큼 쌀값이 떨어지고 있고 한 끼 우리가 먹는 쌀값은 201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끼에 먹는 쌀의 그렇게 싼줄 난 몰랐다. 그리고 수입콩은 대부분 유전자 조작이라서 안심하고 먹기 힘들다고 한다.
어떤 정자에 들러 밥을 먹었다. 바람이 시원한 물결 같았다. 놀다가
다시 출발을 했다. 나도 이번엔 깃발을 들었다. 앞쪽으로 가다가 안정환처럼 생긴 아저씨가 어린이는 뒤쪽으로 가라고 했다. 가다가 보니 발바닥이 아팠다. 하지만 계속 걸었다. 땅굴을 지나니 어느 정자가 나왔다. 거기엔 엄청 큰 나무가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고나서 쉬다가 출발을 했다.
벌써 다시 힘이 들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나는 우리쌀도 많은데 왜 쌀을 수입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이 운동으로 더 이상 쌀 수입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 승 (보성초등학교 6학년)
우리쌀을 지키자
우리 가족은 오늘 ‘우리쌀 지키기 백인 백일 걷기운동’에 참가했다. 일요일인데도 아침 7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오늘 출발지점인 조성면 덕정리 마을회관 앞으로 갔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2시간 정도 걷고 점심을 먹었다. 다리가 아프고 힘들었지만 참고 견뎠다. 내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 농촌과 우리 쌀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가슴에는 노란색 조끼에 ‘우리쌀 지키기 백인 백일 걷기운동’이라고 써져 있었다. 사람들이 내 가슴에 쓰여진 글을 보고 우리 쌀의 소중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또래인 평화는 아버지를 따라 진도에서부터 벌써 7일동안 걸었다고 한다. 나는 하루만 걷고도 지치는데 평화는 참 대단하다. 나는 평화가 서울까지 무사히 도착했으면 좋겠다.
*정한별 (벌교초등학교 3학년 4반)
우리쌀, 우리 농촌을 위해...
난 오늘 새로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처음 출발은 아주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가 아픈 동시에 마음속 어딘가에서 소리치고 있습니다. ‘우리 쌀을 지키자. 농촌을 지키자.’라며 말이다. 수입쌀이 들어오면서 우리 부모님뿐 아니라 모든 농민들은 한숨을 내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입쌀로 인해 우리 쌀의 값이 떨어져서 인건비마저 나오기 힘든 탓에 농민들은 또 농사를 지어야 하나 하며 고민중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우리 쌀, 우리 농촌 등 많은 걸 위해서 우리 쌀 지키기 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처음, 친구로 인해 오게 되었지만 지금은 친구 못지않게 농촌을 위한 내 마음이 더 간절하다. 우리 덕정마을부터 벌교까지 걸어서와서 내 다리는 퉁퉁부었고 땀을 많이 흘려서 머리는 지끈지끈거린다. 몇 시간이 걸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나무 그늘에서 조금씩 쉬어가고 수박도 먹으며 목적지 아니, 목적을 위해 우리는 계속 걸었다. 우리의 보약인 밥이 우리 나라 쌀로 짓는다면 더 맛있고 더 몸에 좋을꺼라 나는 생각한다.
나 한 사람이라도 우리쌀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우리쌀을 지키려는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수입으로 들어오는 쌀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쌀을 쭈욱 우리 농촌을 웃음으로… 힘들어도, 좋은 우리쌀을 생산하려고 농민들은 더 노력할 것이다.
지금 현재 내가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는게 더 감동적이면 우리가 소망하는 일이 꼭 이뤄지길 소망하며 바란다. 우리쌀을 위해 우리는 걷는다!!
*주은희 (예당중 3학년)
오늘은 걷기운동을 하였다. 처음엔 깃발을 들지 않았다. 나중엔 정철 선생님이 깃발을 주었다. 가면서 힘이 들고, 땀이 흘러 아빠께서 깃발을 들어주셨다. 우리가 입고 간 옷에는 ‘우리쌀 지키기 100일 100일 걷기운동, 농업회생연대’라고 쓰여져 있었다. 가는 길이 참 힘들다. 가는 길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성인 (보성초등학교 3학년 1반)
나는 오늘 아침에 조성리 덕정회관에 가서 걷기 운동을 했다. 다리가 아작나는줄 알았다. 그리고 나와 승재는 1등으로 왔다. 그리고 안정환 아저씨랑 개그맨 아저씨가 너무 웃겼다. 그리고 도착했다. 그런데 그땐 나는 반죽음이 되었다. 내가 들고 있던 깃발을 내던져 버리고 축구를 했다. 7:5로 우리가 이겼다. 기분이 좋았다.
*송란울 (보성남초등학교 5학년 2반)
지금 우리 농민들은 작은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쌀 수입개방을 앞두고 우리 쌀은 우리가 지켜야한다고, 더 이상 정부만 믿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농민들이 스스로 일어났다. 전국민에게 우리쌀이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우리 쌀을 지키는 것은 농민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중요한 농사철임에도 불구하고 100인 100일 걷기운동을 시작하였다.
남도진도부터 걷기를 시작하여 전국 농토를 밟고 북으로 올라가 서울에서 집결한다고 한다. 우리 가족도 이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조성 덕정회관 앞에서 모여 출발하였다.
농토를 따라 걷는데 한창 뿌리를 내리고 있는 벼들이 엊그제 태풍을 이겨내고 싱싱하다. 개울가 시멘트 담에는 드문드문 분홍빛 덩이들이 붙어있다. 가까이 가보니 작은 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우렁이알이라고 한다.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은 우렁이 알을 길러 벼논에 넣어둔다고 한다. 농약을 하지 않아도 우렁이가 잡초를 먹어주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잠시 논가 정자에서 쉬었다. 느티나무 아래라 시원하다. 수박을 먹으면서, 승이가 분 ‘농부가’를 들었다. 함께 따라 부르면서 우리 농부들이 더 이상 시름에 젖지말고, 농부가 내용처럼 ‘좋은 시절’을 맞이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농부가 아니라면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성실하게 밤낮으로 일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게 우리 농부들이다. 하늘과 땅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장 정직하게 살아도 살아주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농민들을 볼모로 삼아서는 안되리라. 농민들이 일한만큼의 대사를 공산품마큼은 지불해줘야 농민이 살고, 농촌이, 이 나라가 산다.
우리는 계속 길을 걷는다. 비온 뒤끝이라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빗살도 맑다. 바람은 시원하고 걷는 이들의 걸음걸음이 가볍다. 농로옆에는 콩들이 자라고 있다. 알뜰한 농민들이 작은 땅만 있어도 씨앗을 심어 키운다.
우리집 뒤에 있는 작은 텃밭을 가까이 보니 알겠다. 농작물 키우기가 아기 키우는 것만큼 정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고추, 토마토, 깨를 심고 있는데 길가에 심어져 있는 이런 농작물을 불때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태풍에 쓰러진 고추 모종을 다시 일읔 세우면서 농부들의 심정을 헤아려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건강하게 버티고 서 있는 고추며 토마토를 보니 그리도 예쁠 수가 없는 것이다.
열가재 아래의 구도로에 서 있는 정자에서 점심을 먹기위해 쉰다. 단청을 입힌 정자가 화려하다. 우리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쌀임 김침 다 맛있다. 요즘은 밖에서 음식을 먹을면 꺼려진다. 수입쌀에 수입콩, 수입밀가루, 수입고기 등 수입산이 너무 많다. 우리 땅에서 나온 것도 아니려니와, 믿을 수 없는 약이 많이 들어있으니, 이것이 우리 몸에 축적되면 앞으로 우리 장래는 어찌될까?
‘우리쌀 지키기’ 운동은 앞으로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전국민이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한. 무엇보다 중요한게 건강이 아닌가! 먹거리 만이라도 이제는 우리 것을 먹어야 하리라. 몸에도 정신에도 좋은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하리라. 우리 농촌이 번성하기를 바란다.
*김현옥 (보성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