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통해 ‘통행세’ 받은 박태영 사장 ‘집유’ 이어 친족회사 신고 안한 박문덕 회장 검찰 수사
[일요신문] 하이트진로그룹(하이트진로) 오너 일가의 사법리스크 여운이 짙어지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계열사 은폐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에 이어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대두하는 기업의 ‘ESG 경영’도 오너 일가의 사법리스크로 차질이 빚어졌다.
하이트진로에서 출시하는 참이슬. 사진=연합뉴스지난 7월 28일 서울중앙지검은 박문덕 회장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지난 6월 박문덕 회장을 2017~2018년 하이트진로의 현황 자료를 제출하면서 친족이 지분 100% 보유한 5개사를 누락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또 박문덕 회장이 이 회사에 임원으로 등재된 친족 7명을 빠뜨렸다고 전했다.
5개사는 △대우컴바인 △대우패키지 △대우화학 △송정 △연암이다. 이중 대우컴바인과 대우패키지, 대우화학은 박문덕 회장의 고종사촌 손자 등이, 송정과 연암은 박문덕 회장의 조카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회사다. 또 대우컴바인과 대우패키지, 대우화학은 하이트진로 내부거래 비중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페트병 제조업체인 대우컴바인은 지난해 하이트진로 계열사와 거래를 통해 109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체 매출의 92.3% 수준. 최대주주는 박문덕 회장과 6촌 관계인 이은호 군으로 지분 70%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지분 30%는 이은호 군의 아버지이자 박문덕 회장의 5촌 조카 이동준 씨가 가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회사별 내부거래 비중은 대우컴바인이 92.3%로 가장 높고 이어 대우화학 89.0%, 대우패키지 17.4%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우컴바인, 대우패키지, 대우화학은 계열회사 직원들도 친족회사로 인지해왔던 회사로 하이트진로와의 내부거래 비중이 상당했다”고 언급했다.
5개사 중 송정과 연암도 박문덕 회장의 조카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곳이다. 박문덕 회장은 2013년 2월 송정과 연암이 계열회사에서 빠졌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이를 시정하지 않았다. 2014년엔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친족독립경영 여건을 만든 후 편입 신고하는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고 공정위 관계자는 전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제14조 제4항에 따라 대기업집단은 매년 공정위에 계열사와 주주, 친족 현황을 담은 지정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집단 관련 신고 및 자료제출의무 위반 행위에 대한 고발지침에 따라 박문덕 회장을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특별한 경제적 이득을 취한 바 없음을 소명했지만 이 부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며 "앞으로 진행될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의 오너 사법리스크는 박문덕 회장에 그치지 않는다. 박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 사장도 ‘일감몰아주기’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재판을 진행 중이다. 공정위는 2008~2017년 하이트진로 계열사 서영이앤티가 하이트진로와 삼광글라스 사이에서 맥주캔 납품계약에 끼어들어 통행세를 받는 방식으로 사익을 편취했다고 보고 2018년 2월 하이트진로와 서영이앤티, 삼광글라스에 각각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 박태영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5월 박태영 사장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검찰과 하이트진로가 모두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하이트진로 오너가의 사법리스크는 국내 주류 제조·판매 1위 업체라는 명성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꾸준히 지적된 ‘일감몰아주기’ 방식으로 하이트진로가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 덩치를 키우고 이를 통해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온다. 세무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개인회사를 키우고 이를 통해 지주사나 핵심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왼쪽)과 장남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 사진=하이트진로하이트진로는 2011년 9월 진로와 하이트맥주가 합병해 만들어졌다. 최대주주는 지주회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지분 50.86%)다. 2008년엔 하이트진로홀딩스가 하이트진로와 진로소주를 자회사로 두고 하이트진로를 통해 하이트진로산업, 진로양조, 강원물류 등 계열사를 간접 지배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일감몰아주기로 첫 제재를 받았던 서영이앤티는 박태영 사장이 2007년 인수한 산업용 냉장·냉동 장비 제조업체로 현재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 27.66%을 보유하고 있다. 서영이앤티를 통해 박태영 사장이 하이트진로홀딩스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서영이앤티의 주요 주주는 박태영 사장(58.44%), 박문덕 회장 차남인 박재홍 부사장(21.62%), 박문덕 회장(14.69%), 박 회장의 형 박문효 하이트진로산업 회장(5.16%)이다. 하이트진로 오너 일가가 99.9% 지분을 가졌다.
박태영 사장과 박재홍 부사장은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서영이앤티 지분을 통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박태영 사장이 박문덕 회장의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을 물려받으려면 막대한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야 한다.
오너 일가의 사법리스크로 하이트진로의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경영'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엔 기업이 이윤을 남기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지금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 시대”라며 “하이트진로처럼 100년 가까이 된 전통 있는 기업이라면 국민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따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감몰아주기, 친족 회사 누락 등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회사의 공정하지 못한 기업 관행이 문제가 되면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금 소비자들은 ‘공정’에 대해 민감하다”며 “하이트진로 오너 일가의 사법리스크가 참이슬, 테라 등 하이트진로 제품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출처 -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08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