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3. 28. 목요일.
등허리뼈가 아파서 잠자리에 누워서 뒹굴거리다가는 결국에는 일어났다.
03 : 10.
글 하나 복사해서 <아름다운 5060카페> '수필수상방'에 미리 올린다.
글 다듬어서 어떤 문학지의 동인문집에 올릴 예정이기에 사전에 오탈자, 어색한 문구 등을 더 검색해서, 고쳤으면 한다.
부탁합니다. 알려주시면 글 바로잡겠습니다.
물총새와 파랑새
최 윤 환
수십년 전인 1950년대 ~ 60년대 초. 쌍둥이 형제가 악동(惡童)이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서해안 곰내(熊川) 고뿌래(花望)* 욱굴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곳에는 수리조합(저수지)이 있다. 작은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면 물총새*는 뿌연한 물 위를 스쳐 지나가면서 잔챙이 물고기를 날쌔게 낚아챘다. 수심이 낮은 저수지의 물가에서 아이들이 발가벗고 멱을 감을 때도 물총새는 갯버들이 우거진 변두리 쪽에서 숨어 있다가 재빨리 물결을 차고 나가 곧바로 숲 속으로 날아갔다.
물총새는 소나무가 우거진 양지바른 해변가의 산속 黃土 흙두덕(벼랑)에 깊이 1m로 구멍을 곧바르게 뚫고 그 속에 예닐곱 개 알을 까서 새끼를 키웠다.
물총새 새끼를 꺼내서 보려고 아이들은 손이 겨우 들어가는 좁은 구멍에 땀으로 더럽혀진 얼굴을 바싹 붙였다. 팔뚝을 밀어 넣어서 손끝에 뭔가 물컹거리는 느낌과 함께 꼼지락거리는 새끼를 꺼냈다.
구멍 속으로 먼저 손을 밀어 넣기가 늘 겁났다. 독사(뱀)가 웅크리고 있다가 손가락을 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소나무 사이에 숨어서 물총새가 구멍 속으로 들락거리는 것을 지켜보면 안심이 되었지만 물총새가 보이지 않을 때에는 늘 께름칙했다.
물총새의 기억은 이것으로 끝났다. 물총새가 고향의 저수지에서 언제, 왜 사라졌는지 내 기억이 전혀 없다. 쌍둥이 형제가 1960년 벚꽃 필 무렵에 도회지 대전으로 전학 간 그 뒤로 사라졌다.
낮으막한 산자락을 낀 빈촌의 함석집 뒤에는 아름드리 참죽나무 십여 그루가 선대(先代)부터 있었다.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치는 아스란히 높은 나무 꼭대기에는 까치집과 땅까치집이 각각 있었다. 땅까치(파랑새)*는 여름 7~8월 높은 참죽나무 가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쳤다. 까치와 다소 비슷한 새를 '땅까치'로 불렀는데 조류사전을 보아도 이런 명칭은 보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몸길이가 까치보다 다소 작지만 몸색깔이 검푸르며, 부리와 다리가 붉은 여름철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니 땅까치로 여겼던 새는 파랑새*.
쌍둥이 아들이 팽나무에 자주 올라탄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일꾼 머슴을 시켜서 팽나무를 베어버렸다.
쌍둥이 형제는 나무 타기를 하려고 주변의 나무를 골랐다. 아름드리가 넘는 참죽나무가 대상이 되었다. 더군다나 새 둥지가 있었다. 참죽나무에 올라가 땅까치 둥지를 뒤져서 새끼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실끈으로 다리를 묶었다. 새끼가 자라서 날아다닐 무렵까지 지켜보다가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새둥지에 다시 올라가 실끈을 잘라야 했다. 실끈을 잘라내지 못하면 새끼새는 둥지를 떠나도 실끈이 짧아서 멀리 날아가지 못했다.
실끈이 다소 길면 나무 잔가지나 또는 둥지로 삐져나온 잔가지에 걸렸다. 나뭇가지에 칭칭 감겨버리면 새끼는 거꾸로 매달리기 일수이며, 제때에 풀어주지 못하면 바둥거리다가 죽기도 하였다. 요행히 어미새가 실끈을 부리로 잘라준다 해도 다리에 헐렁하게 묶어둔 실끈이라도 커가는 새의 발목을 조여들어서 다리 병신이 되기 십상이었다. 새끼가 날기 시작할 무렵에는 붙잡아서 직접 키우거나 또는 실끈을 풀어주던지 양자택일의 결정을 빨리 내려야 했다.
새끼가 둥지를 떠나 어설픈 날갯짓으로 비상하여 함석지붕 위로 떨어져 내리면 쌍둥이 형제는 지붕 위에 급히 올라가 무르팍으로 기어다니며 쫓아내기도 하고 잡기도 했다.
붙잡아서 직접 키우는 새끼새는 먹이를 주는 악동(惡童)의 손에 길들여지기도 했다. 또 길들인다고 하면서 새끼새를 공중에 던져서 멀리 날도록 하고, 멀리 날려 보낸 뒤에는 휘파람을 불면서 풀벌레를 으레껏 주었다. 여물지 않은 날개에 힘이 부치거나 수시로 손으로 만지작거려서 새가 스트레스를 받아 생명이 단축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 번은 장손자의 불알(고환 睾丸)이 커지는 병에는 땅까치가 좋다며 항간의 부당한 민간요법을 듣고서 새를 키운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감나무골 이모에게 새를 건네준 어머니를 원망했다. 힘들여 키우고 공들여서 길들인 새를 이모가 가져갔다는 것은 곧 새를 죽인다는 의미였다.
파랑새에 대해서 왜 갑자기 흥미를 잃어버렸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모르겠다. 아마도 머리통이 여물었고, 높은 나무에 올라가 새끼새를 붙잡아 키우는 것이 때로는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비극적인 결과가 내 성격에 맞지 않았나 싶다. 또 도회지 대전에서 놀러온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4km 떨어진 웅천천 강과 무창포 해변가로 싸질러 다니는 재미가 더 있었기에 새에 대해서 흥미를 잃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고백하건대 야생의 새 새끼를 키운다는 것은 곧 새를 죽인다는 것을 뜻한다. 어지간한 보살핌 없이는 야생조류의 생리상 경계심이 많아서 사람이 접근하면 마구 도망치려고 하다가 날개를 새장에 부딪쳐 상처를 입기 때문에 온건히 생명을 부지해서 키우기는 매우 어렵다. 더욱이 어린 새끼임을 감안하면 실패가 더욱 많다.
어린 시절 나무에 올라타서 둥지 속의 새끼를 꺼내어 길들이고자 한 무모함 때문에 새끼를 죽였다는 자책감은 나이가 든 지금도 멍울처럼 가슴에 남았다. 금수어충(禽獸魚蟲)*이라도 생명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생명의 경외심'이 심어졌다.
시골에서 살면 조심하면서도 무심코 미물(微物)을 죽이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그네들의 생명을 빼앗을 권한은 없건만 부지중(不知中) 죽이기도 한다. 비록 내가 생명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해치거나 괴로움을 주는 경우에는 예외가 있음을 인정한다. 예컨대 눈에 띄는 뱀을 끝까지 추적해서 잡아 죽이려는 이유는 있다. 쌍둥이 동생을 요절(夭折)시킨 원죄의 종속(種屬)이기 때문이다.
벽촌(僻村) 아이가 새를 잡아 키우면서 때로는 새를 죽인 것은 철 모르던 어린 시절의 잘못이었다. 다만 길조(吉鳥)인 까치집은 건드리지 않았음을 고려하여 용서하기 바란다.
* 곰내(熊川) 고뿌래(花望) :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
* 물총새 : 여름철새. 5월부터 해변가의 연못, 저수지. 강가, 논 등 물이 보이는 산에서 서식하고 잔챙이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예닐곱 개 알을 낳아 새끼를 침. 10월 경에 따스한 강남으로 이동. 몸 색깔이 푸른색 계통이며 수컷의 부리는 검고, 암컷은 붉음. 몸길이가 17cm 정도이며 작고 날렵하여 뭇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은 남해안에서 볼 수 있음
* 파랑새 : 여름 철새. 수컷의 머리 꼭대기와 머리 옆은 검은 갈색이고, 윗등은 푸른색을 띤 갈색인데, 어깨·아랫등·허리·위꼬리 덮깃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불명확한 푸른 녹색이 되며, 우리나라, 일본, 중국의 우수리·만주동부, 히말라야산록 등지에 분포
* 금수어충(禽獸魚蟲) : 날짐승과 길짐승과 물고기와 벌레라는 뜻으로 모든 동물을 이르는 말
1997. 7. 9.
부리와 다리가 붉은 파랑새
식별할 수 있도록 사진을 게시했음. .
용서해 주실 게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단풍들것네' 님의 의견과 같습니다.
몇 번 망설이다 글로 쓰지 못했는데, 수필방의 본래
목적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이곳은 교정을 하거나 글을 감수하는 곳이 아니며
글 창고 또한 아니기 때문에 지난 글을 올리는 일은
자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몇일전에 활동중지 되었는데...우찌 복귀되었는지.....???
제 생각에는 <사전에 오탈자, 어색한 문구 등을 더 검색해서, 고쳤으면 하기에 알려 달라는 것>이
수필방 독자들을 하찮은 곳이나, 결례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친근감의 표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나쁘게 보면 한없이 나쁘고, 좋게 보면 점점 좋아보일 것입니다.
글을 올리시는 분도 호감을 갖도록 할 필요가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상대를 배려하며 일정거리 유지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역효과도 있기에, 무관심도 상책이라고도 합니다.
저두 지기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따뜻한 정으로 바라보시고 나이드신 어른이시니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맙시다. 여기에 관심이 있으니 글도 올리는 겁니다.
물총새는 서울, 경기에서도 관찰되며
일부는 겨울을 나기도 합니다.
일녀에 3차례 정도 육추를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