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속담이 있다. 맛은 대체적으로 혀로 느낀다. 그러나 매운맛은 통각으로 피부로 느낀다.
이러한 맛의 강도를 측정하는데는 단위가 있다. 예를 들면 당도 측정 단위에는 브릭스(Brix)가 있고 쓴맛에는 비트
니스(Bitterness)가 있다. 또 비유적으로 어렵고 불행한 경우를 접한 사람을 두고 '인생의 쓴맛을 본다'고도 한다.
반대로 행복한 순간을 보낼 때는 인생의 단맛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도 맛의 강도를 준용해서 단위를 매길
때 Lifetime의 약자로 L자만 따서 맛의 단위에 추가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인생에서 겪는 쓴 경험의 강도는 기존의 쓴맛 단위에 Lifetime을 붙여 L-Bit (엘비트, Lifetime Bitterness)
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첫 실연 정도는 5 L-Bit, 오랜 시간 준비한 시험의 낙방은 20 L-Bit, 신뢰하던 사람에게 배신
당한 경험은 50 L-Bit처럼 말이다. 반대로 행복과 만족의 강도는 단맛의 단위인 브릭스를 차용해 L-Brix (엘브릭스,
Lifetime Brix) 로 표현할 수 있다.
퇴근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3 L-Brix, 오랜 꿈을 이룬 순간은 40 L-Brix, 가족과 함께하는 평온한 일상은 비록
자극적이진 않지만 지속적으로 10 L-Brix를 유지하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매운 인생도 있다. 예측 불가능하고 순간적으로 강하게 다가오는 사건들, 이를테면 갑작스러운 이직 제안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는 L-Scoville (엘스코빌) 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짧지만 강렬하게 삶을 각성시키는 사건일수록 수치는
높다. 결국 인생의 맛은 단일한 수치가 아니라 L-Brix, L-Bit, L-Scoville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스펙트럼일 것이다.
너무 쓰기만 해도 살기 힘들고, 달기만 해도 금세 물린다. 적당한 쓴맛이 단맛을 선명하게 만들고, 약간의 매운맛이
삶을 깨어 있게 한다.
어쩌면 성숙한 인생이란 쓴맛의 L-Bit을 견딜 수 있는 내성이 생기고, 작은 행복에서도 높은 L-Brix를 느낄 수 있게 되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맛에는 땡감처럼 떫은 맛도 있다. 친구간에도 무슨 이야기를 한 다음에 "야 너 떫냐?"고
비아냥 거릴 때도 있다. 그렇다면 떫은맛의 강도를 측정하는 단위도 필요할 것이다. 쓴맛 보다야 덜 하지만 떫은 맛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인생의 맛을 논하다 보면 늘 단맛과 쓴맛이 먼저 나온다. 성공은 달고, 실패는 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를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맛은 따로 있다. 삼키자니 껄끄럽고, 뱉자니 민망한 그 맛. 바로 떫은맛이다.
어릴 적 땡감을 한 입 베어 문 순간을 떠올려 보자. 혀는 멀쩡한데 입안이 갑자기 사막이 된다. 침은 증발하고 표정은
굳는다. 단맛처럼 환호할 수도 없고, 쓴맛처럼 “에이, 인생 쓰네” 하고 넘길 수도 없다. 그냥… 애매하게 불쾌하다. 인생
에도 그런 순간이 꼭 있다.
친구와 술자리에서 이미 다 끝난 이야기를 굳이 다시 꺼냈을 때, 모두가 웃음 대신 물잔을 찾는 순간. 소개팅에서 분위기
좋은 줄 알고 한 농담이 허공에서 말라붙을 때. 그때 누군가 한마디 던진다.
“야, 너 좀 떫냐?”
이쯤 되면 떫은맛도 당당히 측정 단위를 가져야 한다. 쓴맛이 Bitterness라면, 떫은맛은 타닌에서 따와 Tannin Scale 정도
가 어울릴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의 경험이니 당연히 앞에 L을 붙인다. L-Tan (엘탄, Lifetime Astringency).
회의에서 상사가 농담이라고 던진 말에 아무도 웃지 않았을 때: 7 L-Tan.
이미 끝난 연애 이야기를 “근데 걔 요즘 뭐해?”로 꺼냈을 때: 15 L-Tan.
단체 채팅방에서 혼자만 진지한 장문을 보냈을 때: 30 L-Tan.
쓴맛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고, 단맛은 사진으로 남는다. 하지만 떫은맛은 다르다. 기억 저편에서 꼭 마른 입술처럼
다시 떠오른다. “그때 왜 그 말을 했을까.” 혀가 아니라 자존감이 바싹 마른다.
더 문제는, 이 떫은맛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떫은 커피를 일부러 찾는
사람은 드물다. 와인도 떫으면 “숙성이 덜 됐다”고 하고, 사람도 떫으면 “눈치가 덜 됐다”고 한다. 떫음은 언제나 ‘아직’의
맛이다.
그래서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인생의 떫은맛을 줄이려 애쓴다. 말을 하기 전 한 번 더 씹고, 농담을 던지기 전 분위
기를 살핀다. L-Tan 수치를 낮추는 기술, 그게 바로 어른의 매너일지도 모른다.
물론 완전히 떫지 않은 인생은 없다. 가끔은 떫어야 단맛이 선명해지고, 한 번쯤 입안이 마르듯 멈춰 서야 다음 말을 조심
하게 된다. 중요한 건, 그 떫은맛을 오래 남기지 않는 것이다. 물 한 모금, 웃음 한 번, 혹은 “아, 내가 좀 떫었지?”라는 솔직
한 인정이면 충분하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내 인생의 L-Tan은 몇이었지?”
만약 조금 높았다면 괜찮다. 내일은 덜 떫어질 테니까. 인생은 아직, 완전히 익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