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달맞이꽃....넘 이뻐요 무리를 지어 이렇게나.....
내가요~ 남들이 뭐라하든, 내 주관대로 살아갑니다.
내나름대로 개똥같은 철학이지만,
나만의 생각대로~ 누가 뭐라하든,
내가 추구하는 어떤 일이란 바로 나를 바로 세워주시는
하느님의 잣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양심이나 교양, 그리고, 멋있는 외적 보여지는 나....
그 어떤것도 하느님 앞에서 내세울게 하나 없다는것을요~
왜 이런말을 하냐면요,
살다보니 겨우 60년 밖에 안 살았지만
남들 사는것보다 몇 십 배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왔습니다.
죽음보다 더 힘든일이 있을까요?
제가요, 죽음 앞에 얼마나 많이 가 보았느냐 하면은요~
이 세상에 태어나자, 추운 동짓달~먹을게 없어서
엄마젖이 안나와서 젖을 빨지도 않고 숨만 쌕쌕 거리고
몇날 며칠을 아무것도 안먹더랍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웃목에 뒀다가,
내일이면 갖다가 묻으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아직 숨이 붙어있어서
옆집 박초시네 할머니께서 막걸리를 마시고설랑,
다 마시고 몇방울 남는 술을 내 입에 넣었더니
살려고 했는지, 술을 빨더랍니다.
그래서 겨우 물을 주어서 겨우겨우 살아났다는 말을
크면서 박초시네 할머니가 나에게 들려주시던 말~
00아, 너 내가 살렸어, 너 막걸리 받아먹고 살아났어~
그런후에, 국민학교 5학년 봄에,
64년도에 장티푸스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물론, 그때 돈이 없으면 병원 못가서 죽는 수가 부지기수 였습니다.
나는 그나마, 병원해택을 받아서 좋은 독일제 약을 먹고 치료해서~
봄부터 가을까지 앓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참, 명(命)도 이렇게 길 수가.....
1963년도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와서 힘들었는데,
마, 그때, 죽었으면 참 편했을텐데.....
그리고서, 80년 결혼하여 일년은 애기가 없었고,
82년 12월에 큰 딸 비비안나가 태어나면서~
나 역시 엄마를 닮아서 하혈을 하였습니다.
마침, 포항 성모병원에서 아기를 낳았으니 망정이지,
개인병원이였다면, 피를 못 구해서 살 수 있었을까?
그건 모르지요.
그런데, 참 죽다가, 살려고 하니 살게 되더라구요.
수녀원의 성모님! ~ 성모성월을 맞이하여.......
하혈을 하는데,
오후 5시 45분쯤 아이를 낳으러 분만실로 갔는데,
담당의사가 가운도 안입고, 체크양복을 입고서
아이만 받고 나머지는 인턴들에게 실습용으로 뒷마무리 하라고
지시를 하고서 가버리는 것입니다.
두 인턴들이 찢어진 피부를 깁느라,
아무리 기워도 자꾸 살이 터지니까,
둘이서 번갈아가면서 힘들다고 깁다가 터지고 반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도 보다 못한, 옆에 간호사가
'제가 할까요?'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하도 힘들어서 저 위에 있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겨우 병실로 왔었으나, 하혈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담당간호사가 나의 하혈을 볼 줄 몰라서
방치를 했던 것입니다.
그 간호사의 얼굴에는 검은 점이 3분의 1이 덮혀 있었기에 확실히 잘 압니다.
인턴을 데리고 와서는 이렇게 한다면서 피가 고여 있으면 안되니까~
나를 안심시키기위해
'본래, 애기낳고나면 이렇게 피가 흐르는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하혈인지 볼 줄 몰라서 방치하다보니
거의 6시간을 두었다가
내가 까무라치니까, 급히 의사가 출동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갑자기 비상이 난것이지요....
따귀를 자꾸 때리는데 눈을 떠 보니 수술실였습니다.
다른 의사가 '아줌마, 눈 떠요. 눈 감으면 죽어요....'
팔에는 링거주사바늘이 수도 없이 꼽았다가 뺐다가,
혈관이 약해서 다 터져버리는 겁니다.
하는 수 없어서 외과의 최고 배트랑 간호사를 불러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산부인과의 간호사들이 자존심 상한다고
저희들이 알아서 할테니, 선생님께서 가시면 우리들이 ....
그런데, 그 이과장님이 하시는말씀~
'내가 보는 앞에서 혈관주사 놓아서
괜찮아지는거 보고 갈거니까, 외과 베트랑 간호사 불러 올려!~'
겨우 정말, 200번이나 넘게 찔렀지만 다 혈관이 터져서
어쩔 수 없이 손등에 한번만 더 해보고 안되면 발목을 따자고 했습니다.
안되면 목이라도 따야지모...하시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는 태어났지만, 내가 만약에 죽는다면....
내 엄마와 똑같은 삶으로 마감하는 인생이 되기에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저 애를 두고 어떻게 해요?'
얼마나 간절했는지, 옆에서 보는 간호사와 의사 전부
열사람도 넘었는데, 다들 울면서 내가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어찌하여 겨우 바늘을 왼쪽 손등에 놓았는데, 수혈이 된것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도 다시 혈관주사를 놓았습니다.
겨우 살아난 것을 본 후에 과장님이 집으로 가셨습니다.
다음날, 담당 선생님인 하00의사가 다른 선생님과 같이 와서
뭔지는 몰라도 계속 설명을 하면서
조심하게 수혈을 맞아라고 했습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혈관이 약해서 터지고, 다시 꼽아놓으면 ~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같은 자세로 몇시간을 있자니, 고역이였습니다.
그래도 살려면 다리에 쥐가 나더라도 참아야했습니다.
수혈하다가, 터지면 간호사가 와서 막 짜증을 내면서~
꼽기도 어려운데, 왜 터지느냐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겨우 수혈을 9대 맞고서
다른 사람은 2박 3일만에 다들 퇴원을 하는데
나만 4박 5일동안 수혈을 맞고서 좀 더 지켜보자고 했지만
집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간호사들이 나를 보면서
'집에 가서 몸조리 정말 잘 해야합니다'
첫날은 그런대로 잘 지냈는데, 이틀째부터 자꾸 쓰러지는 겁니다.
젖이 안나오는지, 애도 젖을 빨다가 빨다가, 잠이 들어버립니다.
겨우겨우 힘들게 살아났지만, 병원에서 얼음으로 배에 24시간
채워둔게 허리가 너무 안좋았습니다.
서울 공군본부내에서 내 대녀의 결혼식에서.....93년도
비비안나를 12월 7일에 태어나서 12월 22일에 보름만에
유아세례를 시켰습니다.
정말, 다시 태어나는 기쁨과 죽지않고 같이 살아난 것에 대한
하느님께 감사의 표시로.....
대구 대교구 대주교님과 함께....대구효목성당에서 견진성사때......
그리고, 경주에서 살면서 백화점에 33가지 아이스크림 가게를 했었습니다.
아침에 애들 학교에 보내고 10시 출근이라,
자전거 타고서 그날은, 집에서 곰국을 끓여서 아이스통에 넣어
점심밥을 챙겨서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몇시간만에 깨어났습니다.
다들, 그때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혀서 신경외과에 3주 입원을 했습니다.
1편 끝~
2015. 8. 1. 새벽 3시에.....
Richard Straus
Der Rosenkavalier, Op. 59, TrV 227
(Act1) Di rigori armato il seno
내 가슴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고
첫댓글 정말 불운의 연속이었군요. 그래도 하느님은 자매님을 무척 사랑하시나봐요.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에요
감사합니다.....오늘도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 되시기를....
늘 주님과 함께 계시니 100수 하실것 같습니다.
아구, 그건 제게는 독약같은 말씀이에요. 전 짧고 굵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75세 정도 되어
편안하게 죽었으면......
바램입니다.....감사한 말씀인줄 알지만요.... 아닙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