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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땅 무엇이든 거대한 중국으로 가다.
기간 : 2016년도 1/10(일)~1/15(금)
1월 10일 일요일 오전 6시경 부산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드디어 3개월 넘게 기다려온 중국을 가는 것이다. 중국을 가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던가, 나는 가슴에서 알 수 없는 흥분이 일어났다. 공항2층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수속을 하기위해 들어갔다. 어지럽게 절차가 진행되었다. 검사를 하고 조금 쉬다가 북경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오랜만에 타서 올라갈 때 내 몸이 붕 뜨는 것 같았다. 그렇게 2시간 30분을 가서 북경에 도착하였다. 북경은 베이징으로 중국의 수도이다.
먼저 이육사선생과 독립투사 순국지에 가려고 했는데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 안 된다고 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일본헌병대 터로 갔다. 일본헌병대 터는 19세기 중국이 일본에게 땅 몇 군데를 빼앗겨서 일본이 세운 곳인데 조선총독부 같은 곳이다. 보니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고 어떤 곳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타지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잘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점심을 먹고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을 갔다. 천안문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이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시 광장 이다. 명나라 때 자금성을 지었는데 1966년에 개조할때가 지금 모습이다. 이곳에서 5.18민주화운동 같은 것을 하기도 했지만 시위대가 진압했다. 인민대회당도 옆에 있었다. 자금성은 황제궁전이고 1407년에 시작되어서 20만 명이 투입되어 14년만에 완공 되었다. 방 칸수는 9999개고 명나라 청나라가 썼던 궁궐이다. 이곳에 있는 보물은 전쟁 중 대만으로 옮겨져서 이곳에 없다.
그리고 기다리던 인력거 체험을 했다. 인력거는 사람이 자전거로 거리를 구경하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창욱이와 탔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 제목은 금면왕조 이다. 이 이 야기는 남면왕 금면왕(남자vs여자)이 싸워 금면여왕이 이긴다. 그러다가 둘이 사랑에 빠진다. 홍수가 나서 여왕이 제물로 되고 그러자 태양조가 된다. 홍수가 날 때 진짜 물이 폭포처럼 물이 내려와서 정말 놀랬었지만 재밌었다.
오늘(1월11일)은 북경을 떠난다.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오늘 일정에 따랐다. 맨 처음 중국의 대표지 만리장성으로 갔다.
만리장성 길이는 5000km 이다. 춘추전국시대 연, 조, 위, 초 등 여러 나라들이 쌓았는데 진시황제가 통일한후에도 쌓고 나중에 한나라 무제때 더 크게 지어졌다. 이것은 오랑캐들을 막기 위해 만들다가 많은 사람이 죽은 곳이라는 것이다.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만리장성이 싫어졌다. 여기는 돌로 쌓았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을 정도로 길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
점심밥을 먹고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과 돌로 만든 곤명호로 갔다. 이화원은 12세기 금나라때 지어 나중에 청나라때 건륭제가 많은 전각을 세워 공원을 꾸몄다. 곤명호는 서태후가 만든 배인데 지금으로 말하면 크루즈이다. 돌로 만든 배이고 2층이다. 이것을 만들다가 청왕실이 기울게 된다. 우리들은 이화원의 풍경이 좋아서 배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얼음이 얼어서 타지 못했다. 서태후는 건륭제의 귀빈이다. 2번째 부인인데도 여왕이 되었던 것이 특이했다. 재밌는 이야기는 이화원을 만들기 위해 돌을 구하는데 현무암 같이 구멍이 많이난 돌을 놓았더니 계속 좋지 않은 일이 일어 난 것이다. 그 흉하게 생긴 돌은 보기도 망할 것 같았다. 왠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왕부정, 왕부정거리로 갔다. 왕부정은 처음 들어보지만 골목골목이 다 거리였다. 가기전 입구에서 나는 양꼬치와 과일꼬치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양꼬치를 3개나 먹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희한한 꼬치가 다 있었다. 뱀꼬치,전갈꼬치,벌꼬치,지네꼬치,번데기꼬치 등 별의별 꼬치가 다 있었다. 어떤 누나는 전갈꼬치를 먹었는데 맛있다고 했다. 으~ 보기만 해도 싫었다. 거기서 나는 선물용으로 팔지4개를 샀다.
오늘의 숙소는 기차였다. 침대차에서 자는데 예상밖으로 좋지 않았다. 어떤 한 명이 표를 잃어버려서 445위안을 주고 표를 다시 사서 기차를 탔다. 아마 그 돌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처음이라 좋았고 더 업그레이드가 된 침대차가 나오면 좋겠다.
1월 12일 기차에서 자고 일어나서 폭이 15m인 서안성벽을 갔다. 서안성벽은 서안을 지키는 성이다. 성 한 바퀴를 다 돌려면 40km라서 그냥 한 가운데 있었는데 때마침 눈이 와서 눈싸움을 하였다. 서안에는 눈이 1년에 올까 말까 한다는데 오늘 눈이 오는 것을 보니 좋은 일이 일어날것 같았다.
먼저 당헌종과 양귀비의 이야기가 있는 화청지로 갔다. 화청지는 당헌종이 쓰던 온천과 양귀비가 쓰던 온천이 있는 곳이다. 당헌종때 말고도 다른 왕조들도 썼다고 한다. 피서지인 셈이다. 황제가 쓰던 탕을 보니 엄청 넓었다. 양귀비가 쓰던 탕도 비슷했다. 그 옆에 물이 퐁퐁 솟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물이 온천물이다. 느낌이 좋고 따뜻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치스럽게 만들어 백성들의 고통이 심했을것을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그다음 제일 중요한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으로 갔다. 병마용갱은 검사를 3번하는데 물품검사도 했다. 안에 들어가보니 엄청 넓은 공간에 흙으로 된 인형이 쫘악 펼쳐져 있었다.
3호까지 있는데, 1호는 병사, 3호는 중급, 2호는 장군용 이었다. 이 병마용갱은 모습과 표정이 하나하나 다르다고 했는데 진짜 그랬다. 병마용갱에서 기념주화와 병마용갱에서 나온 마차 모형을 샀는데 이 모형을 흥정할 때 처음에는 30위안이었다가 20위안 그러다가 10위안으로 값이 줄었다. 진시황릉은 뒤쪽으로 가서 올라가야 한다고 했는데 엄청 멀었다.
걸어서 가는데 거의 2시간을 가야한다고 했다. 이번 서안은 좋지만 재미가 있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은(1월13일) 서안에 있는 마지막 날이다. 먼저 서안 고고학자연구원을 방문하였다.
이 연구원은 고고학자들이 중국의 문화재를 발굴하고 복원하고 전시를 하는 등 유물에 관련된 일을 하는곳이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지역주변 유물을 발굴한다. 예를 들면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돌갑옷이 예이다. 우리는 먼저 4층 전시실에서 보고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발굴된 유물이 있는 곳이다. 먼저 중국의 시작인 황하문명부터 당나라까지 유물이 있었다. 그중 신기한 것은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돌갑옷이다. 그다음에 유물을 연구하는 연구소로 갔는데 그곳에는 아직 전시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중에서 춘추 전국시대 유물도 있었다. 참 섬세하게 복원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다음은 지금 중국에 진출한 기업인 KMW에 갔다. 이 기업은 여러가지 다른 업체, 부품을 파는 회사이다. 맨 처음에는 삼성에 90%를 팔았는데 지금은 불경기라 화천에 많이 판다. 만드는 과정을 보니 정말 메이드인 차이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중국시장에서 삼성이 밀리는 것을 보니 샤오미 같이 대량생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1월14일) 중국에 있는 마지막날이다. 상해로 갔다. 오늘이 마지막이니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기쁘기도 하고, 더 못 있어서 아쉽기도 했지만 눈물을 참으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갔다.
상해 임시정부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때 김구선생님과 몇 명의 조선인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운다. 임시정부는 임시로 잠시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지금은 정말 초라하였다. 그런데 중국 정부에서는 그 주변을 개발하지 못하게 했다. 길을 걸어가다 보니, 옛날집과 엄청 큰 아파트 단지가 마주보고 있었다. 임시정부청사 안에는 밀랍으로 만든 인형과 자료가 있었다. 이곳 중국에서 임시정부와 의열단이 있었는데 얼마전, 밀양박물관에서 본 김원봉선생님이 생각 났다. 광복군이 창설 되었다가 일본이 미국에 항복을 해서 일본과는 싸우지도 못하고 광복이 되어 아쉬웠다.
다음으로, 홍구공원에는 윤봉길의사의 기념관이 있었다. 윤봉길의사는 중국으로 와서 일본의 고의관리들에게 도시락 폭탄을 던져 죽이고, 총살을 당한다. 이일을 계기로 중국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자기 몸을 받치는 독립운동가들을 좋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 뒤 한국과의 관계가 좋아졌다. 홍구공워은 원래는 루쉰공원인데(루쉰은 아큐정전을 쓴 유명한 작가)루쉰에서 윤봉길의사를 기리기 위해 공원의 이름을 홍구로 바꾸었다.
점심은 현지식이었지만 한국의 맛이 나서 가장 좋았다.
또, 동방명주탑은 상해를 대표 하는 곳이다. 125층?인데 이것보다 더 큰 건물이 있다고 했다. 이곳의 박물관을 가 보았는데 중국 근대의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포토존인 유리벽으로 갔다. 그곳은 밑과 위가 유리라서 휜히 보였다. 정말 기분이 짜맀했다.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놀러온 중국유치원애들을 보면서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쓰레기를 아무곳에나 버려서 그런점은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동방명주탑 야경을 보기 위해 유람선을 타러 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보니까 진짜 예뻤다. 야경의 한쪽은 과거, 한쪽은 미래를 나타내었다. 정말 풍경이 좋았다. 보니 예전에 ‘아빠 어디가’가 프로에서 보았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이 밤이 중국의 마지막 밤 이어서 아쉬웠다.
1월 15일 한국을 가는 날이다. 꿈만 같았다. 눈물이 나왔다. 돌아가는 것이 기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기 떄문이다. 호텔에서 마지막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한 다음 공항으로 갔다. 중국의 물을 다시 마시고 싶어서 음료수를 사고 비행기에 올랐다. 약 1시간 40분을 가서 공항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중국에 있는 것 같았다. 엄마와 동생을 보자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나는 이번 중국여행으로 내가 모르는 것, 내가 배울 것 ,내가 고칠 것 등을 알게 되었다.
이 여행을 갔다 와서 알게 된 형과 누나 친구들이 있어서 좋았고 롤모델도 생겨서 좋았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내가 커서 중국에 진출하여 중국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정글만리에서 나오는 말처럼 ‘라면 하나만 팔아먹어도 13억개다.’ 라는 말이다. 앞으로 내 미래가 기다리는 중국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노력할것이다.
그동안 애써주신 기자단선생님, 노상욱선생님, 박정문선생님, 멘토선생님들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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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준필아, 기사를 굉장히 정성껏 잘 썼구나.
중국역사탐방을 가지 않은 사람도 간 것처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
수고 많았어!
그런데, 오류가 있는 곳이 있으니 수정바란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일본헌병대터란다. 그곳의 관리인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밖에서만 현장을 보았지.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간 곳이 북경감옥터란다. 거기는 폐허처럼 방치되어서 우리가 안에까지 들어가서 구석구석 보면서 마음 아파 했잖아.
그리고, 홍구공원이 최근에 루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단다.
수정 부탁해. 좋은 기사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