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그 그늘의 자리
조 정 래
임신 6개월의 경희는 첩이었다.
태섭은 그네의 그런 헝클어진 생활 조건에 놀라진 않았다. 그네의 대담한 실토를 듣기 전에 이미 태섭에게는 그런 불행을 탐지해 내는 촉각이 마련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네를 대하는 순간 임신인 것을 알아차렸고, 행복해야 할 텐데 하는 엉뚱하고도 방정맞은 생각이 잇따랐던 것이다. 그건 순전히 피해 의식의 발동이었다. 그 어떤 비누로도 씻어낼 수 없는, 검은 때로 살갗 깊숙이 끼어 있는 그 흉측한 것이 고개를 든 것이다.
그네가 점막이 경희인 것을 알아본 순간 태섭은 병원의 복도가 핑그르르 도는 현기증에 몰렸던 것이다. 그리고 발가숭이가 된 자신을 발견했다. 굶주림과 천대에 지쳐빠진 걸레쪽 같은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런 태섭의 눈에 그네도 갈 데 없이 고아인 점박이 경희일 뿐이었다.
아아, 그 시절……˙. 어느 때나 이렇게밖에는 더 감당할 기력이 없는 기억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며 태섭은 그네의 임신이 행복한 것이기를 소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네는 당연한 배신을 감행한 뒤였다. 출옥을 기다려 다시 범행을 저지르는 전과자처럼 그런 당연한 배신 앞에서 태섭은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다 버려진 한 여자의 목숨과 첩이라는 엄연한 사실은 더할 수 없이 잘 어울리는 조화였는지도 모른다. 태섭이 의아해 한 것은 그네가 흔해빠진 어떤 사장의 두 번째가 아니라 제법 이름깨나 있는 모 교수의 애를 배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태섭의 통속적 예상은 혼란을 일으켰다.
“강 교수는 생각보다 끈질겼고 나는 그 올가미를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분명히 비뚤어지는 걸 알면서도, 분명히 찢어지고 구겨진다는 걸 알면서도 도망칠 수가 없었어요. 어쩌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날 묶고 놓아주지 않았어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네의 담담한 솔직 앞에서 태섭은 그만 말을 잃어버렸다. 그네를 와락 끌어안고 울고 싶은 충동에 떨며 태섭은 안타깝게 그네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네의 얼굴은 체념의 바다였다. 그 바다에는 시리도록 슬픈 운명의 빛깔이 쪽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빛깔이 퇴색해 검정이나 회색이 될 때까지 그네는 ‘어쩔 수 없게’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태섭은 안타까운 아픔에 시달렸던 것이다.
20여 년 만에 대뜸 그네를 알아보게 해주었고, 어쩌면 그네의 운명을 좌우하는 마력을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네의 귀밑 볼에 찍힌 손톱만 한 검은 점을 응시하며 태섭은 그 기억을 떼치려고 애썼다. 흉측하고 몹쓸 기억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그네를 만든 것은 바로 그 사건이라고 태섭은 못 박고 있었다. 이런 속단이, 더구나 임신까지 한 그네를 앞에 두고 그 기억을 되살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네는 멍청하고 답답하게도 불행의 구렁텅이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빠져나올 방법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 때문에 죽는 한이 있어도 대학엔 가야 된다고 결심했어요. 몸을 팔아서까지라도 말예요. 순전히 오기였었죠. 다행히 몸을 파는 일까지 하지 않았어도 학교는 다닐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만……, 나도 모르겠어요.”
바로 이것 이었다. 그네의 말마따나 몸을 팔아서까지 대학을 나와야겠다는 오기가 고아 신세로 자란 그들의 정상적인 사고 방식인 것이다. 그네는 지극히 정상이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비정상으로 둔갑을 했다. 그네 자신도 해명할 수 없는 모순, 그네의 이성을 허깨비로 만드는 그 귀신 같은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태섭의 의문에 그 사건은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 이다.
고아윈에는 그만그만한 애들이 50여 명 있었다. 모두 엉성한 머리칼에 툭 불거진 눈알을 필요 이상 잽싸게 굴리는 말라비틀어진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나깨나 먹을 것을 쫓아 허둥댔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정해진 끼니의 항시 감질나는 밥뿐 아무리 눈을 까뒤집어도 먹을 것이라곤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어쩌다가 기분 내키면 불쑥 찾아오곤 하는 지프는 끼니때마다 기도 속에서 건성으로 부르던 하느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지프가 나타나는 날이면 아이들은 모두 회가 깔기는 시큼시큼한 오줌을 삼켜대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지프에서 내려진 밀가루나 버터는 원장 아버지의 차지가 되고 초콜릿이나 사탕, 껌 등은 이국 병사들에 의해 고루 그들의 차지가 되었다. 한사코 따라가고 싶은 그 꼬부랑말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오래 머무르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어쩌다가는 한나절이 넘도록 있을 때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때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경우 그 사람들은 노래도 가르쳐주었고 놀이도 함께 했다. 아이들이 그런 날을 기다리는 것은 노래를 배우거나 기이한 놀이 때문이 아니었다. 백번 들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나 몸에 익지 않은 어설픈 놀이가 흥미를 당길 리 만무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그런 날을 기다리는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배급 받은 초콜릿이나 사탕을 다 먹어치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금방 돌아가고 말면 원장 아버지는 야속하게도 그것들을 다 거둬가고 말았다. 돼지처럼 한꺼번에 먹어치우지 말고 아껴 먹으라는 것이었지만 한번 거둬간 것들은 다시 그들의 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노래를 배우거나 놀이를 하는 때도 원장 아버지는 이쪽저쪽에 눈을 부라려가며 볼을 씰룩였지만 아이들은 한사코 눈길을 피해가며 억척스레 먹어치우기에 바빴다. 그런 다음 불벼락이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그 버릇을 고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칙칙하게 내리고 있었다. 좍좍 쏟아지다가 그치면 물장난이라도 하련만 딱 옷 적시기 좋을 만큼 비는 비실거리며 한정도 없이 내렸다. 이런 날은 영락없이 방에 갇히게 마련이었다. 아이들은 제각기 방구석에
틀어박혀 지루하고도 긴 여름날을 보내기에 몸살이 나고 있었다. 원장 아버지의 눈길 때문에 얌전을 피울 수밖에 없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비비 꼬이는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들은 손가락 마디만 한 과거를 풀어놓고 제각기 침이 마르도록 먹을 것에 대해 입씨름을 벌였다. 그러나 배고픔이 가시기는커녕 더 큰 허기에 시달려야 했고 거기다가 엄마, 아빠에 대한 그리움마저 겹쳐져 아이들은 눈물만 담뿍가눈 채 서로 돌아앉고 말았다. 그러다가 웅크리고 앉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도록 저녁밥 때는 여전히 멀리 있었다. 그런데 그 지프가 나타난 것은 힘없는 빗줄기 사이로 어스름이 내릴 즈음이었다. 아이들은 어느 때 없이 큰소리로 ‘헬로’를 수없이 외쳐댔다. 그런 그들의 소원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 장대같이 큰 사람들은 긴 팔을 휘둘러가며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은 다른 때보다 유독 신명나게 노래를 흉내내고 있었다.
초콜릿이며 사탕이 반쯤 남은 것을 확인한 태섭은 원장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원장은 한 헬로와 무언가를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이때다. 태섭은 잽싸게 기어 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처마 밑을 타고 돌아 헛간으로 달렸다. 거기 짚단과 나무가 쌓인 한쪽 구석에는 자기만이 아는 조그만 굴이 있었다. 그건 굴이라기보다는 흙벽에 뚫은 구멍이었다. 그 구멍은 거기에 맞는 돌로 가리워져 있어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그 돌은 흙벽에 박힌 다른 많은 돌들에 감쪽같이 섞여 있었다. 태섭은 먹을 것을 배급 받을 때마다 반쯤은 남겨서 이 구멍 속에다 감추어두곤 했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하나씩 꺼내다 먹는 맛이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
태섭은 헛간 앞에 이르러 빠르게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 판자문을 밀치려다가 그만 질겁을 하고 물러섰다. 헛간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몸이 바짝 오그라붙은 태섭은 잠시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헛간에서 새어나오는 사람 소리가 괴상했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어디가 잔뜩 아파서 내는 소리 같다가도 자세히 들어보면 꼭 그런 소리만은 아니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게 남자의 소리라는 것이었다.
태섭은 오싹 무섬증에 휩싸였다. 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귀신은 여자지 남자가 아냐. 태섭은 스스로에게 일깨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판자문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엉성하게 얽어진 판자쪽 틈새에 눈을 갖다 댔다. 헛간의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틀림없이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짚단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그 남자가 지프를 타고 온 사람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임을 확인하고 태섭은 또다시 질겁을 했다. 그러나 아까 같은 무섬증 대신 호기심이 발동했다. 남자의 두 다리는 벌려졌고 그 사이에 한 아이가 엎드려 있었다. 머리칼로 그게 계집애인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런데 어둡기도 했지만 그 계집애는 얼굴을 처박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계집애는 처박은 머리를 연신 위아래로 끄떡거리고 있었고 그에 따라 남자는 그 괴상망측한 소리를 토해내는 것이었다. 태섭으로서는 그게 무엇을 하는 짓인지 딱히 잡히지 않았지만 돼먹지 못한 짓인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저 계집애가 누군지 알아내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참 만에 그 괴상한 소리를 끝낸 남자가 짚단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태섭은 재빨리 돌아서서 빗발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가까운 풀숲에 몸을 숨겼다. 먼저 껑충한 키의 남자가 나왔고 뒤따라 계집에가 나왔다.
“저 점백이년이……˙.”
계집애의 얼굴을 알아본 태섭이 낮게 부르짖듯 한 말이었다.
남자가 계집애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계집애는 빠르게 뛰어서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
남자까지 사라진 다음에야 태섭은 풀숲에서 나와 헛간으로 들어갔다. 과자를 다 감추고 날 때까지 생각해 보았지만 그럴싸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점박이를 놀림감으로 삼아 소문을 퍼뜨려버릴까. 아니면 그게 무슨 짓이냐고 먼저
캐물어볼까. 으슬으슬 떨면서 강당까지 되돌아오는 동안 궁리해 보았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불을 켜야 할 만큼 어두워져서 지프는 떠났다. 그리고 곧 저녁밥을 먹었다. 빈 그릇을 부엌으로 가져가면서 태섭은 일부러 경희 가까이 다가갔다.
“야, 점백이!”
엉덩이를 돌려 툭 치며 불렀다. 경희는 눈을 희게 흘겼다.
점박이란 별명을 영 싫어하는 탓이었다.
“너 무슨 짓 했는지 솔직히 불어.”
“뭐라구!”
경희는 금방 눈을 똑바로 뜨고 앙칼지게 쏴댔다. 어이, 내가 잘못 본 게 아닌데. 태섭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너 정말 이럴래? 내가 다 봤어!”
“보긴 뭘 봐! 뭘? 뭘?”
경희는 곧 할퀴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로 덤벼들었다.‘어어, 틀림없이 이 점 백이였는데.’ 태섭은 다시 기억을 확인 했다.
“좋아, 쫘악 소문내고 말 테니까 알아서 해. 두고 보자.”
태섭은 이런 식으르 물러서면서도 아리송하기만 했다.
다음날 아침 개울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경희가 찾아왔다.
“태섭아, 소문만 내지 말어. 내가 맛있는 것 원하는 대로 줄 테니까 소문만 내지 말어. 아버지가 알면 난 동생하고 어떡하니. 여길 쫓겨나면 난 동생하고 어떡하니.”
경희는 어제와는 딴판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사정을 했다. 태섭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소문 때문에 경희가 쫓겨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이었다. 경희뿐만 아니라 세 살 아래인 여섯 살짜리 경수까지 쫓겨난다는 것이다. 아무리 배가 고픈 이곳이지만 아이들은 누구나 여기서 쫓겨난다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고 있었다.
“알았어. 나 비밀 지킬 테니까.”
태섭은 이 말을 하고 돌아섰다.
“고마워, 태섭아. 이따가 만나. 내가 맛있는 것 줄 테니까.”
경희의 말을 뒤로 들으며, 얼마나 못된 짓이길래 여길 쫓겨나게 되는 것일까, 태섭의 궁금증은 갑자기 깊어지고 있었다.
경희가 동생 경수와 함께 태섭을 데리고 간 곳은 뒷산 바위틈이었다. 애들이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바위틈을 지나자 세 사람 정도 쪼그리고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바위 위에 바위가 얹히면서 생겨난 그럴듯한 굴이었다. 경희는 구석의 마른풀을 헤치더니 커다란 상자를 꺼냈다. 열어젖힌 상자 안에는 각양각색의 과자들과 깡통, 버터까지 들어 있었다.
“맘대로 먹어, 태섭아.”
경희가 말했고,
“너 이거 다 어디서 났니?”
태섭이 숨가쁘게 물었다.
“어서 먹으라니까.”
경희는 재촉했다.
“누나, 왜 태섭이 형을 주는 거야. 이건 우리 둘이만 먹는 거잖아.”
경수가 울상이 되었다.
“태섭이 형은 우리 편이야. 누나가 힘이 모자라 경수 네가 맞게 되면 태섭이 형이 편을 들어줄 거야. 알지?”
“씨이, 그치만 이 맛있는 것을……˙.”
“욕심부리면 뿔 나. 우리 함께 맛있게 먹자.”
경희는 익숙한 솜씨로 깡통을 따기 시작했다.
태섭은 그 후로 그게 무슨 짓이냐고 네댓 번 물었고, 그때마다 경희는 “우리 깡통 먹으러 갈래?” 하는 엉뚱한 말을 하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달 허기를 채우다가 태섭은 양자로 찍혀 바다를 건너가게 되면서 점박이 경희와 떨어졌던 것이다.
처음에 경희는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20여 년이란 세월의 간격도 간격 이었지만 자신은 수술복 차림이었다. 더구나 그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자신은 바다 건너 딴 나라 사람이었을 것이다.
“제가 바로 깍두기 박태섭 입니다.”
“아아…….”
그네는 입을 딱 벌린 채 굳어졌고, 다음 순간 머리를 감싸 잡으며 비틀거렸다. 태섭은 그네를 부축하며 자신의 경솔을 나무랐다. 그러나 원시적인 반가움을 주체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다른 현명 한 방법은 없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그네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힘들게 이렇게 물였다. 태섭은 그네의 콧등에 잡힌 땀방울을 보았다. 그 물음과 땀방울에서는 도주하고 싶어하는 그네의 절박한 심정이 강한 전류처럼 퍼지고 있었다.
“아직 많이 기다려야 되나요? 잠깐 기다리세요, 내가 들어 가볼 테니.”
태섭은 이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고 그네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게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가로젓고 있었다.
태섭은 카드 순서를 바꿔 그네를 곧 진찰 받게 했다. 카드체크에는 임신 6개월, 산모 태아 정상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창백함이 회복되지 않은 얼굴의 그네는 진찰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누구? 친구 부인?”
산부인과 과장이 손을 닦으며 태섭에게 물었다.
“예, 친척예요. 다른 이상은 없지요?”
“있지. 참 곤란한 산모야.”
“무슨……˙·?”
태섭은 과장을 향해 정색을 했다.
“난 또 닥터 박이 산모의 증상을 알고 상의를 하러 온 줄 알었구먼. 이게 문제야, 이게.”
과장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럼 정신 질환……˙.”
태섭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자기 애가 태어나기 전에 죽거나, 낳게 되더라도 병신일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단 말야.”
“심한가요?”
“무척.”
“원인 규명은요?”
“피해망상증이 분명 한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헛수고야. 입을 열어야 말이지. 과거가 문젠데, 닥터 박은 어느 정도 알고 있겠구먼.”
“말씀 감사합니다. 다시 들르죠.”
태섭은 다급하게 복도로 나왔다. 그네는 창 밖을 내다보고 서 있었다.
“바쁘지 않으면 내 방에 잠깐 들렀다 가실까요?”
그네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말없이 발길을 옮겼다.
태섭은 외과 병동으로 가면서 줄곧 질퍽거리는 생각의 진창을 걷고 있었다. 어느 임산부에게나 공포증은 있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문제였다. 무엇이 그네를 괴롭히고 있을까. 그네는 무엇에 속박당하고 있을까. 태섭의 머리
를 온통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그네가 고아, 고아, 고아라는 사실뿐 더 이상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앉자 태섭은 그네가 제일 궁금해 할 자신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너무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2년 전에 돌아왔습니다. 믿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거기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요. 물론 이 땅에 와도 혼자지요. 그런데도 오지 않고는 못살 것 같더군요. 나 혼자 팽개쳐진 것 같은, 자꾸만 내가 졸아드는 것 같은, 그래서 결국은 누구의 발 밑에 개미 새끼처럼 짓밟혀 죽고 말 것 같은 두려움을 떼칠 수가 없었지요. 양부모는 물론 그 누구도 날 이해하는 사람은 없더군요. 결국 양어머니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얼씨구나 짐 싸들고 돌아온 겁니다. 이젠 제대로 사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경희 씨는?”
태섭은 의식적으로 그네의 이름을 불렀다. 그네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거림은 꽤 오래 계속되었다. 태섭은 그 끄덕거림마다에서 물살져오는 온기를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참, 경수는 잘 있습니까?”
태섭의 음성은 조금 들떠 있는 듯싶었다. 그네는 약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고, 눈길이 마주치자 시선을 옮겼다.
그러면서 고개를 저었다.
“죽었어요……˙.”
“아니, 무슨 일로……˙.”
“어줍잖게 죽어버린 거지요. 연탄 가스 중독이었으니까요. 어쩌면 오히려 그게……˙.”
벽을 향해 하염없는 눈길을 보내고 있는 그네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런 탈색되어 버린 냉랭한 웃음을 태섭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태섭은 두려워졌다. 생활의 비참한 잔인성은 언제나 상상을 비웃게 마련이었다. 오늘은 더 이상 그네를 괴롭히지 말기로 했다. 자신의 무질서한 궁금증의 충족 욕구는 그네에게 보상 없는 고통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뿐이었다.
“너무 반가워 자꾸 누구에겐가 감사함을 표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앞으로 생활에 방해가 안 되는 범위 내에서 자주 연락 주십시오.”
가슴에서 들끓고 있는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말들을 애써 간추려 이렇게 말하며 태섭은 명함을 내밀었다. 그네는 그걸 다소곳이 받아 한참을 내려다보더니 핸드백에 넣었다. 의학박사 박태섭과 전화 번호가 적혔을 뿐인 명함을 읽기에는 지나치게 긴 시간이었다.
1주일, 열흘이 지나도 그네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태섭은 더 견디지 못하고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일련 번호도 모르는 카드를 찾느라고 수선을 피웠다. 카드에는 주소뿐 전화 번호가 없었다. 병원에는 한 달에 한 차례씩 정기 진단을 받으러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주소를 적어가지고 온 태섭은 집을 찾아나설까말까를 놓고 망설이기 시작했다. 괜히 찾아갔다가 가정 생활에 흠집이나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 려에 가로막혀 끙끙대기만 했다. 태섭은 조바심을 치면서 새로운 적막에 에워싸이고 있었다.
그런데 나흘째 되는 날 오후에 그네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장소와 시간을 약속한 다음 그네는 “제가 저녁을 대접하겠어요” 이 말을 또렷하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태섭은 기뻤다. 이제 된 것이었다. 저녁이야 대접을 받건, 대접을 하건 무슨 상관이랴. 드디어 그네를 살리게 된 것이다. 그네는 태섭 자신을 기피하지 않고 맞아들여준 것이다. 태섭은 그네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태섭은 그네와 헤어진 후로 줄곧 그네가 출산을 하기 전에 자살을 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초조감에 시달려 왔던 것이다. 배가 불러감에 따라 커져갈 그네의 강박 관념은 그런 사고를 유발시킬 위험을 얼마든지 지니고 있었다.
그날과는 달리 그네를 임산부로 느끼기는 어려웠다. 꽤 짙은 화장에 밝은 빛깔의 옷을 입은 그네는 아직도 건강한 젊음을 간직한 윤기 나는 여자였다. 그네를 대하는 순간 태섭은 어둠을 가르는 서치라이트 불빛 같은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그건 의심할 여지없는 가능성이었다. 그건 남자 앞에 나서는 여자의 단순한 본능적 행위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담당 의사도 남자였다. 그 남자는 의사일 뿐이라는 점이 강조되어도 좋다. 의사와는 다르게 태섭 자신이 그네에게 그네의 치장을 필요로 하는 남자로 인식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마음은 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여자가 남자 앞에서 여자이고 싶어하는 것. 그것 이상 여자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또 어디 있는가. 이런 감정에서가 아니고, 자신의 굴욕스럽거나 수치스러운 면을 감추기 위한 여자의 계산된 앙큼성의 노출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건 어쩌면 더욱 진한 가능성일지 모른다. 여자라는 생명의 극치는 질투요, 치장된 자기 과시욕은 질투의 산물이며, 질투는 오로지 삶의 욕구지 죽음에 인접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저 옛날에 인연했던 사람을 만나는 데 예의를 갖춘 것 뿐이라는 평범한 감정일 수도 있었다. 그것만이라도 좋았다. 그네가 만남을 허락한 이상 자신은 지치지 않고 그네를 지킬 것이었다.
약속대로 그네가 저녁을 샀고 태섭은 그네에게 나이트클럽 쇼 구경을 제안했다.
“집안에 별일이 없으시면 시간을 내주시지요. 부담 없는 구경이더군요,”
“아무 일도 없어요. 시간도 늘어지게 많구요.”
그네는 경박하게 느껴질 정도의 어조로 빠르게 말했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무척 자조적이었다. 이때 태섭은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하마터면 ‘부군께서는…….’ 어쩌고 하는 주책없는 말이 나오려고 했던 것이다. 그네를 만나기 전에 이미 그네의 생활 형편을 먼저 묻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좋은 일보다는 궂은일이 더 많았을 확률이 큰 생활을 헤집어본대야 얻어질 것은 별로 없을 것이었다. 가장 쉽게 얻을 것이 있다면 그네가 자신을 기피해 버리는 것이리라 싶었다. 부담을 주지 말고 자꾸 만나고, 그러는 사이 그네가 건강한 정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부축해야 하는 것이었다. 임신을 했을망정 초산(初産)인 그네는 아직 여자일 뿐이었다. 약한 여자인 데다가 혈혈단신인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네를 출산까지 무사히 이끌어가느냐가 문제였다. 출산만 하면 그네는 누구보다 강한 엄마가 될 것이었다. 혼자 살아온 여자가 자기의 분신을 갖게 되었을 때 일으키는 삶에 대한 의지의 강도는 새삼스럽게 따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태섭은 저녁을 먹으면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미리 생각해 온 재미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네는 조용히 웃어가며 이야기를 흥미있게 듣고 있었다.
그네는 화려한 쇼 무대에 별로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루해 하는 느낌을 찾을 수는 없었다. 태섭은 식당에서처럼 미국에서의 실수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태섭이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시계를 보니까 9시 반이 넘어 있었다.
“시간이 꽤 오래됐군요.”
태섭이 앉으면서 말했다. 그네는 아이스크림을 담아온 과자를 부스러뜨리고 있었다.
“이 나라로 다시 돌아오신 이유를 고아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그네가 불쑥 한 말이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그네는 전날처럼 피하지 않고 있었다.
태섭은 그네의 눈을 응시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
그네는 눈길을 떨어뜨렸고 그리고 핸드백을 들고 일어섰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을 때까지 태섭은 왜 그네가 그런 말을 물었는지 종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왜 자신의 가슴이 아프도록 뭉클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조심 해 가십시오.”
태섭은 택시 문을 열었다.
“끝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는군요.”
그네는 이 말을 남기고 택시 문을 닫았다. 곧 택시는 떠났고 태섭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많은 생활의 아픔을 간직한 누이동생을 먼 길로 떠나보내는 것 같은 서러움이 태섭의 가슴을 먹먹하게 채워오고 있었다.
그네 경희의 말을 곱씹으며 닷새가 지났다. 그네는 이쪽의 심중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예의가 지나치면 비굴이나 위선이 되기 쉽듯이 어쩌면 자신의 행동을 그네는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모른다는 답답함을 떼칠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네는 다시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역효과였다. 솔직했어야 하는 건데, 20여 년 동안의 상식적인 궁금증을 풀려고 했어야 하는데……. 태섭은 자신의 우회 작전을 후회 했다.
그런데 경희는 엿새째 되는 날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을 발가벗기는 대담한 실토를 담담하게 해 나갔다.
“지난번에는 듣기만 했으니까 오늘은 제가 말하겠어요. 허지만 의무감 때문은 아네요.”
그네는 이렇게 전제를 하면서 가만히 웃었다. 태섭은 그 웃음 속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감 같은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전날 귀국의 이유를 따져물었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네는 첩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교수는 자식을 넷이나 거느린 본처와 이혼을 하려고 급급해 있고 그의 아내는 이혼을 당하지 않으려고 벌버둥을 친다고 했다.
“동생이 어이없게 죽었을 때도 슬픔보다는 당연하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더군요. 명색이 처녀로 이런 꼴이 되었는데 또 그때처럼 당연하다는 생각뿐예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사소한 일에는 영악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막상 큰일에 부딪히면 영 엉망이 되곤 해요.”
그래서 그네는 또 하나의 큰일인 임신을 놓고도 사산(死産)을 하지 않으면 불구를 낳게 되리라고, 그래야만 당연한 결과라고 믿고 있는 것인가. 그네를 이다지 끈질기게 괴롭혀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태섭의 모든 신경은 곤두섰다. 그런데 뜻밖에도 헛간의 사건이 생생한 기억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섭은 난감했다. 거의 직감에 의해 연결지어진 그 사건이 정말 그네를 괴롭혀온 것이라 하더라도 실마리를 풀어갈 방법이 묘연했다. 그게 무엇을 한 짓이었는지 깨달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리고 그네로서는 맨 정신
으로 떠올리기에는 너무 몸서리쳐지는 기억일 것이었다. 태섭은 서두르지 말자고 자신을 타일렀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네가 물었다.
“저어…… 꿈을 많이 꾸시나요?”
“네에?”
예기치 않은 물음이라 태섭은 당황했다. 그러나 무언가 부딪쳐오는 것이 있어 전 신경을 모았다.
“꿈 많이 꾸죠. 야망이 큰 사람일수록 꿈을 많이 꾼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도 않은데 꿈 부자죠.”
“그렇죠? 제 경우도 그래요.”
그네는 반색을 하며 동의를 구했고, 곧 미간이 찌푸려질 만큼 음울한 표정 이 되었다.
무슨 꿈을 그렇게 많이 꾸느냐는 말이 입술에 매달렸지만 태섭은 그 말을 삼켜버렸다. 그네의 표정으로 보아 그 꿈은 흉측한 것일 게 분명했다.
“내 생각으론 꿈이란 야망하고 가까운 것이 아니라 상처하고 친구예요. 아픈 과거의 되풀이가 꿈인 것 같아요.”
태섭이 말했고, 그네는 열서너 개의 계단을 걸어 내려갈 때까지 고개를 끄덕 이고 있었다.
태섭은 그네에게 위로의 말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택시 정류장이 가까워지자 태섭은 입을 열었다.
“경희씨, 기억하십니까?”
그네는 뭐냐고 눈으로 묻고 있었다.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가고 나는 엄마와 여동생 셋이서 피난을 가다가 폭격을 당해 나만 살아남았다는 거.”
그네는 고개만 끄덕였다.
“아버지, 어머니보다는 그 여동생이 더 그립곤 합니다. 경희 씨처럼 살아 있어서 좋든 궂든 살아가는 이야길 나누며 서로 의지하면 이렇게 춥지는 않을 거라는 헛된 소망을 갖곤 합니다.”
그네는 태섭을 응시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며 나직하게 물었다.
“많이 추우세요?”
태섭은 그네의 목소리가 떨린다고 느꼈다.
“경희 씨가 추워하는 만큼…….”
그네는 더 말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하더니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태섭은 담배를 빼물었다. 담배 연기가 목에서 막혔다.
기다리는 사람에 비해 택시는 더디게 왔다. 태섭은 그네가 오래 서 있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서 있기 힘들죠?”
“아녜요, 전 하루 종일 쉬었는걸요.”
그네는 제법 밝게 웃어 보였다.
택시가 두 대만 더 오면 타게 되어 있었다.
“오늘 지루하셨죠. 너무 갈팡질팡 수다를 떨었어요.”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괴로운 형편을 털어놓고 얘기해 오는 사람조차 나에겐 없지 않습니까.”
그네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택시가 한 대 멈췄다 떠나고 그네가 탈 차례가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까지 바래다주고 싶었지만 태섭은 그런 무리를 피했다.
택시는 의외로 빨리 왔다. 태섭은 택시 문을 재빨리 열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너무 추워하지 마시구요.”
태섭이 대꾸할 사이도 없이 문이 닫혔고 택시는 떠나갔다.
“경희……˙.”
택시가 사라진 쪽을 향해 울먹해진 표정으로 서 있는 태섭은 방금 그네가 점박이 경희 때처럼 밝게 웃었다는 사실에 가슴 저리고 있었다.
〈197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