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영적 독서(렉시오 디비나)
기독교의 영성수련
◇ 영적독서는 전통적으로 수도자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해온 수련 방법이다. /출처=셔터스톡
지와 관의 명상법은 기독교의 영성수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명상 형태의 하나로 영적독서(Lectio Divina)가 있는데, 여기서는 영적독서에 대해 살펴본다.
영적독서는 전통적으로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해온 방법인데 요즘은 교회에서도 자주 행하는 성경 묵상법이다.
영적독서는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저 성경을 읽는 독서(lectio), 다음에는 그 말씀을 가슴에 담고 새기는 묵상(meditatio), 다음에는 기도(oratio),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평화롭게 머무는 관상(contemplatio)이다.
나는 영적독서를 하면서 먼저 ‘예수기도’를 하기를 권장한다.
예수기도는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 속으로 ‘예수’라고 말하고, 숨을 길게 내쉬면서 ‘그리스도여’라고 말한다. 혹은 숨을 들이쉬면서 ‘예수 그리스도여’라고 말하고, 숨을 내쉬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2분, 5분, 10분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을 때까지 예수기도를 한다.
예수기도를 통해 마음 깊은 곳이 예수의 현존으로 가득 차게 되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된다.
때로는 날개 치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독수리의 기상을 느끼기도 하고, 또 때로는 비둘기 같은 온유함을 느끼기도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방식의 기도는 원자탄보다도 더 강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예수기도를 반복하여 말하는 것은 만트라의 효과가 있다. 만트라는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버린다는 뜻이니, 집중하는 대상 이외에는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아서 고도의 집중과 고요함에 머물게 한다.
그런 다음 독서할(lectio) 성경을 들고 읽기 시작한다.
어떤 단어나 구절, 혹은 문장이 마음에 와 닿을 때까지 읽는다. 그리고 마음에 와 닿는 어떤 문장이 있으면 읽기를 멈춘다.
그리고는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마치 소가 되새김을 하듯이 계속해서 그 말을 되뇌이면서 그 의미를 묵상한다(meditatio).
전통적인 방법은 마음에 새긴 말씀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내재화한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흡수하는 형태에서는 비판적이거나, 왜라는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찰할 때 어떤 틀 안에 갇히지 말고 왜라고 물으면서 넓고 깊게 의미를 고찰하라고 권고한다.
좋은 말씀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의식 속으로 내재화하면, 성인(聖人)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깨달음을 얻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라” 혹은 “항상 깨어 있으라”라는 말을 하긴 하지만 그 횟수가 매우 드물다.
그러나 나그함마디 문서에 속하는 <빌립복음> 79장 25-31절을 보면, 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려면 토양과 물과 바람과 빛이라는 네 가지 기본 요소가 필요한 것처럼, 하느님의 농사에도 믿음, 소망, 사랑, 깨달음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믿음은 우리의 토양, 우리가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소망은 물, 우리가 그것으로 양분을 얻고;
사랑은 공기, 우리가 그것으로 자라고;
깨달음은 빛, 우리가 그것으로 익게 된다.”
이것을 보면, 예수는 믿음, 소망, 사랑과 함께 깨달음을 중요한 요소로 가르쳤으며, 예수의 제자들, 특히 빌립보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아초월 심리학자인 아싸지올리는 도교적인 무위자연(無爲自然) 타입의 사람이나, 기독교적인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타입은 자기성장의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나는 무위자연 타입과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타입은 마음을 살펴 깨달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치료요법으로 치유된 사람도 깨달음의 바탕이 없으면 언제든지 다시 본능 수준의 변방으로 돌아올 수 있다.
깨달음은 왜라는 질문을 전제한다. 그래서 나는 말씀을 묵상할 때 어떤 틀 안에 갇히지 말고,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넓고 깊게 의미를 고찰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깨달음이 있으면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어떤 느낌이 일어난다. 그러면 그 느낌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기도(oratio)를 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란 복을 바라는 기복적인 기도도 아니고, 맹목적으로 하는 의미 없는 중얼거림도 아니며, 강박적이고 형식적인 기도도 아니다.
깨달음 후에 하는 기도는, 하느님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가지고 그와 대화하는 것이다. 깨달음 가운데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에게 묻고 그의 대답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영적독서의 마지막 단계는 관상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다.
위의 과정을 거친 후 의미의 성찰과 그 성찰의 결과에 응답하는 기도가 단순화되면서 하느님의 현존 안에 평안히 머무는 텅 빈 충만의 상태로 옮겨가게 되는데, 이것이 관상(contemplatio)의 상태인 것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비우고 관상의 상태로 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영성이 깊어지고 성장하게 된다.
영성의 성장은 또한 치유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