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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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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아버지의 속옷을 빨며
앵커리지 추천 2 조회 278 24.03.27 11:07 댓글 3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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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3.27 12:18

    첫댓글
    우선, 앵커리지님의 글이
    제게는 감동을 줍니다.

    옛날 어른들은 대부분이 밖에서 잘 하시고
    자신의 가족에게는 자상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제 생각엔, 유교 탓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행동이 군자다운 면모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사실, 유교를 잘 못 받아들인 것이지요.

    제 친정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사랑이 너무 엄격했습니다.
    제 남동생도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는 동생에게, 그시절로써는 아버지는
    책임감은 있었다고 강조하면서 달랩니다.

    앵커리지님의 반면교사라는 말을 지지 합니다.ㅎ

  • 작성자 24.03.27 12:00

    맞습니다.
    저도 학문적으로 유교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의 유교는 공자의 가르침 중 예(禮) 만을
    중시하고, 인(仁)은 무시했다는 글이 있습니다.

    저는 장남으로서 그런 아버지가 너무나 싫었고
    지금도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제 업이지요.

  • 24.03.27 11:39

    우리 시대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맏아들... 함축된 이야기들이 참 많을 것
    같습니다.
    전 막내라... 동 시대 맏이들이
    어깨에 짊어졌던 그 짐에 얽힌
    애환들을 많이많이 듣고 싶습니다.

  • 작성자 24.03.27 12:02

    가난해진 시골 집안의 장남이 져야 했던
    그 무게를 어찌 필설로 다 할까요.
    가족은 가난에서 헤매는데 조상님 모시는
    일만을 앞세우는 가장을 어찌 평가할까요.

    그 시절의 문화라고 하기에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었고 가족은 희생되어야 했으니까요.

    다음엔 좀 밝은 글을 써야겠습니다 ^^

  • 24.03.27 11:47

    아버지의 속옷까지 빠시며 참 효자이십니다
    저도 장남인 형이 아버지를 끝까지 집에서 모셨기에
    형에게 늘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형네 집에 계시던 아버지를 몇번 목욕시켜드린
    적은 있습니다

  • 작성자 24.03.27 13:46

    저는 효자가 절대로 못 됩니다.
    그산님 형님께서 아버지를 끝까지 집에서 모셨다면
    형님보다는 형수님을 칭찬해야 할 겁니다.

    누구나 늙고 몸이 병약해지다가 죽는 건데 어찌
    그리 지혜롭지 못한지 안타깝습니다.

  • 24.03.27 13:45

    우리네 아버지들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아버지들은 아니겠지만요.
    홀로되신 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는
    장남의 고충 이해합니다.
    동생이 잘 보살펴 드려도 장남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지요.
    편찮으신 아버지의 속옷을 빨때에
    앵커리지 님 마음에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맏며느리라 장남의 힘듦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 작성자 24.03.27 13:57

    큰아버지께서 홀로 장수하셨는데, 그때
    큰집 누님이 "울아버지 어서 가셨으면
    좋겠다" 며 안타까워하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낀세대라서, 위로는 비슷한 성향의
    아버지를 모시고도 아래로는 늙도록 손주를
    봐주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도 감사하며 삽니다 ^^

  • 24.03.27 14:26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크실 것 같은데
    그래도 아들노릇 잘 하셨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반면교사로 삼고 삽니다.
    어찌 그러셨는지...

    대한민국의 장남,장녀로 산다는거
    짓누르는 그 무게감에 피로감만 높지요.
    사시느라고 애쓰셨습니다.
    토닥토닥요^^

  • 작성자 24.03.27 14:45

    우리 세대까지는 큰 자식의 무게가 아주
    무겁지요. 이젠 바뀌었지만요.
    살면서 가장 경계한 것이 무책임한 가장이
    되는 거였어요. 무능함은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무책임은 용납이 안 되거든요.

    위로 고맙습니다 ^^

  • 24.03.27 14:29

    내 아버지는 좀 아쉬운
    78연세에 가셨는데
    누구 손 하나 안 빌리시고
    어머니랑 계시다 가셨지요
    모두의 복이구나
    감사했습니다
    다른거 다 몰라도
    떠나는 복만큼은 아버지를 닮아야지 하지만
    기도할 뿐입니다
    아들이 아버지 속옷을 빨래함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 작성자 24.03.27 14:47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살짝 아쉽다고
    할 나이에 편히 갈 수만 있다면 그게 최상의
    인생 마무리 라고 봐요.

  • 24.03.27 14:55

    @앵커리지
    제 아버지는 막걸리를 좋아하셨는데
    어느날 제가 시골집에 간다고 편지를 보냈더니
    대문앞에 동백꽃을 항아리 가득 꽂아두고
    저를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61세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많이 그립답니다.

  • 작성자 24.03.27 15:03

    @제라 에구 안타까워라.
    내 딸들도 나중에 아버지를 그리워 했으면
    좋겠습니다.

    딸들이 세상을 잘 살아가라고 조금 강하게
    대한 것을 이해할 날이 있겠지요.
    이번주에 작은딸이 손주들과 함께 오는데
    장미꽃을 준비해야 할까 봐요 ^^;;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3.27 16:06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3.27 18:03

  • 24.03.27 19:26

    @제라 제라님
    대문 앞에 동백꽃을 꽂아두었다는 말에 눈물이 나요

  • 24.03.27 16:51

    비슷한 스승을 가지신 앵커리지님~^^
    그 저미는 가슴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저는 막내아들인데
    맏이 구실을 하고 살았습니다.(물론 제대로 하진 못했어요^^)
    결혼 후에는 그 짐을 아내가 졌드랬죠~
    하여~늦게 철들면서 부터는 받들어 모시며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 작성자 24.03.27 17:06

    그 아픔이 참 큽니다.
    대놓고 원망할 수도 없고, 내던져버릴 수도
    없이 끌어안고 가야 하는 상처지요.

    그래서 혼자 산으로 갑니다 ^^;;;

  • 24.03.27 18:46

    참 무겁게 읽힙니다.
    부모님의 속마음은 무엇일지~
    헤아리기 어려울 때가 있데요.

  • 작성자 24.03.27 18:53

    1930 년생에 6.25 참전용사인 아버지의
    시대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장남으로서 글로 다 쓰지 못한 아픈
    일이 많아서 아버지를 다 이해하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 24.03.27 19:25



    우리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버지 속옷을 빨아드린 앵커리지님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시골장에 가셔서 쓰러지는 그날까지
    아프다는 표현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 작성자 24.03.27 19:32

    아, 가리나무님 부친께서는 가시는 날까지
    일을 하셨군요. 아버지가 그립다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 해도 짐작이 갑니다.

    저도 제 아버지를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겠습니다.

  • 24.03.28 10:13

    제 아버지도 74세의 연세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하셨지요. 이북에서 오신 분들은 대부분 일가친척 하나 없는
    이곳에서 살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으려 하신것 같습니다

  • 24.03.27 20:25

    홀로 계신 아버님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으실겁니다

    노 부모님들의 마음속엔
    그동안 자녀들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게 회한으로 남겠지요

    지금처럼 그렇게 잘 살펴
    드렸으면 합니다.

  • 작성자 24.03.27 20:41

    수국화님의 의견을 읽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 24.03.28 00:21


    안그래도
    시부모님 연배셨던 앵커리지님 부모님이
    궁금했었는데
    여기서 소식을 접하게 되네요 ㆍ

    3년 간격으로 두 분 다 돌아가시고나니
    어디다 대 놓고
    자식 자랑할 곳이 없더이다ㆍ

    미웠다 고왔다 하는 게
    노부모 모시고 사는
    평범한 자식 마음인 듯해요


    툭ㅡ던져 놓은 보따리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안 보고 아는
    어머니 장보따리같은
    앵커리지님 글
    소통 1수위랄까요
    감사요


  • 작성자 24.03.28 15:29

    쏟아내고 싶은 얘기가 어디 이것 뿐일까요.
    다 쏟지는 못해도 이렇게라도 덜어내야
    더 버틸 것 같더이다.

    정말로 잘난 아들 집에 오는 날 잡히거든
    알려주소서.

  • 24.03.28 07:18

    도시한량이자 하루 두갑 하루
    두병은 기본이었던 울 아버지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었던
    지금은 사무치게 그리운~
    막내인 저를 많이 사랑해주신~
    췌장암 말기인데 가족
    고생시킨다고 수술. 항암치료거부하고
    진통제드시고 삶을 정리
    자연사를 선택하셨지요

    부친이 가고있는 그 길을
    앞으로 수도 없이 그림자 밟으면서 챙기실 앵커리지님

    부디 심신 건강하소서~^^♡

  • 작성자 24.03.28 07:27

    부친께서는 합리적인 판단과 결단력을 갖춘
    분이셨군요.
    그런 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참 어려운 결단이었을 겝니다.

    감사합니다.

  • 24.03.28 11:12

    아버지의 노릇을 못하면서 아버지라고 근엄하고 수시로 엄마에게 행패부리는 그옛날 아버지들.. 그런걸 답습안하려고 저는 평생 노력했습니다. 근데 모르겠습니다. 자식들이 내가 죽은후 평가하겠지요..

  • 작성자 24.03.28 09:44

    저도 늘 경계하는 게 그것입니다.
    싫어하면서 닮는 게 핏줄이라는데... 더욱
    돌아보고 조심하려 합니다.

  • 24.03.28 23:56

    앵커리지님 수고 많으셨습니다.정성껏 모시는 동생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 작성자 24.03.29 06:24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늘 가득합니다.

  • 24.03.29 20:08

    가족을 애증의 관계라고
    냉정하게 정의하기도 하더군요.
    많이 불편했을 가족사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글로 털어
    내셨습니다.
    엥커리지님께서 겪으신 모든 고난이
    이미 숙성의 과정을 넘어선 듯.
    향기를 발하네 합니다.

  • 작성자 24.03.29 20:14

    잘 보셨습니다.
    부대끼고 상처도 주지만, 끝까지 끌어안고
    가야 하는 게 가족이지요.

    글엔 쓰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있어
    자식들은 잘 자랐습니다. 고맙습니다.

  • 24.05.31 22:55


    글을 읽으며
    부끄럽기만 합니다

    저는
    아버지께 해 드린 게 없어서~
    어렸을적 주전자 들고
    막걸리 사다 드린 심부름 말고는..

  • 작성자 24.05.31 22:23

    저도 별로 해드린 건 없고 장남으로서 그저
    부친과 대립만 해서 부끄럽습니다.

    3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너무 후회가
    돼서 아버지께는 조금이라도 다가가려 하는
    정도일 뿐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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