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구경 아닌 벚꽃이 사람 구경하는 길 | |||||||||||||||||||||||||||
[시내버스 타고 우리지역 10배 즐기기] (16) 합천 영암사지 벚꽃길 | |||||||||||||||||||||||||||
| |||||||||||||||||||||||||||
모산재는 언제나 장하다. 커다란 바위들로 이뤄진 모산재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철 내뿜는다. 영암사지는 모산재의 그런 기운을 통째로 품어 안는 명당이다. 햇볕도 밝고 화사하게 내려온다. 폐사지(廢寺祉)는 을씨년스럽기 마련인데 이 망한 절터는 오히려 당당하다. 단정한 삼층석탑과 화려한 쌍사자석등, 높게 쌓아올린 돌축대가 그런 느낌을 더해준다. 위쪽 금당 자리를 둘러싼 석재들에는 해태나 연꽃 무늬 따위가 조각돼 있다. 앞쪽 도들새김을 한 도깨비 같은 친구는 삿됨을 쫓는 척사(斥邪)가 임무인 모양이다.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이 친구 노려보는 눈길과 딱 마주치게 돼 있다. 꽃 길 속을 걷는 기자의 모습. 화사한 풍경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어렵게 만난 사람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이다.
그 왼쪽 또 다른 금당 터도 대단하다. 오른쪽과 왼쪽에 귀부가 있는데, 하나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어 힘이 넘치고 하나는 조금 수그린 채여서 다소곳하다. 둘레 벚나무서는 꽃잎이 날리고 소나무들 사이 들어앉은 진달래는 가녀린 꽃을 흔든다. 이렇듯 장하기에 영암사지가 크지 않았지만 서두르는 듯이 둘러봤어도 50분 걸렸다. 나오며 보니 중년 남녀 셋이 꽃그늘에 앉아 주먹밥을 먹는다. 이처럼 집에서 싸와도 좋지만 절터 들머리 조그만 포장마차에 들러도 괜찮다.
바로 옆 복치 마을에 사시는 올해 연세가 일흔둘 되신 할머니가 주인이다. "한 15년 됐나……." 얼마나 장사를 하셨는지 물으니 이리 답한다. 안주나 반찬은 할머니가 손수 기르거나 뜯은 채소와 나물로 만든다. 두부도 집에서 만드시는데, 할머니가 손수 길렀거나 이웃에서 농사지은 콩이 원료란다. 값도 아주 싸다. 갖은 나물과 채소를 넣어 만든 큼지막한 나물전이 4000원이고 쫄깃한 국수는 배부르게 주면서 3000원이다. 다만 두부는 국산으로 만드는 것이 돼서 5000원을 받는데 이 또한 도시보다는 훨씬 헐하다. 막걸리는 한 통에 3000원이었다. 할머니 전화 번호(010-9217-2362)를 공개해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웃으시면서 "그럼 되지요, 안 될 끼 머 있나" 하셨다. 오전 11시즈음부터 오후 4시 30분 정도까지 하는데 미리 전화를 하고 찾는 편이 낫다. 정오 조금 못 미쳐 가회까지 내려가는 길로 나섰다. 7km 남짓이다. 양쪽 벚나무들에는 꽃이 한창이다. 이 벚꽃길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이보다 한적한 꽃길은 없을 것 같았다. 두 시간 가까 걷는 동안 만난 사람이 딱 한 명뿐이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남자가 반가워 말을 걸고는 뒷모습 사진을 하나 찍어달라 부탁하기도 했다. 자동차도 자주 다니지 않았다.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웅웅거리는 소리가 꽤 들렸다. 어쩌면 도심 벚꽃을 사람에게 내어준 벌들이 사람 드문 농촌 벚꽃으로 몰린 모양이다. 벚꽃길은 줄곧 이어진다. 살기가 바빠 진해 벚꽃 그 그늘 아래 놀아보지 못해 아쉬운 사람이라면, 한 주쯤 뒤에 이토록 환하게 피어나는 여기 이 벚꽃을 찾아도 좋겠다. 하동 칠십리 벚꽃터널이나 경주 보문단지 벚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벚꽃을 다른 이와 나누지 않고 독차지하며 새 잎과 꽃으로 환한 산과 농사 짓느라 사람 바삐 움직이는 들판 풍경을 누리기에는 이 길이 으뜸이겠다 싶은 것이다. 초록이 출렁이는 5월에는 벚꽃그늘 대신 돋아난 이파리 아래로 녹음이 들어서겠지. 오도 마을 이를 즈음 왼쪽에는 오래 된 이팝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아직 잎도 피우지 않았지만, 한 달만 지나도 하얀 꽃들 넘치도록 뿜어낼 것이다. 벚나무 가로수는 여기서 끝나는데 가회면 소재지 가회 마을까지 가면 조그마하지만 즐거움이 하나 더 있다. 나무들 우람하게 들어선 고가 한 채를 둘러보는 것이다. 위풍당당하지 않고 수수한 편인데 혁림서당(赫臨書堂)과 세한헌(歲寒軒)이라 적힌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4월 13일 나선 이번 길은 합천군 삼가면 소재지에서 오전 9시 50분 덕만 마을행 버스를 타는 것으로 시작했다. 영암사지 들머리 내렸을 때 10시 15분이 채 안 됐다. 삼가로 나올 때는 가회에서 오후 2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15분쯤 걸렸다. 삼가서는 군내버스로 합천읍으로도 갈 수 있고 시외버스로 진주로도 갈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삼가에서 오전 9시 50분 버스로 들어가 영암사지와 포장마차에서 잘 노닌 다음 오후 1시께 걷기 시작해 이팝나무 있는 오도 마을 정류장에서 오후 3시 10분 덕만 마을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삼가로 나오면 더 좋겠다 싶었다.
|
|
첫댓글 좋아요. 아주 좋아요~^^
음...넘 좋네요 ^^ 함께 기행한 느낌도 들고...이런 글 자꾸 쓰면 우리 회원들 기행답사글 모음도 되겠는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