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사 극락교에서 본 정릉천>
<경국사 일주문>
<경국사 보리수 소원나무>
<관음성전 관세음보살 상>
<극락보전 - 꽃살무늬 문>
<경국사 균제실 - 김생의 현판 글씨>
일상탈출 짧은 여행 82 (정릉 - 경국사)
목필균
오늘 향토문화 탐방코스는 정릉 일대 문화탐방이다.
새로 개설된 우이선을 타고 보국문역에서 모였다.
정릉은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서 경국사는 몇 번 다녀온 곳이나 문화해설을 들은 일은 없어서 오늘 탐방이 기대되었다.
보국문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가니 경국사로 들어가는 극락교가 있었다. 천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일주문으로 들어서는데 일주문 기둥이 남다르게 용무늬의 묵직한 석주였다.
아마도 경국사는 조선왕조 때 왕실 사찰로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가득하게 축원하는 사찰이라서 일주문도 남다른 것 같았다.
경국사 대부분의 전각들은 단청이 선명하고 도량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주변 푸른 숲이 봄기운에 연듯빛 잎새도, 꽃들도 피워내고 있어서 더욱 풍광이 아름다웠다.
경국사 소원나무인 보리수 나무 주변에 둘러서서 해운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스님은 정중하게 일행을 맞이해주시고, 경국사의 역사를 세세히 이야기 해주셨다.
경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본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末寺)이다.
1325년(충숙왕 12) 율사 정자(淨慈)가 창건하여 청암사(靑巖寺)라 하였고, 1330년경 무기(無寄)가 머물면서 천태종(天台宗)의 교풍을 크게 떨쳤으며, 1331년 거사 채홍철(蔡洪哲)이 선방을 증축하여 선승들의 수도를 적극 후원하였다년(공민왕 1) 금강산 법기도량(法起道場)을 참배하고 남하한 인도 승려 지공(指空)이 주석(住錫)한 뒤부터 고승대덕의 수도처이자 호국안민을 위한 기도도량으로서 전승되었다. 1507년(중종 2) 억불정책으로 법당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퇴락된 채 빈 절로 남아 있다가, 1545년 왕실의 도움으로 중건되었다. 1546년(명종 1) 명종의 즉위로 문정왕후가 섭정하게 되자, 왕실의 시주로 건물을 전면 중수하고, 낙성식과 함께 국태민안을 위한 호국대법회를 열었다. 그 때 부처님의 가호로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항상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라 개칭하였다. 그 뒤 1693년(숙종 19) 승성(昇誠)이 건물을 중수하고 천태성전(天台聖殿)을 신축하였으며, 1737년의눌(義訥)이 주지에 취임하였고, 1793년태흘(泰屹)이 크게 중수하였다 1921년에는 단청과 탱화의 대가인
보경(寶鏡)이 주지에 취임한 뒤, 1979년까지 퇴락된 건물을 중수하여 한국불교의 모범 사찰로 변모시켰다. 창건 이래 한국 계율의 맥을 이어 온 도량이며, 정토사상에 바탕을 둔 기도도량으로서도 대표적인 사찰이다· 극락보전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보물 제748호로 지정된 목각탱화 및 신중탱화·팔상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산세가 묘하고 약수가 있어 참배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서울 주위의 대표적인 사찰로 이승만(李承晩)이 대통령 시절 자주 찾던 곳이며, 부통령시절에 방한 했던 미국의 닉슨(Nixon,R.M.)은 그의 『회고록』에서, 이 절에 참배했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것과 함께 사진을 수록하기도 하였다.
[Daum백과] 경국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음성전 관세음보살님과 부처님 일대기를 그린 불화이야기, 오랫동안 경국사에서 수행하셨던 해운스님은 정성을 다해 해설해 주시는 열정을 보여주셨다.
극락보전 문은 연꽃무늬로 나비문양 경첩으로 매우 화려했다.
또 각 전각마다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의 경국사 현판, 서예가 김생의 현판 등 유명하신 분들의 현판들이 걸려있는데 서체가 남달랐다.
서방정토로 가는 길을 밝혀준다는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극락보전에는 관세음보살님, 대세지보살님이 협시보살로 계시는데... 바로 옆에 있는 이성계의 계비 강빈의 릉인 정릉이 있어서 극락왕생을 빌어준 원찰 흥천사와 함께 왕실 사찰로 이어온 것이다.
해운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누구라도 극락에 대한 소망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일주문을 나섰다.
어제 용인 선산에 다녀오고, 오전 내내 민들레 김치, 달래김치, 얼갈이 김치를 담는 일로 몹시 고단해서, 경국사에서 문화해설만 듣고, 중간에 와서 아쉬웠다.
첫댓글 목후배님이 이번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릉천 인근에 있는 경국사를 찾았군요.
사찰명에 나라 국(國)자가 들어가니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드는데 일주문 기둥 부터가 석주라니 무게감을 더하는군요.
왕실 사찰일 정도로 유명한 고찰을 서울에 두고 있으면서도 전혀 알지못했으니 서울사람 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는 맨청입니다..ㅎㅎ
어제 몸이 안 좋아서 끝까지 동행을 하지 못하고 왔는데...
오늘은 한결 나아졌습니다. 향토문화탐방 프로그램이 알차서 좋습니다. 다음 주에는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간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목 선배님 반가워요~!! 필동 펌프장 주변에 사셨던거 같습니다~!! 시공을 넘어서 글로 만나 뵈온 선배님의 글은 제 옆에 지난 시간과 현재를 아우리는 그런 시간을 제공하곤합니다. 혜화동 로타리나.. 동양서림.(아직도 있고, 그옆의 중국 집도 그대로.. ㅎㅎ) 그곳은 너무나 빠르게 흐르는 지금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그러한.. 곳입니다.. 예전, 전차 타고서, 통학 할 때의 로타의의 둥근 석조물의 분수를 ..기억에 아직도 가지고 있고.. 그런 이유로.. 그 1967년 봄부터 1973년 1월 졸업까지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대학을 2곳을 다녔어도 이제는 돌아 온 거울 앞에선 누님처럼, .. 선배님의 글과 추억에서 저를 읽고 있답니다.
우연, 기연은 사람이 만든 언어인듯하고... 저를 뱃사람으로 만든, 절라도 목포의 해양대학에 선배님의 시비가 세워 졌다는..... 그러함이 더욱 선배님을 친밀하게 느끼게 합니다.. 이게 다.. 일신 어린이이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선배님께서 자주 가시는(대학로) 문리대와 명륜동의 골목에서.. 일부러 시간 만들어..서 라도.. 선배님을 뵙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떠오르지 않지만, 선배라고 불러주시니 후배라고 생각도 됩니다.
나이는 저하고 같으나 제가 일찍 학교를 들어가서 선배가 되었나봅니다.
배를 타는 후배라니 더욱 모르겠습니다.
퇴직 후 혜화동을 드나들며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모임도 갖고는 합니다. 우선 누구신지나 밝혀주시와요....
최 상호 선배님과의 사진입니다~!! ㅎㅎㅎ 제가 모임에 안 나간지가 5년여가 되는데.. 그동안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어도,,목 선배님의 글 덕분에 다시금 발 길을 돌려 살펴 보게 되었답니다~!! ㅎㅎㅎ
아 네~~ 이렇게 얼굴을 밝혀주시니 반갑습니다. 저도 2년 정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일신이란 이름으로 인연된 분이시니 언젠가는 뵙게 되겠지요.. 더구나 제 글을 읽어주신다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구요...
현역에서 물러나셨다면 시간적 여유가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