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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돌아서 오른 곳 노은수 씨름 선수 모래판 위로 두 선수가 오른다. 무릎을 꿇고 앉아 서로의 샅바를 다잡는다. 상대의 호흡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 맞붙은 어깨에 긴장감이 흐른다. 주심의 구령에 맞춰 두 선수가 천천히 일어서고, 이윽고 경기가 시 작된다. 아슬아슬한 탐색전 끝에 한 선수가 다리 걸기로 승기를 잡으려는 순간, 상대는 반대쪽 다리를 재빠르게 뒤로 빼며 공격을 피한다. 그러기를 몇 번, 모래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한 선수가 먼저 쓰러진다. 그대로 경기 종 료. 1분 안에 승패가 결정되는 뜨거운 씨름의 세계다. 4월의 어느 주말,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씨름 대회. 모래판에서 내려온 이 는 거제 시청 씨름단 소속 노은수(42세) 님이다. 경기를 마친 그의 표정에 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만큼 후회는 없다. 담담히 다음 경기를 준비할 뿐이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의 직업은 꽃집 사장님이었다. 그전에도 운동선수는 아니었다. 입단 5개월 차 신인이지만 나이는 올해로 마흔둘, 팀의 맏언니다. 씨름은 우연히 시작했다. 현 소속팀 감독이 입단을 제안했다. "선택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았어요. 씨름이 재밌었거든요. 다만 나 이에 대한 걱정은 있었어요. 그래도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몸 관리를 성실 히 하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열정이 어려운 조건을 이겨 내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그가 처음 샅바를 맨 건 1999년,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교사의 꿈을 안고 체육 교육과에 진학한 그는 한 선배의 권유로 씨름을 접했다. 여러 운동을 즐겨 했지만 씨름은 처음이었다. 선배의 손에 이끌려 경상남도 씨름 대회에 참가했다. 일주일간 연습한 끝에 4위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로부터 2년 뒤, 경남 대표로 전국 대회에 출전했 다. 장소가 제주도라는 말에, 단순히 놀러 가고 싶다 는 생각으로 참가한 대 회였다. 결과는 우승이었다. 이번에도 훈련 기간은 2주에 불과했다. 씨름의 재미를 알아 가려는 찰나, 전국 대회 우승자는 대회에 다시 참가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작도 전에 길이 막힌 것. 하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만큼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른 길을 찾아갔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교육 관련 일을 했다. 남편을 만나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전념했다. 그러다 꽃집 문을 열었다. 좋아하는 꽃을 실컷 만지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이어 가던 때 대학 동기들 이 씨름 선수로 여성 실업팀에 입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대회에서 우승한 10년 전만 해도 여성 선수를 위한 실업팀은 없었다. 씨름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겼지만 그에게는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었다. 그가 모래판에 오른 건 2017년의 어느 날이었다. "시민 체육 대회에 동 대표로 참가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많은 종목이 있었지만 제 선택은 당연히 씨름이었죠. 16년 만에 모래판 위에 다시 섰을 때가 생생해요. 무척 설렜어요. 처음으로 '씨름을 해야겠다'라고 결심한 순 간이었죠." 이날을 계기로 씨름의 매력에 푹 빠졌다. 상대와 팽팽히 겨루다 생각한 기 술이 그대로 통하는 순간의 희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생활체육으로 씨 름을 배우고, 체력 훈련을 시작했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 성과가 나타났다. 작년과 재작년 전국 주요 씨름 대회 에서 일곱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것. 비록 아마추어들이 참가하는 2부 대회 였지만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입단 제의를 받았다. "이미 몇 차례 실업팀 입단 제안을 받았었어요. 스스로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해 거절했었죠. 하지만 작년에 현재 소속 팀 의 제의를 받았을 땐 '이제 는 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해 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7년 동안 가꾼 꽃집을 정리했다. 꽃집은 나중에라도 다시 차릴 수 있지만 씨름은 가장 젊을 때, 바로 지금 해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20여 년을 돌아 온 끝에 모래판에 제대로 올라 보기로 했다. 그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김해 집과 소속 팀이 있는 거제를 오가며 바쁘 게 지내고 있다. 주요 대회가 1년에 10회 이상 열리는 만큼 항상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 챙겨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꿈을 좇아 달리는 행복한 나날이지만 힘든 순간도 있다. 남학생부와 합동 연습을 하거나 전지훈련 같은 혹독한 일정을 마치면 온몸이 아프다. 열심히 노력해도 실력이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질 때면 속이 상한다. 준비한 것들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경기가 끝날 때는 커다란 산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오랫동안 선수로 지내 온 동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들어요. '이 친구들을 뛰 어넘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요. 이럴 때 옆에서 지지 해 주는 감독님과 팀원들이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에 하나씩.' 그는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한 걸음씩 차근차근 나아가 고 있다. 지나고 나면 모두 값진 경험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의 도전에 남편 역시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전력을 다하는 모습에 아이들도 그 어느 때보다 엄마를 따르고 응원한다. 보람차고 행복한 날들이다. “제 선택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집에서 짐 을 꾸리는데 아들이 세 번이나 잘하라고 말해 주더라고요. 딸도 다치지 말 고 돌아오라고 하고요.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이 정말 행복해요." 노은수(오른쪽) 님이 지난 4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2023 평창 오대산 천하장사 씨름 대회’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모습. 글 황혜원 기자 |
Carpenters Yesterday Onc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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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년을 돌아서 오른 곳..
망실봉님 덕분에.
감사히 즐감 합니다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소중한 방문글
고맙습니다~
꽃처럼 웃고
새같이 노래하고
구름같이 자유로운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