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4.火. 흐림
오는 길, 가는 길에 들른 진주 고속버스 터미널.
맥도날드 햄버거, 모닝글로리, 패밀리 마트, 본죽, 용우동, 파리 베이커리 등등 잘 알려진 간판들이 진주 고속버스 터미널 정면 맞은편 길에 어깨를 마주하고 나란히 서 있다. 어디서 먹어보아도 똑같은 맛을 자랑하는 유명 브랜드는 그 획일적인 시스템이 강점이다. 승용차가 이렇게 늘어나기 전에는 장거리 대중 교통수단의 종착역인 기차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이 그 도시의 얼굴이자 문화 수준의 바로미터였지만 지금이야 개인 교통수단의 대중화로 기차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의 관문 역할이 많이 줄어버린 셈이 된다. 도시간의 차이가 점점 완화되고, 특색 있던 분위기가 서로 닮아가며 어느 곳이나 비슷한 꼴이 돼가고 있지만 그래도 기차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 앉아 있으면 그 고장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그런대로 맛볼 수 있다. 토요일 날, 진주를 향해 내려올 때는 아침 첫차를 탔기 때문에 금산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난 뒤에 곧장 달려 오전 9시45분에 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터미널 안은 아침 냉기가 미처 가시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고, 주말이라서 더욱 그러했겠지만 창밖의 경치도 느슨했다. 일요일 오후, 15:50분 서울행 차표를 끊고 나서 대기의자에 앉아 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위가 출행객出行客들로 제법 붐빈다. 아마 주말이라서 더욱 그러하겠지만 안은 붐비고 창밖의 경치는 여전히 느슨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30분을 더 기다려야한다.
진주까지 오며 가며 생각 따라 잡기.
사람마다 몸이나 마음이 지치고 피곤하면 가장 먼저 그 증상이 나타는 신체부위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입술부터 부르트고, 어떤 사람은 편도선扁桃腺이 늘어난다든지, 어떤 사람은 혓바닥이 마르고 갈라지며, 또 어떤 사람은 종아리에 쥐가 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나는 눈이 먼저 아파온다. 그것도 거의 왼쪽 눈부터 아파온다. 어떤 일에 집중을 하면 대상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버릇이 있어서 글을 쓰는 도중에는 대개 컴퓨터 화면을 그런 식으로 자주 쳐다보게 되는데 그런 상황이 몇 주씩 장시간에 걸치게 되면 눈이 받는 부담이 상당히 커서 그런 모양이다. 그렇지만 눈의 직접적인 부담과 전혀 상관없는 정신적 갈등이나 일반적인 과로에도 눈에서부터 신체의 적신호赤信號가 온다. 내 눈은 짝눈이다. 쉽게 말하면 왼쪽 눈은 시력이 1.0이 나오는데 오른쪽 눈은 시력이 0.6정도 나온다. 내가 기억하는 한 중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시력검사를 할 때면 오른쪽 눈으로 볼 적에는 검사표가 흐릿하게 보이던 것이 왼쪽 눈으로 볼 차례가 되면 앞이 갑자기 툭 트이면서 가슴이 시원해질 정도로 세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평소에 어딘가 시선을 둘 때도 은연중에 왼쪽 눈에 많이 의지를 하는지도 모른다.
자동차 전조등이 앞을 비추는 것을 보면 두 개의 전조등 빛 쏘기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직선으로 멀리 비추고, 다른 하나는 빛의 각도가 크게 퍼지면서 넓게 비춘다. 그래서 전조등은 차 앞부분과 저 멀리를 동시에 비추게 되는데 이것에 착안을 해서 나도 내 두 눈의 역할을 따로 두게 되었다. 오른쪽 눈은 세상을 넓게 많이 보는 눈, 왼쪽 눈은 세상을 깊고 멀리 보는 눈으로 정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오른쪽 눈으로 보는 세상보다는 왼쪽 눈으로 보는 세상이 항상 까다롭고 심각한 문제를 동반하고 다녔다. 오른쪽 눈으로 본 정보들은 바로 가슴으로 넘겨주면 되지만 왼쪽 눈으로 본 정보들은 머리를 거쳐 해부하고 분석해서 정리한 후에야 가슴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 까닭에 오른쪽 눈에 비해 왼쪽 눈은 항상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하면 몸이나 마음이 지치거나 피곤할 때 평소 부하負荷가 많이 걸려 있는 왼쪽 눈부터 적신호가 온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며칠 전부터 왼쪽 눈에 울울한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냥 참아버렸다. 그러던 것이 오늘 진주를 가려고 새벽4시경에 일어나는 바람에 수면부족이 겹쳐 왼쪽 눈 통증이 한층 심해진 듯하다. 어쨌거나 몸을 씻고 나서 아내가 강남터미널까지 태워다준 덕분에 예정대로 진주행 아침 첫차를 탈 수 있게 된다.
고속버스에 앉아서 좌석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의식 한쪽은 깨어있는 반수면 상태로 누워 있다. 간혹 깜박 잠이 들 때도 있지만 반의식이 돌아오면 그때마다 왼쪽 눈 통증도 함께 느껴진다. 통증은 왼쪽 눈 꼬리 아래 눈알 부분에서 생겨나고 있는데 그 자리를 손으로 지그시 눌러보면 꽤 심한 통증이 솟아난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가다가 금산 휴게소에서 고속버스가 잠시 멈춘다. 바깥바람이라도 쐬면 좀 나을지도 몰라 하고 생각하며 버스밖으로 나가 가볍게 체조도 하고 화장실에 가서 따뜻한 물로 눈을 가볍게 문질러주기도 한다. 다시 버스로 돌아와 좌석에 등을 기대고 누웠지만 별로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이제 그나마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창밖을 내다보며 분분초초 변해가는 경치를 구경한다. 그 경치 구경도 시들해질 무렵부터는 요즘 쓰고 있는 짧은 소설의 줄거리를 이리저리 만들고 다듬어본다. 소설이란, 아니 글이란, 무엇보다 우선해서 흥미興味를 유발하고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공감共感과 감동感動은 그 다음 다음의 문제인데... 문제는 글을 쓰는 내가 느끼는 재미와 글을 읽는 독자가 느끼는 재미가 약간 다르다면 빨리 그것들의 공통부분을 찾아내어 그곳에 뿌리를 둔 글쓰기가 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버스가 서진주 톨게이트를 지나고 남강을 건너서 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을 한다. 오전9시45분.
버스표를 주머니에 넣은 채 서울행 버스 출발시간에 맞춰 30분간을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동안 서 있거나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을 쳐다본다.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일까, 서울에 다녀올 사람일까. 서울 사람과 진주 사람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를 리 없어서 그저 다르다면 말투정도이겠지만 서울에서 사는 진주출신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또 진주로 와서 사는 서울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밖에 나가 걷다 터미널로 돌아오니 15:50분 버스가 출발 홈에 들어와 있다. 서울로 가면서는 버스가 신탄진 휴게소에 한 번 들러 가는데 오늘 아침부터 통증이 가신 왼쪽 눈이 편안해서인지 생각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서울에 거의 도착해서야 눈을 뜬다. 눈을 깜박거려도 왼쪽 눈알 통증으로 인해 신경이 쓰일 일이 없어서 아주 홀가분하다. 드디어 버스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한다. 19:40분.
(- 징검다리를 밟고 돌아다닌 세 도시 이야기, 진주 -)
첫댓글 생각이 많으신 긴----------울림님.
이번여행도 특별하셨네요.
눈에 통증이 있다면 병원에 다녀오셔야지요??
눈도 편히 쉬게 해준 징검다리 송년회였네요. 세도시 이야기 잘 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세심하게 글 쓰시는 긴........ 울림님..... 그 날 만나뵙게 되어서 반가왔습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