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호통재라 대한민국이여 !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법의 정신"을 통해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려면 권력이 권력을 저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입법 사법 행정의 엄격한 삼권분립을 강조했다.
특히 입법권을 쥔 정치 세력이 사법 영역까지 침범하여 사법부의 판결을 왜곡하거나 사법부의 중립성을 흔들 때,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안전은 독재와 폭정 앞에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오호통재라 / 조명래
대한민국 정치가
심각하다 못해서
치유가 불가능한
공공선의 위기로
과거엔 지역간에
지금은 진영사이
확증편향 옹고집
동물농장 같구나
♡ ----- ♡ ----- ♡
대한민국 정치판은 이념과 철학에 기반한 지향점도 거기서 파생되는 정책 경쟁은 사라진 지가 오래다. 그 자리에는 ‘당파적 적대감’만이 넘쳐나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 극단적 진영주의는 프랑스혁명, 미국 독립 선언 이후 200년 이상 구축해 온 근대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회주의와 법치주의를 허물고 있고 그 정도가 가장 심각한 나라가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이 아닐까?
진영 논리는 내 편의 과오는 철저히 덮고 감싸면서, 상대 편의 허물은 티끌조차도 태산처럼 부풀린다. 검사가 내 편 수사하면 ‘정치검찰’이 되고, 판사가 내 편 유죄를 선고하면 ‘정치판사’가 되는 나라가 되었다.
개인정보를 파헤치는 인터넷상의 인민재판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의 비리와 범죄를 단죄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검사와 판사뿐이다.
검사와 판사들이 비리 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거나(혹은 받을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들에 의해 무장해제당하고 있는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진영 간의 적대적 대결 아래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은 과거 어느때 보다 한층 강화된 특권계급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검찰과 법원의 사법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진게 진영 논리 뒤에 숨기만 하면 손쉽게 법망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영 안에서는 범죄 혐의자조차 정의로운 투사로 변신한다. 온갖 사기범죄와 파렴치한 범죄자들도 정치인들의 엄호를 받으며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었다. 정치는 이제 사법적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치외법권’ 지대가 되어버렸다.
과거에는 도덕적 윤리적 문제로도 정치인의 자격이 박탈되곤 했다. 정치인들 스스로 물러나기도 했고, 유권자들이 용납하지 않았으나 이제 도덕과 윤리는 정치인의 자격을 평가하는 기준조차 되지 못한다. 심지어 형사상 문제가 발생해도 ‘무죄 추정의 원칙’을 내세우며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버티고, 그 사이 출마도 하고 임기를 다채우고 완주한다.
유권자들도 더 이상 정치인의 기본 자격을 따지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문제가 있어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논리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도둑질, 강도질을 해도 된다는 논리가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정치인의 제1덕목은 ‘뻔뻔함’ '몰염치' '안하무인' '내로남불'이 된 세상이다. 염치를 버리고 얼굴에 철판을 까는 편이 훨씬 유리한 시대다. ‘정치검찰’, ‘정치판사’, ‘정치보복’을 떠들면 되기 때문이다.
범죄혐의자들도 정치판에 들어가서 진영주의라는 방패막이를 활용하는 게 좋은 사대가 되었다. 진영주의에 찌든 자들의 구미에 걸맞는 구호를 열심히 외치고, 상대 진영 타도를 외치고, 저주와 혐오의 언어를 더 강렬하게 내뱉으면 되는 것이다.
정당과 국회는 범죄자가 들어가도 잡지못했던 고대 삼한 시대의 ‘소도(蘇塗)’이자, 치외법권의 안식처로 전락한 것이다. 법적이나 도덕적 흠결이 있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정치를 하는 게 나은 세상이 되었다. 진영 논리에 빠져든 강성 지지자들의 심금을 울릴 강경한 발언만 열심히 뱉어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국민적 지탄을 받으며 개헌과 개혁 대상 최상단에 올랐던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이제 존폐를 걱정할 필요조차 없어진것은 진영주의의 엄호 속에 명실상부한 ‘특권’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누구도 불체포특권 폐지를 말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범죄혐의자들이 진영주의자들의 엄호를 받으며 불체포 특권을 활용했기 때문에 폐지를 논할 근거조차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불체포 특권은 진영 대결의 소중한 전략 자산이자, 지지하는 정치인을 지켜주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진영 논리에 깊이 빠져든 유권자들이 정치인의 자질을 묻는 ‘주권자’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정치인의 ‘자발적 사수대’를 자처하고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정치인에 대한 수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법 시스템 파괴는 이미 그 정점을 찍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 권력자들을 단죄하는 유일한 칼날이었던 검찰은 해체가 확정되었고, 남은 조직마저 수사권을 잃었다. 거악 척결은 이제 볼 수 없는 옛 이야기가 된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도덕적 윤리적 잣대에서 자유로움을 넘어, 사법적 단죄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과연 공수처와 경찰이 최고 권력자들을 단죄할 수 있을까?
경찰은 역사적으로 권력의 주구를 자처했을지언정 권력을 단죄한 역사가 없고, 공수처는 역량이 극히 의심스러운 조직이다. 정치인의 하청을 받아 엉뚱한 수사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고대 로마 공화정의 몰락 역시 제도적 결함이 아닌, 파벌 간의 극단적 대립에서 시작되었다. '마리우스'와 '술라',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로 갈라진 파벌들이 공화국의 법치보다 자파의 승리를 우선시했을 때, 로마의 민주적 전통은 종말을 고하고 독재체제인 제정으로 귀결되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은 민주주의의 정통성이 ‘갈등의 제도화’와 ‘견제와 균형’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정치는 갈등을 조율하기는 커녕 더 강렬하게 조장하고 적대감을 확대하여 대화 불능의 상태에 까지 이르렀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질은 완전히 실종되었고 토론은 사라지고 도처에 싸움판이 넘쳐나고 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다니엘 지블랫'의 저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지적했듯, 상대 정파를 국정의 파트너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정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불문율인 ‘상호 존중’과 ‘제도적 자제’는 붕괴한다.
우리는 지금 그 비극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입법부가 대통령에 종속되거나, 절대 다수당이 다수결을 앞세워 독주하면서 상호 양보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파괴하고 껍데기만 남겨두고 있다.
거악을 척결하던 수단은 해체되고, 삼권분립 속에서 독립성을 유지해야 할 사법부가 절대다수 권력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인류가 200년 넘게 쌓아 올린 근대 민주주의의 붕괴 현장 그 자체다.
이제 온갖 특권을 쥐어잡은 정치 권력자들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남은 견제 장치는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뿐이지만, 유권자들조차 강고한 진영 논리에 갇혀 스스로 주권자의 지위를 내팽게첬으니 정치인을 견제할 그 어떤 수단도 남지 않은 셈이다.
진영 논리의 엄호 속에 권력자의 특권은 더욱 확장될 것이며, 이들은 진영주의에 빠져든 유권자들의 엄호를 받으며 제한 없는 특권을 호사스럽게 누릴 것이다.
역사상 이토록 막강한 특권을 누리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정치인의 자격’조차 검증받지 않는 시대는 없었다. 그야말로 자질도 함량도 않되는 누구라도 정치를 할 수 있고 임명직 고위공직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심지어 범죄자조차 진영주의의 맨 앞에서 깃발을 휘두르면 영웅이 되는 시대, 정치인과 권력자들에게 그야말로 천국이 열리고 있는게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지금 이나라는 어디로 가고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