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러가 이기면?"…우크라 무기지원론 맞은 韓의 딜레마
김지훈 기자별 스토리 • 어제 오전 9:12
#최근 대(對)우크라이나 무기 직접지원 여부가 중립국 스위스는 물론 한국에서 여론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우크라가 보인 뜻밖의 선전, 미중 갈등 등 복잡다단한 배경 속에 각국의 대 우크라 노선 '2라운드'가 여론의 주목을 받고 설왕설래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문제는 전쟁이 장기화했음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어느 나라의 승리로 돌아갈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공에 따른 대 러 제재에 가담한 상태인 우리 정부가 향후 대응 수위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배경도 바로 결말의 불확실성이 거론된다.
"그러다 러가 이기면?"…우크라 무기지원론 맞은 韓의 딜레마© MoneyToday
냉철한 정세 판단이 오히려 개전 초기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러시아의 파상 공세를 1년이나 견딘 우크라이나의 저력은 전쟁 기간 내내 주목을 받아 왔다. 우리나라도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 등으로 힘을 보탰다. 다만 전문가 사이에선 "러시아가 시작부터 이긴 싸움"이라며 현단계보다 대러 압박을 강화하는 게 국익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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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자론 안 통하는 신냉전 시대라는데…서방 기대에도 무기는 지원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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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러가 이기면?"…우크라 무기지원론 맞은 韓의 딜레마© MoneyToday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신냉전 체제를 앞당기면서 한국은 더이상 과거 정권 때와 같은 '중재자' 역할을 밀고 나가기 힘든 국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한국의 외교 노선과 관련해 과거 정권때 주장됐던 '중재자론'과 관련해 "냉전 시기의 한국이, 이승만 박정희 때, '중간에서 뭘 한다'는 그런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가능한 얘기가 아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쪽 진영에 가는 수밖에 없는 게 맞다"고 했다.
다만 위 전 대사는 "지정학적인 여건에서 대 중국·러시아 관계, 한반도의 평화 안정, 비핵화, 통일을 고려하면 주변 국가들과 크게 척을 질 수는 없다"며 한국 외교의 좌표 설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무기 직접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가치 외교, 자유 수호같은 얘기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미국 등 서방의 기대를 크게 올려놨다"며 "그런 대외적인 천명과 무기 수출을 하지 않는 입장 사이에서 보이는 괴리가 난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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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포기하니 침공당한 우크라…꼬인 대북 협상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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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러가 이기면?"…우크라 무기지원론 맞은 韓의 딜레마© MoneyToday
북한 입장에서는 핵무장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핵 보유국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구도를 '반면 교사'로 삼고 핵보유를 고집할 공산이 커진 상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한국을 비롯한 '동류(like-minded) 국가'라고 불리는, 민주주의를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다시 뭉쳤고 이것이 북한의 입장에서 굉장히 불리하다"라며 "북한은 러시아와 동조화돼서 북한이 그렇게 원하는 제재 완화, 제재 철회 같은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박원곤 교수는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무기 직접지원론에 대해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정부가 안 하기로 결정을 한 상황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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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비싸게 만들어도 드론에 나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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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러가 이기면?"…우크라 무기지원론 맞은 韓의 딜레마© MoneyToday
우크라이나 전쟁이 드론 등 최첨단 IT(정보기술) 전쟁 양상으로 전개된 것에 국방 당국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예비역 육군 준장인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장은 "아무리 비싼 전차를 만들어도 드론 한 방에 나가 떨어지고, 전함 항공기 전차 같은 것들이 제대로 전장에서 역할을 잘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됐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전쟁의 양상이 더는 작동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한설 전 소장은 이번 전쟁의 결말에 대해서는 "러시아는 한 70% 정도의 (우크라이나) 군사 기지를 다 파괴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이겨놓고 전쟁을 한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좀 더 방어를 잘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러시아가 이길 것"이라고 했다. 한설 전 소장은 "한국이 무기를 직접 지원하면 교전 당사국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직접지원 불가론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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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안 만드는 게 좋지만…동맹 美와 관계도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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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러가 이기면?"…우크라 무기지원론 맞은 韓의 딜레마© MoneyToday
박기순 덴톤스 리 법률사무소 상임고문(전 중국 삼성경제연구원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미중 간 갈등이 좀 더 장기화되고 심해지면 결국은 콜드워(Coldwar·냉전)로 갈 것"이라며 "적을 안 만드는 것이 할 수만 있다면 좋지만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약화될 수 있어 그 균형을 정말 잘 잡아야 된다"고 했다.
러시아가 승전해도 미중 갈등에서 미국의 우위가 변함이 없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박기순 고문은 "러시아의 토지가 우크라를 가져가면 결국 유럽까지 더 확대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올 경우 러시아가 살아난다는 얘기"라면서도 "워낙 무기 소진 등에 있어 러시아의 힘이 빠지고, 미중 간 충돌에서 미국이 우세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