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에스더 2장 1절 – 23절) 2: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2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 3 전국 각 지방에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 맡겨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물품을 주게 하시고 4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소서 하니 왕이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대로 행하니라 5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6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7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8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 9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12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기한을 마치며 13 처녀가 왕에게 나아갈 때에는 그가 구하는 것을 다 주어 후궁에서 왕궁으로 가지고 가게 하고 14 저녁이면 갔다가 아침에는 둘째 후궁으로 돌아와서 비빈을 주관하는 내시 사아스가스의 수하에 속하고 왕이 그를 기뻐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더라 15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16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년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서 왕 앞에 나가니 17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18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니라… 21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22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23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개역개정) 오늘의 성경 본문은, 아하수에로 왕이 술에 취한 일시적 분노로 와스디 왕후를 폐위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그에게, 신하들이 새로운 왕후를 간택할 것을 조언하는 내용입니다. 이 때문에 에스더가 바사 제국의 왕후로 간택되는 과정과, 부모를 잃은 어린 사촌 누이동생인 에스더를 딸처럼 키워준 모르드개가 왕실 문지기로 근무하는 가운데, 왕에 대한 암살 계획을 알고 이를 사전에 막는 공로를 세운 사건에 관한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에스더서를 통해서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이 그냥 의미 없는 일들의 연속인 것 같지만, 그 안에 개입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세밀하고 섬세하신 섭리의 손길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고백과 영광을 올려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겸허한 신앙의 자세로 낮아지게 합니다. 바사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은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1:4) 자랑하고 과시하는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랑에 빠진 그가 187일간의 연회 마지막 날 자기 만용에 사로잡혀서, 술자리에 왕후인 와스디를 내세워 자랑하려다가 이를 거부한 왕후에게 분노하여 폐위시키는 허망한 사건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렘9:23)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랑하여도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였도다”(렘48:30)며,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사16:6)고 선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자랑”은, 쓸데없는 자기 과시욕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자기 열등감을 가리고자 하는 행동일 때가 많습니다. 오죽하면 성경에 “자랑”하는 자를 신뢰하지 말 것을,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잠25:14)고 했겠습니까? 에스더서에서, 자신과 국력을 과시하려고 했던 아하수에로 왕의 허상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한편, 아무런 신분적 배경도 없고 자기를 꾸미려하지 않았던 에스더가 제국의 왕후에 오르게 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이들이, 주님과 함께 영원한 신실한 삶의 여정을 걸어가게 됩니다. 1. 에스더가 어떻게 왕후 후보로 간택됩니까?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1:4)기 위해 베푼 “백팔십 일 동안”의 연회를 마치면서, 그 뒤풀이로 당시 “도성 수산에 있는…백성을 위하여”(1:5) 마지막 “칠 일 동안”의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187일간의 모든 잔치의 마지막 날에 그동안의 긴장이 풀어졌는지 술에 취해 흥겨움에 빠진 왕이, 아름다운 “왕후의 용모”를 자랑하고 싶은 충동에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1:11)는 갑작스러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문제는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1:12)하여 거부했고, 이로써 왕의 자존심과 체통과 권위가 한순간에 땅에 추락해버리는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끝납니다. 이 때문에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붙는 듯”(1:12)하면서, 자문관들에게 “왕후 와스디가 내시가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까?”(1:15)라고 묻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1:19)라고 자문했습니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2:1)이라는 오늘 본문의 시작을 통해서, “왕후 와스디”를 폐위한 왕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과거 상황을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일을 순간적인 감정으로 처리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생각하거늘”이라는 뜻이 ‘마음에 걸렸다’ 또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하다’는 의미로, 과거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후회하며 그리워하고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라는 시간은, “아하수에로 왕”(주전485-464년)이 “왕위에 있은 지 제삼 년에”(1:3) 곧 주전 483년에 연회와 폐위 사건이 있었고,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 년 시월”(2:16)인 주전 479년에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고, 이때가 그녀가 뽑혀온 지 “열두 달”(2:12) 후라는 점에서 주전 480년경으로 3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시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때인 주전 480년은 그리스 연합군과의 제3차 원정 전쟁에서 철저한 패배를 당하는 아픔을 겪어야했던 참으로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당시 상황과 왕의 마음을 헤아렸던 “측근 신하들”이, 갈등하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한 조언이 무엇이었습니까?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 전국 각 지방에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 맡겨,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물품을 주게 하시고,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소서!”(2:2-4). 새로운 왕후의 간택을 조언했습니다. 그런데 “왕의 측근 신하들”이, 과거 “왕후 와스디”의 폐위에 관여했던 자문관들인 “현자들”(1:13) 곧 “일곱 지방관”(1:14)들과 같은 사람들인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찌되었든 “왕후 와스디”가 복권(復權)되었을 때 일어날 피바람을 아는 이들은, 전 왕후의 복위(復位)가 아니라 새로운 왕후의 간택을 추천합니다. 이 조언에 “왕이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대로 행하니라”(2:4)고 했습니다. 사실 당시 바사 왕조의 전통은 같은 바사(페르시아) 혈족이면서 귀족 가문에서 간택해야 했는데, 전국에서 공개 간택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유대인이었던 에스더가 제국의 왕후로는 불가능했던 혈통과 신분 상황에서 왕후로 간택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지켜보게 됩니다. 왕후로 간택될 에스더의 가문과 상황이 어떻게 소개됩니까?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2:5-7). “베냐민 자손”이었던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 곧 사촌 누이동생이었지만, 그 부모가 죽으면서 고아가 된 그녀를 “딸 같이” 키웠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것 같습니다. “유다 왕 여고냐”는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왕하24:6)으로, 바벨론의 제2차 침략 때인 주전597년에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렘24:1,왕하24:15). 그 다음으로 시드기야가 마지막 왕이 되었지만(왕하24:17), 결국 남유다 왕국은 주전586년에 바벨론의 3차 침략에 의해 멸망당하게 됩니다.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고 했지만 당시와 120년여의 시간적 간격을 감안할 때, 그때 잡혀온 이들의 자손이라는 의미로 봅니다. 2. 에스더가 어떻게 왕후로 간택되었습니까? 바사 제국의 정치적 상황과 “아하수에로 왕”의 심적인 갈등 상황으로 인해 “왕후 와스디”를 대신할 새로운 왕후를 간택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를 위한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2:8)게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라는 표현을 통해서, 강제는 아닐지라도 뽑혀 간 것이지 자발적으로 지원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왕후 후보를 간택할 “전국 각 지방에 관리를 명령하여”(2:2) 시행했다는 것은, 그러한 직임을 맡은 행정관들을 임명하여 왕후 후보자들을 각 지역마다 뽑아 올릴 것을 명령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가 “에스더”를 첫 눈에 보자마자 특별 관리에 들어갔음을 증언합니다.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2:9).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였던 “헤개”는, 왕이 좋아할 취향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고 또한 왕후로서의 품격과 자질과 조건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기에, “에스더”에게서 그러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줄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섭리의 손길도 작용했음을 나타냅니다.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은 몸을 씻고 관리할 화장품과 할당된 몫 곧 음식을 의미하며, “일곱 궁녀”를 붙여주었습니다. “일곱 궁녀”는 간택된 왕후 후보자들을 1년간 섬길 사람들로서(2:12), 이것이 모든 왕후 후보자들에게 붙였던 것인지, “에스더”에게만 베푼 특별한 것이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으레 주는”이 ‘당연히 주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특별한 관찰을 통해 선발되었다’는 뜻으로, “에스더”를 위해 ‘특별히 선발하여 곁에 붙인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후궁”은 궁녀들의 거처로 왕후 후보자들이 머물게 했고,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왕후 후보로 간택된 “에스더”에게 “모르드개”가 당부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2:10). “민족”은 이스라엘 사람 곧 “유다인”(2:5)을 의미하며, “종족”은 “베냐민 자손”(2:5)임을 드러내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당시에는 “유다인”이 유다 지파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남유다 왕국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이들을 “유다인”으로 불렀던 것 같습니다. 포로 출신이라는 점과,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유다인”의 독특한 종교생활을 배타적으로 보는 반감(3:8)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 하였더라”(2:11)고 함으로써, “왕궁”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신분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2:21)라는 표현을 통해서, “왕궁” 문지기로서 어느 정도의 신분적 위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 딸 같이 양육”(2:7,15)했던 “모르드개”로서는 “에스더의 안부”와 장차 “어떻게 될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왕후 후보자로 간택된 사람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쳤다고 증언합니까? 첫째로,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기한을 마치며”(2:12)라고 하여, 1년간은 왕후 후보자로서 각자의 몸을 잘 가꾸게 하면서 왕실의 법도를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6개월은 “몰약 기름”을 발라 피부 관리에 집중했다면, 그 후 6개월은 얼굴 화장 관리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둘째로, “처녀가 왕에게 나아갈 때에는, 그가 구하는 것을 다 주어 후궁에서 왕궁으로 가지고 가게”(2:13)했다는 것은, 왕 앞에 나갈 때 각자 자기를 가장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온갖 액세서리들로 치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저녁이면 갔다가 아침에는 둘째 후궁으로 돌아와서, 비빈을 주관하는 내시 사아스가스의 수하에 속하고, 왕이 그를 기뻐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더라”(2:14)고 했습니다. “차례”가 된 왕후 후보자는 일단 왕과 동침을 해야 했고, 일단 왕과 동침한 왕후 후보자들은 “비빈”(妃嬪) 곧 왕의 첩이 되었기에 “왕궁”에서 돌아오면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서 “비빈을 주관하는 내시 사아스가스의 수하”인 다른 “둘째 후궁”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들은 “왕이 그를 기뻐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평생을 생과부로서 “둘째 후궁”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언제 “에스더” 차례가 되었고 또 어떻게 했다고 증언합니까?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 년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서 왕 앞에 나가니”(2:16)라고 증언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 년”이면, “아하수에로 왕”이 주전485년에 즉위했기에 주전 479년이 되며, “시월” 곧 10월이면 양력으로는 479년 12월 중순에서 478년 1월 초순이 됩니다. 그렇다면 주전 480년과 479년에 있었던 두 차례의 그리스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모두 패배한 상태라, 왕이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시간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후 간택 절차가 진행되었고, “에스더”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2:15). 놀랍게도 “에스더”는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치장해준 것 외에는 더 이상의 치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용모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특별하게 대해준 “내시 헤개”에 대한 신뢰와, 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걸친다고 자기가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겸손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행동하는 이러한 마음과 모습이, 그녀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에스더”를 오히려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의 특징은, 단지 외모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따뜻하게 소통하는 아름다운 배려의 마음과 태도가 존재합니다. 전쟁의 패배와 그동안 왕후 없이 생활하며 외로웠던 “아하수에로 왕”에게, “에스더”는 다른 왕후 후보자들에게 없었던 위로와 힘과 정감이 있는 그 어떤 따스한 마음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2:17)고 했습니다. 더 이상의 왕후 후보자를 볼 것도 없이,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2:17), 곧 바로 왕후 즉위식을 거행했다고 밝힙니다. 왕후 즉위식을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2:18)고 밝힙니다. 이 자리에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2:18), 백성들에게는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니라”(2:18)고 했습니다. “세금을 면제”했다는 것은, 밀린 세금에 대한 탕감과 죄수들에 대한 사면의 의미와 함께, 백성들로 쉬게 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3. 모르드개가 세운 공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에스더”가 바사 제국의 “왕후” 자리에 앉고 나서 갑자기 내용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에스더서가 단지 “에스더”가 당시 대제국의 “왕후”가 되었다는 신데렐라 같은 기적적인 사건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하여 포로민으로 끌려왔던 유대 민족이 말살당할 뻔한 위기를,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넘겼는지를 나타내는 부림절의 기원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증언하고자 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다소 이상합니다.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2:19). “아하수에로 왕”이 다시금 새로운 왕후 간택을 했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에스더”가 물러났어야 하는데 그런 사건이 없었다는 점에서 과거 “에스더”가 간택될 당시를 “다시 모을 때”라고 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이전 “왕후”였던 “와스디”가 “에스더”와 같은 간택 절차를 거쳤다는 것인데, 만약 그녀가 귀족 가문이었다면 그런 하찮은 문제로 한순간에 폐위되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상황은 잘 모릅니다. 일단은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2:20)고 함으로써, 아직 “에스더”의 “종족과 민족”을 주변에서 아무도 모르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자, “왕후”가 된 후에도 “모르드개”를 멀리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아름다운 겸손한 성품으로 베풀어준 사랑을 기억하고 변함없이 친밀한 순종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만약 하만이 “왕후”가 된 “에스더”의 “종족과 민족”을 알았거나, “모르드개”와의 관계를 알았다면, 감히 유대인 말살 계획은 세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3장). 그리고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2:19)는 표현은, 단순히 “왕궁” 문지기였다는 것이 아니라, “왕궁”의 출입을 관할하는 상당한 지위를 가진 책임자로서 집무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과거에 “에스더의 안부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2:11), 1년 동안 왕후 후보자 간택 교육을 받을 때 “모르드개가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2:11)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르드개”가 알게 된 놀라운 정보가 무엇이었다고 증언합니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2:21)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는지는 잘 모릅니다. 추정하기는, “왕후 와스디”의 폐위와 관련하여 그 측근의 정치적 세력들이 품은 “원한” 때문이었거나, 권력에 대한 어떤 욕망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라는 것은, “대궐 문”이 아닌 내전 특히 왕의 침실을 지키던 이들을 가리킵니다. “왕을 암살”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한 거리와 위치에 있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어떻게 이런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라는 표현을 통해서, “왕궁”의 전체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고 따라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섭리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이런 엄청난 정보를 “왕궁”의 공적인 체계가 아니라, 어떤 통로로 왕에게 알렸다고 했습니까?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2:22). 아마도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였다는 점에서, 위에 보고했을 때에 중간에 정보가 누설될 수도 있을 것을 우려하여, 가장 신뢰할만한 루트인 “왕후 에스더”를 통하여 알린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왕후 에스더”의 위상 강화까지 함께 꾀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다고 증언합니까?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2:23)고 했습니다.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다는 것은, 철저한 사건 조사를 통하여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이 사실이었음을 밝혀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사형에 처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의 공적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왕후 에스더”가 자신과 “모르드개”와의 혈족 관계를 밝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모르드개”가 이 공적에 대해서 아무런 포상을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6:1-3). 그러나 그는 섭섭해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자, 무엇보다 “자기 딸 같이 양육”(2:7,15)했던 “왕후 에스더”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값없는 헌신과 수고가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훗날 유대인 말살 정책을 가로막는 한 전환점의 사건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범사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에스더”에 대해서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2:15)고 한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누군가가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입니다. /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입니다. /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을...”이라고 했던 글처럼, 억지로 사람들로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를 변화시킬 줄 아는 이들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의지하고 치장하는 것에 우선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우선했습니다. 그렇기에 “에스더”를 가리켜서,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2:15)고 했고,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로서 왕후 후보자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던 “헤개가…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2:9) 특별한 예우를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2:17)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마음은 일반적으로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억지로 되게 하고자 하기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방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 지혜로운 신앙의 방식이고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백팔십 일 동안”(1:4)이라는 엄청난 시간 동안 엄청난 경비를 들여서 국가의 부강을 과시하고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1:4)었지만, 작은 도시국가들이 연합한 그리스와의 전투에서 참패를 거듭했습니다. 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시105:3)고 했고, 야고보 선생이 우리에게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1:10-11)고 하신 경고의 당부를 기억하는 이들이 복됩니다. 주님께서 “에스더”처럼 사람들로 우리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2:9)주셔서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2:15)고 하신 은총과 축복을 맛보아 누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