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8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일치주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뜻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간구하는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다.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2023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담화
선을 행하여라, 공정을 추구하여라 (이사야 1장 17절)
+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023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은 미국 미네소타 교회협의회가 준비했습니다. 미국 역사 속에서 미네소타는 인종 차별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었으며, 최근에도 백인 경찰관에 의해서 젊은 흑인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네소타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산적한 문제점들과 근본적인 해결책을 자신들의 경험에서 꺼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덤덤히 이 일을 서술하고 있지만, 미네소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수월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랜 부조리의 역사를 일일이 들춰서 다시 들여다보고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지 성찰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일 오전 11시가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가장 인종 분리적 시간이라는 … 사실은 우리나라의 비극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수치스러운 비극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불일치와 인류의 불일치 간의 접점을 드러내는 이 연설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분열의 뿌리는 죄, 다시 말해 주님께서 피조물 전체에 바라시는 일치를 거스르는 태도와 행동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1960년대 미국과 2023년의 우리의 상황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일지 모릅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경제적 위기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힘겹게 할 것입니다. 기후 위기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빨리 더 맹렬하게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의 병폐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알려 줍니다. “선을 행하여라, 공정을 추구하여라!”(이사야 1:7) 미카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서 6:8)
공정하게 행동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사람을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종, 성별,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 등으로 인해 만들어진 오랜 불이익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라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모든 사람과 화해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공의’의 의미를 다시 새겨봐야 합니다. 공의란 회복적 정의이며, 침묵 당한 이들을 대변하는 것이며, 불의를 만들고 유지하는 체제를 바꾸는 일이며,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마땅한 권리를 반드시 누리도록 촉진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봅시다. “폭동은 침묵 당한 이들의 언어이다.” 정치나 법의 잣대로 보면 폭동은 납득받지 못할 행위이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폭동은 사람들이 살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재빠른 대책과 도움이 없이는 사회가 존속되기 어려울 만큼 힘들어졌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시대는 이전의 그 어느 시대보다 부유했습니다. 그럼에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속에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공동체가 번영을 누리고 있을 때에 그 가운데 있는 어려운 이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데에 소홀해서는 안된다고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요청은 우리 시대에도 울려 퍼지기에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이들이 누구인지 숙고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악행과 불의에 맞서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경험에 대한 인식과 이해와 통찰을 어떻게 증진할 수 있는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공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2023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입니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갈라진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지난 100년 동안의 노력 끝에 일치에 대한 많은 진전을 이뤘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이루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하느님, 우리가 드리는 찬미를 받으소서!” 이제 우리는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봅시다. 선을 행하고, 공정을 추구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갑시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보살피십니다.
2023년 1월 18일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한국천주교회 김희중 대주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홍정 총무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대한예수교장로회 이순창 총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이철 감독회장
한국기독교장로회 강연홍 총회장
한국구세군군국 장만희 사령관
대한성공회 이경호 의장주교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윤창섭 총회장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우시홍 총회장
기독교한국루터회 김은섭 총회장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30012?gb=K1200 ]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1-3.15-17
형제 여러분,
1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2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15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16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축일1월 18일 성녀 마르가리타 (Margaret)
신분 : 공주, 수녀
활동 지역 : 헝가리(Hungary)
활동 연도 : 1242-1271년경
같은 이름 :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헝가리의 왕 벨라 4세(Bela IV)와 마리아 라스카리나(Maria Laskarina)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폴란드의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7월 24일)와 복녀 욜렌타(Jolenta, 6월 11일)의 동생으로 크로아티아 왕국의 스플리트(Split) 인근 클리스(Klis) 요새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는 몽골족의 침략으로 헝가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그녀의 부모는 만일 몽골족의 침략으로부터 헝가리가 무사히 해방된다면 어린 마르가리타를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은혜는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벨라 왕은 세 살 난 딸을 베스프렘(Veszprem)에 있는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맡겼다.
6년 후 성녀 마르가리타는 그녀의 부모가 오늘날 부다페스트(Budapest) 한가운데를 흐르는 도나우강(Donau R.)의 ‘토끼(Nyulak) 섬’이라 불리는 곳에 세운 동정 마리아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지냈다. 후에 이 섬의 이름은 그녀로 인해 마르가리타 섬(Margaret Island)으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다.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의 삶 전부를 수도 생활에 봉헌하며 살고자 했다. 성녀 마르가리타는 12살 경 첫서원을 했는데, 그때 정치적인 이유 등을 들어 서원을 반대하는 이들 앞에서 수녀원을 떠나느니 차라리 자신의 코와 입술을 자르라고 항변하며 자발적인 선택임을 이해시켰다.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로 아버지가 보헤미아의 왕인 오토카르 2세(Ottokar II)와 결혼시키려 할 때도 완강히 물리치고 수도 생활에 더욱 전념했다. 그리고 18살에 종신서원을 했다.
성녀 마르가리타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자기 극기는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드러났다. 그녀는 가끔 온밤을 지새우며 성체 앞에서 기도하였고, 기도의 효력을 확신하며 전능하신 하느님께 간구하였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하였다. “갑자기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할 순 없지만, 어떻게든 하느님께 청하면 무엇이든지 다 받을 수 있다.” 사실 그녀의 이 말이 입증된 적이 있는데, 한 번은 두 명의 수녀가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더 있다가 가라고 했지만 즉시 떠나려 하자 그녀의 기도로 갑자기 비가 와서 그곳에 더 머물렀다고 한다.
그녀는 자주 탈혼을 경험했고 기적도 많이 따랐다. 또한 사순시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잠을 거의 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식으로 인해 측은한 생각마저 들 정도까지 되곤 하였다. “성금요일은 하루 중에서 가장 짧은 날이다”라고 한 그녀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1271년 1월 18일 수도원에서 선종한 성녀 마르가리타는 1789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3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교회 미술에서 그녀는 보통 도미니코회 수녀복을 입은 모습으로 흰 백합과 함께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축일1월 18일 성녀 크리스티나 (Christina)
신분 : 동정녀
활동 지역 : 라퀼라(L'Aquila)
활동 연도 : +1543년
같은 이름 : 끄리스띠나, 크리스띠나
성녀 크리스티나는 유명한 치카렐리(Ciccarelli) 가문의 딸로 1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Abruzzo)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으며 마티아(Matthi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린 나이로 라퀼라의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한 후에 크리스티나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수도원에서 그녀는 덕행의 모범으로 인정을 받고 살았으며 특히 겸손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덕이 돋보였다.
성녀 크리스티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기도하였으며, 자주 탈혼 상태에 빠졌고, 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능력으로 유명하였다. 또한 그녀는 매우 엄격한 보속 생활을 하였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서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성녀는 1543년 1월 18일에 운명하였는데, 라퀼라의 어린이들이 성녀의 죽음을 온 도시에 전하러 다녔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고 한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4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승인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르가리타 (Margaret), 크리스티나 (Christin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