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arning : 모든 글은 저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w. 글쟁이 선생님
01. 장미
화병에 흰 장미를 꽂는다. 이제 붉게 물들겠지? 찰랑거리며 피가 병 안쪽에 흔적을 남긴다. 피의 자욱은 유리 화병의 벽을 잠시 벌겋게 물들이고 천천히 가라앉는다. 진득하고 뭉그적거리는 액체가 엉기고 풀어지며 장미의 줄기에 들러붙는다. 아아, 아름다워라. 뚜욱 뚜욱 떨어지는 핏방울이 서서히 퍼져나가는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하얗게 메말라가는 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걸……? 나의 이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을 위해서 희생된 점은 미안하지만, 저 사람은 딱히 가족이나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의 악이었달까? 그런 더러운 존재의 피가,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장미 위에도 뚜욱 뚜욱 떨어지는 핏방울이 나를 미적인 쾌락에 휩싸이게 만든다.
"이거 시장통에 팔아야겠다."
현대 미술의 가치를 추락시켜주지.
Writer : 데프콘, 탐스럽네, 껌정
02. 쌀
그 누가 죽은 이의 넋을 기린다고 하였나. 어차피 다 부질없는 것, 보잘것없는 그륵에 쌀을 담는다. 토도독, 토도독. 사기그릇에 쌀알이 나뒹굴며 가녀린 소리가 울린다. 토도독, 토도독. 마치 작게 속삭이는 그런 소리가. 토도독, 토도독. 마치 어느 죽은 이의 넋두리가 귓등 언저리를 담배 연기마냥 간지럽히듯. 토도독, 토도독. 젯밥이니 뭐니, 죽은 이가 어쩌니저쩌니. 지나가던 말들을 흘리며 담는다. 토도독, 토도독. 며칠 사이 푸석푸석해진 눈과 손길로 담아낸다. 토도독, 토도독. 쌀알이 부딪히는 소리만 정적을 가득 메우고 있다. 토도독, 토도독. 머리 한구석의 '왜?'라는 의문만이 현실을 부정하며 그저, 토도독, 토도독. 그 사람은 진밥을 좋아했는데-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토도독, 토도독. 스치는 생각에 멈칫했던 손길을 토도독, 토도독. 쌀알을 만진다. 이 쌀은, 이천 쌀이다. 대한민국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를 무시하고 이천 쌀을 쓰다니.
가만 안 두겠다. 호남차별의 끝은 어디인가. 그들의 치졸함을 용서할 수 없다. 임진년 조선의 멸절을 막은 지역이 어딘가. 수군의 식량을 책임진 전라도는 누가 기억하는 것인가. 농사 빼면 시체인 전라도를 이렇게 뒤통수치는 것인가. 벼룩의 간을 빼먹으랴. 못난 것들. …사실, 전라도 음식은 맛이 없는 건데 사람들이 착각한다. 아,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래서 오키나와 산 쌀을 수입했는데….
Writer : 데프콘, 탐스럽네, 어둗냐더너라아, 황교익
03. 가로등
우리가 가로등 아래에서 했었던 약속, 기억하나요?
"…헤어질 때마다 아쉬워. 했었던 그 약속."
"다음에 또 보면 되잖아~ 어서 들어가. 밖에 추워."라던 약속, 그 약속들은 다 무엇이었죠? 왜 그 약속을 다른 사람과 나누었던 거죠? 그 약속, 나한테만 했다면, 지금 같은 일 없었을 텐데.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요.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눈물 흘리면서 발버둥 치지 마요. 그때, 내가. …얼마나 슬펐는데. ……얼마나, 화났는데. 당신은 그거 모르잖아. 그래도 괜찮아요. 괜찮아. 우리 약속, 다시 만나서 하면 되니까. 먼저 가요. 나도 곧 가니까요.
"근데, 어딜 가는 거죠?"
Writer : 강다니엘, 탐스럽네, 어둗냐더너라아
04. 탈력감
지친다 지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동떨어진 곳에서 홀로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내가 행하고 있는 일련의 행위에 일말의 의미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죽어가는 삶이라는, 시간을 낭비해버리는 느낌. 차라리 식물이라면, 그저 덧없이 자신의 할 일을 하고 나서 저절로 사라질 존재라면. 그러나 나는 식물이 될 수 없으니,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
풍경 소리와 함께 폐부로 깊게 파고드는 새벽 공기.
나는,
비로소 호흡한다.
Writer : 데프콘, 김주영, 고원
05. 밤
이 밤이 너무 깊네. 고요한 밤이, 마치 바다처럼 깊어서. 내 숨통을 조여오네. 칠흑 같은 심해 속에서, 검은 손이 솟아 올라와 내 목을 휘감고. 아래로, 아래로. 더욱더 깊고, 고요한 곳으로.
나는 늘 외로웠다. 그날의 밤처럼, 마치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자신을 휘감고 있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별이며 달이며 모두 자신에게 숨어있는 그 날의 밤처럼.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어둠 속에서 몸을 감추고 있던 그 날,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난 너를 만난 그날.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너는, 나에게 물었다. 넌 누구니? 나는 대답했다. 그러는 너는?
'나는, - - - 야.'
"뭐라고?"
'나는, - - - 야.'
대체 뭐라는 거람.
"오, 그렇구나. 그거참 신기하네."
가장 중요한 걸 듣지 못했지만, 충분히 기괴한 이 상황에서 너무나도 아늑한 편안함을 느꼈기에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내 대답을 들은 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들려? 너는, 들려? 아니, 왜 들리지? 지금까지… 안 들었잖아.'
"안 듣다니? 너, 나를 본 적이 있어?"
'지금까지 아무리 - - - - -. 근데 왜…, 이제서야?'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다급하게 말하던 너는 터벅터벅, 빠르게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짙은 밤 속에서 달빛 한 줄기가 너를 비춘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급하게 잠에서 깬다. 간밤에 무슨 꿈을 꾼 것 같지만, 기억해보려다가 이내 포기한다. 어차피 하루 이틀 그런 것도 아닌걸.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하다가 문득 눈물이 나와서 세면대로 고개를 떨궜다. 왜,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가 지나가는 것 같아서 떠올리려 하지만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어김없이 학교를 도착하여 하루종일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밤의 내 꿈이 뭐였지? 꿈이 맞긴 한가. 아니, 사실 꾸기는 한 건가…? 아니 애초에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나의 삶인가? 지금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지난밤, 심해와 같은 밤의 어둠 속으로 끌어내려진 나는. 지금 이곳에 앉아있는 나와, 동일인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를 잃어버린 내가 나일 수 있는가. 나는, 나인가. 아니 애초에,
나라는 게 뭐지?
Writer : 데프콘, 지훈, 탐스럽네
* * *
모든 작품은 쑥남 여러분들이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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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네요. 다들 떡국은 맛있게 드셨나요?
저는 임용고시를 마쳤습니다. 결과가 어떠할 지는 모르겠으나, 막상 끝내니 시원섭섭하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짓을 다시 하진 않으리라.(정색)
'[새벽감성] 릴레이 소설 쓰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종 저녁에 올라오는 '[저녁감성] 같은문장 다른진행'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맞아요! 틈새 홍보였습니다. 둘 다 많이 참여해주세요~ :)
+) 소곤소곤 [부사] : 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이야기하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첫댓글 지니님들중에 같이 릴레이소설쓰실분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