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
지난 토요일 급작스레 정해진
번개모임에 가기위해 시간을 재던 중에
다른 한 친구의 톡이 올라온다.
"난 지금 출발했어! 걸어가려고~"
두 시간의 시간이 남았는데 걸어가면 거의 시간이 맞을거란다.
사실 나도 약속을 하고 거의 만보 정도의 거리라
걸어가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막상 아침에 준비를 하다보니 살살 꾀가 나서
요즘 행복하시라고 상냥하게 인사까지 해주는 지하철을 타고 가야지하고
느긋하게 쇼파에 앉아있다가
"앗~ 그래?~ 그럼 나도 걸어가야지~!"
답을 하고 바로 집을 나섰다.
십여분을 걸어 정릉천 산책길로 접어드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적당하게 오고간다.
산을 오르는 걸음은 느리고 힘들어 하지만
평지를 걷는 걸음은 아직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빠른 편이다.^^
잘 다듬어진 정릉천변 산책길이 만나는 곳은 청계천이고
그 곳에 만날 장소인 마장동이 있다.
햇살은 따사롭고 덥기까지해서 웃옷을 벗어들고
이제 막 새잎도 채 나지 않은 다듬어 놓은 꽃밭들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걷다보니 어느 다리 밑 그늘 쉼터에
부부가 쉬고 있는 모습이 저만치 보인다.
가까이 지나치며 흘낏 쳐다보니 70대 전후의 연배로 보이는데
남편은 긴 의자에 앉아 폰을 보고 있었고
부인은 가벼운 담요을 걸치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스쳐 지나며 바라본 부인의 무표정과
허공을 바라보는 촛점없는 눈빛에서
치매를 앓고있나보다하는 생각을 갖게하는데
모처럼 따뜻한 봄날
치매 앓는 부인을 휠체어에 태워 개천변 산책로에서
해바라기를 시키는 착한 남편의 모습이 걷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아니겠지' 하며 우리 거의 모두가 걱정하며 살아가는
그런 노후의 모습을 봐서인지
약속장소에 거의 다다를 때까지 걷는 내내
'나는 저런 착한 배우자가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물음을
내 자신에게 던지면서 쉬이 답하지 못하는 나를 보았다.
쉬운 병이 어디 있으랴마는
치매 십년을 앓다 돌아가신 엄마를 보면서
참으로 가족관계까지 어렵게 만드는 어려운 병임을 잘 아는 나로선
그런 일이 없기를 당연히 바라고 또 바라지만
혹시라도 보살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 짧지 않은 세월동안 치매 시어머니의 수발을 잘 견뎌준 아내에게
보답의 마음으로라도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해 본다.
이제 곧
그 산책길엔 온갖 꽃이 화려하게 필 것이고
그 남편은 몇 번 이고 그 산책길로 부인과 함께 나올 것이다.
********************************
아울러,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가정에도 건강이 늘 함께 하시기를~^^
첫댓글
둥실님도 참 좋은 분입니다.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께 하신 치매 간병을
잊지 않으시니,
두 분 다 좋으신 착한 사이,
착한 마음입니다.
두 분 건강하게 사셔요.
말씀 감사합니다^^
매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생로병사는 누구나 가야하는 숙명의 길입니다. 어쩔수없지요. 치매도 빨리오느냐 늦게오느냐 과정이지요. 단지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고 열심히 걷기운동하면서 사는 길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많은 매체에서 우후죽순 쏟아지는 건강정보들을 보노라면
모든 경우가 제게 해당되는 것 같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저 하루 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둥실님도 부부간에 정답게 사실 것같아요 아내의 병수발을 고맙게 생각하는 따스한 분이네요
전우애로 잘 지내고 있는 듯 합니다.^^
음......
의무감 일지
애정 일지
는 누구라도 모르겠지만...
의리 아닐까요?
세상에 쉬운 병은 없지만
치매는 넘 힘들다 하더군요.
본인한테는 천국, 가족에게는 지옥이라
하는 병.
간병하는 남편은 얼마나 힘들까요.
건강할 때 저축하듯 부부간에 서로
잘 해야할 것 같습니다.
옛날 제가 살던 시골마음에 손주며느리가
시집을왔는데 시할머니께서 그렇게
잘 해주시더래요.
나중에 그 시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렸는데
손주며느리가 치매 할머니 돌보는 일이 넘
힘들다가도 시할머니께서 잘해주시던
일을 생각하며 잘 모셨다고 하더군요.
둥실 님, 글 잘 읽고 갑니다.
스쳐 지나가며 본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게 생각납니다.
막내며느리임에도 지극정성으로 모셔준 아내의 은혜를 잊을 순 없죠^^
그저 그런 아픔없이 잘 살고 싶은 바램입니다.^^
참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쉬운 병이 없다해도 치매가 당사자는 통증 없이 보내지만 옆사람이 고통을 받기에 고약한 질병이지요.
안 걸리면 좋겠으나 부부 중 한 사람만 걸리는 것도 보살피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런지요.
더불어 둥실님의 걷기 예찬을 응원하면서 건강하시길 빕니다.
건강해야 걸을 수 있고 세상엔 걸어야만 보이는 풍경도 있기 때문입니다.ㅎ
사람살이의 특징중 한가지가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치매는 그것이 안되니 참으로 고약한 질병인듯 합니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더 힘들기도 하고요.
점점 뒤쳐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좋을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
얼마전 2박 3일 여행을 간 아내가 없는 빈집에서
덩그러니 앉아 있노라니
잠시지만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보이던지요....^^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 면회를
다니면서 창으로 마음이 아팠고 생각도
많았습니다. 머지않아 내게 닥칠 모습인데...
휠체어에 앉아 떠날 날을 기다리는 이들을
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을 했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진리인 것은 '까르페 디엠' 입니다 ^^
네~맞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옆지기 수영장 데려다 주면서
얘기 끝에 서로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고 했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