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길을 묻다]
"또 믿어달란 관료 말 듣기 싫다… 現場전문가가 안전 대책 내놔라"
[릴레이 인터뷰] 세월호 한 달… 3040 엄마들의 염원 물속 아이 나올 때마다 내 아이 나오는 듯 아파 우린 삼풍백화점, 애들은 세월호… 災難 대물림 화나 주장보다 팩트, 구호보다 디테일 담긴 安全 대책 원해 국가안전처 만들면 그 아이들 이름과 꿈을 새겨 넣자 그리고 약속하자, 다신 이런 일 없을 거라고
서울 동작구에서 중3 아이를 키우는 이지수(43)씨. 결혼한 지 17년 만에 남편이 우는 걸 처음 봤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예요. 시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속으로 울지, 내놓고 곡하지 않았어요. 그런 남편이 기울어지는 배 안에서 아이들이 찍은 동영상을 보고 주르륵 눈물을 흘렸어요. 저는 더했죠. 엄마잖아요."
강북구에서 고3 아이를 키우는 이혜진(48)씨. 아이 학교 보내고 목욕탕 갔다가 집에 왔는데 지인이 "들었느냐?"고 전화했다. TV를 틀었다가 '감정 폭탄'을 맞았다. "물속에 있던 아이들이 나올 때마다 한 명 한 명 내 아이가 나오는 것 같았어요. 엄마들은 열 달 동안 배 속에 애를 품잖아요. 애들이 태어나서 맨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잖아요. 우리 아이도 작년에 배 타고 대마도에 다녀왔어요."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지난 13일 조선일보에서 김민전(49·맨 오른쪽) 경희대 교수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3040 세대 엄마들’이 집단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영미(43)·이지수(43)·이혜진(48)·이미연(35)씨. /이명원 기자 |
강남구에서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키우는 강영미(가명·43)씨. 20대 때 벌어진 각종 재난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지금도 한강 건널 때 다리 한 번씩 더 봐요. 대책? 매번 있었잖아요? 그런데도 신축 빌라가 기울어지잖아요. 왜 나아지지 않지요? 정말 자동차에 구명조끼 놓고 다녀야 하나요?"
강북구에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키우는 이미연(35)씨. 직업이 특수교육 강사다. 단원고에서도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충격이 컸다. "태권도 3단인 아이(고(故) 정차웅군)가 친구에게 구명조끼 벗어주고 갔다면서, 그 애 사진이 뉴스에 나왔어요. 잘생긴 아이였어요."
◇일상을 부순 뉴스
초등학생 280만명, 중학생 180만명, 고등학생 190만명, 총 650만명. 대한민국 초·중·고생 숫자다. 그 애들 낳고 기른 엄마 숫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엄마들에게 세월호 침몰은 일상 한복판에 떨어진 폭탄이었다. 직장·집·동네·밥집·놀이터·헬스장…. 어디서 뉴스를 들었건 누구나 "어떡해!" 했다.
자기 일처럼 울고 분노하며 한 달을 보낸 지금, 엄마들의 마음은 어느 지점까지 흘러왔을까. 지난 13일 조선일보사에 30~40대 엄마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 김민전(49) 경희대 교수가 진행했다. 김 교수가 "한국 엄마들이 슬퍼하는 건 단원고 아이들이 소중한 인생을 폭력적으로 가치 없이 중단당했다는 공분(公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도 엄마다.
◇"더구나 이번엔 애들이에요"
지금 초·중·고생 엄마들은 각종 재난을 보고 자랐다. '참사 발생→알고 보니 인재(人災)→참사 또 발생→알고 보니 또 인재'라는 패턴이었다. 엄마들은 "처음이 아니니까 몇 배로 화가 난다"고 했다.
1993년 292명이 숨진 서해훼리호 침몰. 220명 태우는 배에 360명 태운 게 화근이었다. 1994년 등굣길 여고생 등 32명이 숨진 성수대교 붕괴. 다리 이음새를 엉성하게 붙여놓고 점검도 안 한 게 화를 불렀다. 1995년 101명이 숨진 대구지하철 폭발. 1m 깊이로 묻어야 할 가스관을 30㎝ 깊이로 묻은 것이 문자 그대로 '뇌관'이 됐다. 같은 해 502명이 숨진 삼풍백화점 사건. 멋대로 설계를 고쳐 지하 공간을 넓힌 뒤였다.
"삼풍 무너졌을 때 갓난애 키우고 있었어요. 시댁·친정 할 것 없이 서로 전화 걸고 전화 받느라 아우성이었어요. 그러더니 이번엔 아예 한 학년이 텅 비는 학교가 생긴 거예요."
엄마들 분노를 폭발시킨 장면이 '팬티 입고 도망간 선장'이었다. "자기는 살겠다고…."
엄마들 눈에는 장관 '인책'도 진부했다. "맨날 장관 바꾸잖아요? '네가 다 지고 가라' 이런 건가요?"
◇첫 석 달… "그땐 낱낱이 알고 싶다"
최악의 재난을 겪고 첫 한 달이 지났다. 첫 석 달이 됐을 때, 엄마들이 듣고 싶은 뉴스는 뭘까? 그들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달라져 있길 바랄까?
엄마들은 "우선 낱낱이 알고 싶다"고 했다. "우린 매번 석연치 않게 넘어간 게 너무 많았다"고 했다. "책임질 사람은 전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특검할 거라고 들었어요. 좋은 얘기예요. 근데, 그 특검에서 엄마들이 듣고 싶은 건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잘못해 어떤 결과가 빚어졌다'는 거예요. '이게 문제고, 그걸 고치기 위해 이렇게 하겠다'는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얘기예요. 정치인끼리 서로 욕하는 걸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첫 석 달… "현장서 대책 내놔라"
엄마들은 대책을 원했지만, 늘 있던 대책은 아니었다. '주장'이 아니라 '팩트', '구호'가 아니라 '디테일', '관(官) 주도'가 아닌 '현장형'을 원했다. "믿어달라"는 말,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 말 안 해도 저절로 믿을 수 있게 보여달라고 했다.
"높은 사람이 줄줄 읽는 종합대책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대책은 과거에도 늘 있었잖아요. 아직 아이들 구조도 덜 끝난 상황인데, 지금 내놓는 대책은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 회의해서 내놓는 대책일 거 아니에요? 알맹이가 얼마나 있겠어요?"
"지금 당장 답이 없는 문제도 있을 수 있어요. 답이 없는 건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답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전부 보여주세요."
"공무원이 만든 대책 말고, 정말로 현장을 아는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싶어요."
"만에 하나 또 재난이 일어난다면 그땐 정말 확실히 책임질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해요. 재난 상황에서 누가 컨트롤 타워가 돼서 어떻게 한다는 큰 그림이 세부까지 나와야 해요. 그런 그림 그릴 전문가가 국내에 없으면 해외에서 불러와야죠."
◇"세월호 엄마들을 돌봐주세요"
아이들은 누구나 꿈이 있다. 어려선 매일 바뀐다. "커서 로봇이 되고 싶다"는 황당한 소리도 한다. 자라면 구체적으로 고민한다. 끙끙거리며 성적과 견줘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게 부모가 살아가는 힘과 재미다. 세월호 아이들도 한 사람 한 사람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을 끝까지 기억해주는 게 우리의 양심이라고 생각해요." "국가안전처라는 관청을 새로 만든다고 들었어요. 희생된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꿈을 그곳 벽에 새겼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이런 일 없게 하겠다'고 약속하면 좋겠어요."
엄마들은 "'세월호 엄마들'이 살아갈 나날을 생각하면 울컥한다"고 했다. "나라에서 그분들에게 일시불로 위로금 드리고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어려운 노인들한테 복지관에서 매주 전화도 드리고 밑반찬도 가져다 드리잖아요. 세월호 유족도 평생 돌봐 드려야 해요. 10년, 20년 뒤에도 가가호호 방문해 그분들이 삶을 견딜 수 있게 도와 드려야 해요. 나라가 그분들을 끝까지 챙길 거라고, 우리 모두 믿고 안심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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