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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야치(家鷄野雉)
집에 있는 닭을 싫어하고 들에 있는 꿩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①집안에 있는 좋은 것을 버리고 나쁜 것을 탐냄. ②좋은 필적(筆跡)을 버리고 나쁜 필적을 좋아함. ③정처(正妻)를 버리고 첩(妾)을 사랑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家 : 집 가(宀/7)
鷄 : 닭 계(鳥/10)
野 : 들 야(里/4)
雉 : 꿩 치(隹/5)
(유의어)
가계야무(家鷄野鵡)
출전 : 태평어람(太平御覽) 진중흥서(晉中興書)
이 성어는 집의 닭을 미워하고 들의 꿩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①아내를 소박(疏薄)하고 첩(妾)을 좋아함. ②좋은 필적(筆跡)을 버리고 나쁜 필적(筆跡)을 좋아함. ③흔한 것을 멀리하고 언제나 새롭고 진귀(珍貴)한 것을 중(重)히 여김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성어는 집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귀하게 여긴다는 소리인데, 자기 것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것만 귀하게 여기는 것을 빗댄 말이다. 심한 말로 자식을 키워주고 부모를 모셔주는 조강지처를 소박(疏薄)하고 다른 엉뚱한 여자를 좋아하는 바보를 질책하는 소리기도 하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구일팔(卷九一八)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나오는 구절이다.
庾翼 書 少時與右軍齊名 右軍後進 庾猶不分 在荊州與都下人書云
유익 서 소시여우군제명 우군후진 유유불분 재형주여도하인서운
小兒輩賤家鷄愛野雉 皆學逸少書 須吾下當比之
소아배천가계애야치 개학일소서 수오하당비지
중국 진(晉)나라의 유익(庾翼)은 서법(書法)이 왕희지(王羲之)와 같다는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유익의 집안 사람들이 자기의 서법은 배울 생각을 하지 않고 모두 당시 유행하던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자 어떤 사람에게 편지하기를, "아이들이 집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사랑하여 모두 왕희지의 서법만 배우니, 나를 그만 못하게 여긴 것이오" 하였다.
이때부터 가계야치(家鷄野雉)는 집안에서 가르는 닭과 산의 꿩이란 뜻으로, 후에 자기 집의 것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집 것만 좋게 여긴다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우리 속담에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친다는 표현이 있다. 이 두 가지 격언이 주는 교훈은 숲 속에 있는 열 마리의 새에 욕심을 부리다 보면 손 안에 있는 한마리의 새마저 잃게 된다는 것이다.
가계야치(家鷄野雉)란 厭家鷄 愛野雉(염가계 애야치)의 준말로서 직역하면 집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귀히 여긴다는 말인데 자기 것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것만 좋게 여기는 풍조를 꼬집어 비유한 말인데, 아내를 소박(素朴)하고 첩을 좋아하는 뭇사내들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참 어리석어서 항상 옆에 있으면 그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리기 쉽다. 아내도, 자식도, 벗들도, 그리고 피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귀한 직업도 별볼일 없는 것처럼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을 이따금 본다.
중국 한(漢)나라가 망하고 수(隋)나라가 들어서기 전 약 370년간을 위진 남북조 또는 5호16국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시대는 우리나라로 치면 통일신라 전 삼국시대에 속한다. 고구려에 불교를 전래한 전진의 순도,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동진의 마라난타 등이 활동했던 시대가 바로 이 남북조 시대이다.
남조중 진(晉)나라에 귀거래사로 유명한 명문장가 도연명과 더불어 왕희지라는 최고의 명필이 있었다. 그의 서체에 매료된 사람들이 앞 다투어 그의 필체를 배우려고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그런데 유익이라는 관리도 왕희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명필이었다. 붓글씨를 아는 사람들 중에는 왕희지보다 오히려 유익을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작 유익의 자녀들과 친척들은 유익보다도 왕희지의 서체를 배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유익은 답답한 마음으로 집 안의 닭은 쳐다보지도 않고, 들판의 꿩 만 귀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厭家鷄 愛野雉(염가계 애야치)라는 말을 하며 탄식했다는 것이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긴다. 남의 손에 있는 보물은 내 손 안에 있는 고물만도 못하다고 하지 않던가. 진실로 내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인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사람인 소식(蘇軾, 소동파)은 그의 薄薄酒(박박주)라는 詩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薄薄酒 勝茶湯(박박주 승다탕)
粗粗布 勝無裳(조조포 승무상)
醜妻惡妾 勝空房(추처악첩 승공방)
싱거운 술일망정 차만도 못할소냐
거친 베옷일망정 알몸보다 낫거니
못난처 못된 첩도 독수공방보다 나으리
그 소동파가 오늘 또다시 가계야치의 어리석음을 그의 류씨이외생구필적(柳氏二外甥求筆跡)이라는 詩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 甥(생)은 생질(甥姪)을 말한다. 즉 '조카'를 말하는 것이다. 柳氏二外甥求筆跡은 '유씨 두 조카가 나의 필적을 구하다'는 의미이다.
退筆如山未足珍(퇴필여산미족진)
讀書萬卷始通神(독서만권시통신)
君家自有元和脚(군가자유원화각)
莫厭家鷄更問人(막염가계갱문인)
몽당 붓이 산처럼 쌓여도 그리 대단할 거 없고
책 일만권을 읽어야 비로소 신명이 통하는 걸세.
그대 집안엔 대대로 전해오는 필법이 있으니
그 필법을 버리고 다시 남에게 묻지 마시게.
이 시는 희녕 7년(1074) 1월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소동파의 사촌 여동생의 집에서 술잔치가 베풀어졌는데, 그 여동생의 아들 즉 두 조카인 굉과 벽이 소동파에게 시를 글씨로 써주기를 청하였다. 당대에도 소동파는 서예에도 뛰어난 분이었기 때문에 유굉 형제가 글씨를 받고자 한 것이다. 이 때에 소동파가 조카들에게 두 수의 시를 지어 글씨로 써 주었는데, 위의 시는 그중 첫 번째 것이다.
退筆(퇴필)이란 독필(禿筆)과 같은 몽당 붓을 뜻한다. 지영(智永)이라는 스님이 영흔사(永欣寺)에서 글씨공부를 할 때에 글씨를 쓰고 닳은 몽당 붓이 열 항아리나 되었고, 항아리마다 수천 개씩의 몽당 붓이 들어 있었는데, 나중에 이것들을 땅에 묻고 퇴필총(退筆塚) 즉, 몽당 붓 무덤이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未足珍(미족진)은 진기할 게 없음. 보배로울 게 못됨. 通神(통신)은 신명에 통함. 도통한 경지에 들어감. 君家(군가)는 그대의 집안. 自有(자유)는 저절로 있음. 본디 있음을 말한다.
元和脚(원화각)은 유굉 형제의 조상 가운데 유공권(柳公權)이라는 분이 있는데 당(唐)나라 원화년간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서예로 이름을 떨쳤다. 각(脚)은 날각(捺脚)의 의미로 필법을 말한다. 고로 후대에 원화각은 유공권의 필법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更問人(갱문인)은 다시 남에게 물음을 말한다.
글씨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니고, 독서를 해서 일만 권쯤은 읽어야 도통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소동파는 조카들에게 서예에 지나치게 관심 갖지 말고 오히려 책읽기에 치중하라고 충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서예에 신경을 쓸량이면 그대 집안에 훌륭한 필법이 집안 전통으로 전해져 오는데 그것을 익히면 그만이지, 굳이 다른 사람, 즉 나에게 필법을 배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소위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전에도 소동파는 재삼 가계야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청계산 북쪽 자락 옥녀봉 아래에 추사 김정희가 함경도 북청 유배에서 풀려나 소위 해배후 1856년 10월 10일 서거하기까지 그의 말년 4년간을 보내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별서(別墅)인 과지초당(瓜地草堂)이 있다. 과천 추사(秋史) 박물관 옆에 고증을 거쳐 복원하였는데, 그 초당(草堂) 기둥에 다음과 같은 대련(對聯)이 걸려있다.
大烹豆腐瓜薑菜(대팽두부과강채)
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
최상의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과 손자가 함께하는 자리이다.
위의 글은 추사가 71세에 쓴 대련으로 큰 글씨 가에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직접 설명하고 있다. 그 대강의 뜻은 “소탈하게 시골 사는 노인의 심정으로 권세와 재물이 아무리 많고 산해진미의 음식을 호사스럽게 누리는 것보다도, 소박한 밥상에 가족들이 화목하고 평안하게 둘러 앉아 먹으며 담박하고 간결하게 사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다”라는 것이다.
즉 가계야치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중국 속담에 새는 죽을 때 슬피 울고 사람은 죽을 때 착한 말을 한다고 하는데, 천하의 석학 추사는 돌아가시는 그해에 위와 같은 말을 대련으로 써서 기둥에 걸었던 것이다.
가계야치(家鷄野雉)
너의 강점을 찾아라
학교에서 집에 오자마자 아버지 방에 불쑥 들어가 읍내 학교로 전학시켜 달라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방 안의 손님들이 더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었다. 뒤따라 들어온 어머니가 끌 듯이 데리고 나왔다.
며칠 지나서야 아버지가 불러 전학 가려는 이유를 물었다. 선생님이 수업 중에 "읍내 학교 애들은 이 정도 문제는 다 푼다. 너희들 실력으로는 읍내 중학교 못 간다"라고 했다며 말씀드렸다.
그날 아버지는 즉답하지 않은 채 석수장이 얘기를 들려줬다. 바로 얼마 전에 교과서에 나와 배운 얘기여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가 그 동화를 알고 있는 게 도리어 신기했다. 동화는 이랬다.
석수장이가 뙤약볕 아래서 정과 망치로 바위를 쪼고 있을 때 저 멀리 화려한 마차 행렬이 지나고 있었다. 임금님 행차였다. 한없이 부러웠던 그는 혼잣말로 "나도 임금이 되어보았으면…"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어디선가 "이제부터 너는 임금이 되어라"라는 큰소리와 함께 석수장이는 임금이 되어 황금빛 깃발이 펄럭이는 대열의 한 가운데에서 마차를 타고 갔다.
무더운 여름날이라 땀이 흘러내렸다. 하늘을 보니 이글거리는 태양이 불타고 있었다. 임금보다 태양이 더 나을 것 같아 "나도 태양이 되었으면…" 하고 중얼대자 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금방 작열하는 태양이 되었다. 두루 세상을 구경하고 빛을 비추니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얼마쯤 지나 난데없는 구름이 몰려와 시야를 가려버렸다. 고개를 돌려봐도 보이지 않자 "나도 구름이 되었으면…" 하고 말하자 순식간에 이번엔 구름으로 변했다. 거침없이 나다니고 구경하며 비를 마구 뿌려댔다. 심술이 나면 잔칫집에도 초상집에도 비를 퍼부어 댔다. 산을 하나 없애려고 며칠을 두고 밤새도록 비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바위산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바위가 부러웠다. "바위가 되었으면…" 하고 말하자 바위가 된 그는 걱정 없이 쉬고 있을 때 석수장이가 정과 망치를 들고 다가와 얼굴을 쪼기 시작했다.
얼굴이 깨져나가자 석수장이가 더 좋아 보였다. "나도 석수장이가 되었으면…" 하고 빌었다. 이내 그는 석수장이가 되어 옛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글이지만, 지금 되뇌어도 의미 깊은 얘기다. 아버지는 "동경은 맹목만 낳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날 전학 얘기는 꺼내지 않고 "너는 재주 많은 아이다. 너도 선생님도 그걸 모른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너의 강점을 찾아라"라고 했다.
이어 "네 9대 할아버지는 한양을 떠나 충주로 왔다. 다시 제천으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동네까지 450여 년을 더 나은 땅을 찾아 이주했다. 이 땅은 너에게 이르기까지 15대 할아버지들이 모두 치열하게 고민해 찾은 자리다. 네가 다니는 그 학교 나와도 읍내 중학교 진학하고 서울로도 유학 갔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가계야치(家鷄野雉)'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했으나 그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있는 닭보다 들에 있는 꿩을 좋아한다'라는 말이다. 가까이 있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멀리 있는 드문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중국 동진(東晉)의 정치가 유익(庾翼)은 왕희지(王羲之)와 명성을 같이 할 만한 명필가다. 집안사람들 조차 왕희지 필법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자 그가 한 말에서 이 성어는 유래했다. "아이들이 집안의 닭은 하찮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사랑하여 모두 왕희지의 서법만 배우고 있으니 이는 나를 그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출전 태평어람(太平御覽) 진중흥서(晉中興書)이다..
그 뒤 선생님은 읍내 학생들과 비교하는 말을 더는 하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치른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해 진학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아버지가 다시 저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네가 읍내 학교로 전학시켜 달라고 했을 때 설득하기가 가장 어려웠다"라고 술회한 아버지는 그때도 얘기해줬다고 했으나 기억나지 않았다. "속담처럼 마당에서는 인물 안 난다. 네 말에 확신을 얻어 서울 진학과 우리집 이주를 결심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누구나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다만 숨어있는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너 자신을 믿으라"고 강조했다.
긍정적인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높으면 목표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장점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것이 자신감을 키우는 첫걸음이다. 자신의 강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중요한 성품이다. 손주에게도 꼭 물려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가계야치(家鷄野雉)
자기 집의 것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집의 것만 좋게 여긴다. 집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귀하게 여긴다. 집안에 있는 좋은 것을 버리고 나쁜 것을 탐낸다. 좋은 필적(筆跡)을 버리고 나쁜 필적을 좋아한다. 정처(正妻)를 버리고 첩(妾)을 사랑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진나라에 왕희지의 서법과 견줄 만하다는 장수 유익이라는 명필이 있었다. 그의 서법을 배우고자 중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가족들은 당시 유행하던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음이 상한 유익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이들이 집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귀하게 여겨 모두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고 있으니, 한탄스럽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후 이 말은 집안의 좋은 가풍을 버리고 밖의 나쁜 유행을 따르거나, 아내를 버리고 첩을 사랑할 때 비유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와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친다'는 등 유사한 의미가 있다. 영어 속담에는 '내 손의 새 한 마리가 숲 속의 두 마리보다 낫다(A bird in the hand is worth two in the bush).' 즉 남의 손에 있는 보물은 내 손 안에 있는 고물만도 못하다는 의미다.
이 고사성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주변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을 잘 알아보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늘 선택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하지만 때로는 수레바퀴가 잘 굴러가려면 두 바퀴로 가야 할 때도 있다.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멀리 있는 것만을 신비롭고 귀하게 여기는 인간의 마음을 꼬집는 말이 아닌가 싶다. 가정이 화목해야 하는 일 또한 대성할 수 있는 법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가계야치(家鷄野雉)와 왕희지(王羲之)
흔히 두보는 시성(詩聖), 왕희지(王羲之)는 서성(書聖)으로 칭해진다. 둘 다 으뜸에 대한 찬사다. 문득 궁금해진다. 왕희지의 서예는 어느 정도의 뛰어난 경지에 이른 것일까.
가계야치(家鷄野雉)의 앞의 두 글자 '가계(家鷄)'는 '집에서 키우는 닭'이란 뜻이다. '야치(野雉)'는 '들판이나 산에 서식하는 꿩'이란 뜻이다. 본래 염가계(厭家鷄), 애야치(愛野雉), 이 6글자에서 동사가 탈락되고 차츰 4글자로 정착됐다.
따라서 가계야치(家鷄野雉)는 '집안의 닭은 홀대하고, 들판의 꿩을 좋아한다'는 의미다. 이미 누리고 있거나 가진 것을 가벼이 여기고, 타인의 무언가를 부러워하거나 탐내는 심리를 꼬집는 상황에서 주로 쓰인다. 서예 분야에서 가히 최고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는 왕희지와 관련된 한 일화에도 이 4글자가 등장한다.
왕희지는 평생 전혀 궁핍하지 않았다. 왕희지 가문은 동진(東晉) 왕조 수립에 큰 공(功)이 있었다. 쟁쟁한 공신 가문 출신이라는 이 배경은 그가 관료로 진출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서예에 꾸준히 집중하여 마침내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는 든든한 경제적 배경이었다.
왕희지의 첫 스승은 여류 명필 위(衛)부인이었다. 미망인이었던 위부인은 과묵한 아동 왕희지에게 정갈한 서예의 기초를 확실히 다져주었다. 성년기가 되자, 왕희지는 첫 스승 위부인을 떠나 각지를 유람하며, 스승없이 홀로 서예 학습을 계속했다. 특히 한(漢)나라와 위(魏)나라의 비문(碑文)을 통해 자신의 서예 안목을 키웠다.
왕희지는 살아 생전에 이미 명필로 이름이 높았다. 당대 중국의 대부분 지식인이 왕희지의 글자를 수집하기 위해 경쟁했다. 글씨를 처음 접하는 학동들도 그의 필체를 모사하며 학습할 정도였다.
하루는 장수(將帥) 유익(庾翼)이 자기 집안의 자손들이 왕희지의 글씨를 구해 학습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가계야치(家鷄野雉)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가족들에게서 느낀 서운한 감정을 지인에게 털어놓았다.
왕희지가 일찌감치 관직을 사직하고 서예에 몰두했기에 자신보다 조금 더 이름이 알려졌을 뿐이라고 치부하던 중이었다. 여전히 중국 전역에서 유익 자신의 서법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기도 하던 터라 더 마음이 상했다.
그럼 왕희지의 집안 자손들은 누구의 필체를 주로 학습했을까. 왕희지의 부인은 서예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 왕희지의 필체와 다른 모방 필체를 알아볼 정도의 눈은 갖고 있었다.
왕희지와 그녀 사이엔 왕헌지(王獻之)라는 총명한 아들이 있었다. 학동 시절의 왕헌지가 하루는 실수로 점획(點劃) 하나를 빠뜨려 '태(太)'를 '대(大)'로 잘못 적었다. 이를 발견한 왕희지가 가운데에 점을 찍어 '태'로 수정해 주고는 '모친께도 보여주라'고 말했다.
모친이 왕헌지에게 말한다. "기특하다, 내 아들. 세 항아리 물을 쓸 정도로 연습하더니 그래도 이젠 네가 '태'의 '점' 하나는 아버지와 비슷해졌구나." 모친의 눈썰미도 대단하지만, 그가 부친의 필체를 그리 열심히 연습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성년이 된 이후, 왕헌지 역시 부친의 대(代)를 이어 차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그는 부친 왕희지에게 반듯한 해서(楷書)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초서(草書)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자주 조언했다. 만년에 왕희지는 반듯한 해서(楷書)와 흘림체 초서(草書), 그리고 그 중간 형태인 행서(行書), 이 삼체(三體) 모두에서 높은 경지의 작품 세계에 도달했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한·중·일 3국의 서구 문화 과잉 모방도 필시 가계야치(家鷄野雉)의 한 연장선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또한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타고난 본능 가운데 하나다. '더 나은 것'과 '더 새로운 것'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낳은 지극히 보편적인 문화 현상일 수 있다.
이 본능 덕에 늘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때론 호기심의 깊이도 중요하다. 한 예로, 우리 고유문화 가운데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는 ‘새로운 것’이 적지 않다.
▶️ 家(집 가, 여자 고)는 ❶회의문자로 宊(가)와 동자(同字)이고, 姑(시어미 고)와 통한다.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안에서 돼지(豕)를 기른다는 뜻을 합(合)하여 집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家자는 '집'이나 '가족'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家자는 宀(집 면)자와 豕(돼지 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예로부터 소나 돼지와 같은 가축은 집안의 귀중한 재산이었다. 그러니 도둑이 훔쳐가지 못하도록 곁에 두는 것이 가장 안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돼지우리를 반지하에 두고 그 위로는 사람이 함께 사는 특이한 구조의 집을 지었었다. 아직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중국의 일부 소수민족은 집안에 돼지를 기르고 있다. 家자는 그러한 가옥의 형태가 반영된 글자이다. 그래서 家(가)는 (1)일부 한자어 명사(名詞) 다음에 붙어 그 방면의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나 또는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2)어떤 일에 능하거나 또는 지식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3)어떤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4)성 다음에 붙어, 그 집안을 나타내는 말 (5)호적상, 한 가(家)로 등록된 친족의 단체 등의 뜻으로 ①집 ②자기(自己) 집 ③가족(家族) ④집안 ⑤문벌(門閥) ⑥지체(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⑦조정 ⑧도성(都城) ⑨전문가 ⑩정통한 사람 ⑪용한이 ⑫학자(學者) ⑬학파(學派) ⑭남편(男便) ⑮아내 ⑯마나님(나이가 많은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 ⑰살림살이 ⑱집을 장만하여 살다 그리고 ⓐ여자(女子)(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집 당(堂), 집 우(宇), 집 택(宅), 집 실(室), 집 궁(宮) 등이 있다. 용례로는 부부를 기초로 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을 가족(家族), 한 가족으로서의 집안을 가정(家庭), 집안 살림에 관한 일을 가사(家事), 집에서 나가 돌아오지 않음을 가출(家出),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집안의 보물을 가보(家寶), 집안 식구를 가구(家口), 남에게 대하여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을 가친(家親), 남에게 자기 아들을 이르는 말을 가아(家兒), 집안 살림의 수입과 지출의 상태를 가계(家計), 한 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사람이 들어가 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가옥(家屋), 집안이나 문중을 가문(家門), 집안의 어른을 가장(家長), 집안 어른이 그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을 가훈(家訓),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에게 길들여져 집에서 기르는 짐승을 가축(家畜), 집안 살림에 관한 일을 가사(家事), 한 집안의 대대로 이어 온 계통을 가계(家系),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집마다 또는 모든 집을 일컫는 말을 가가호호(家家戶戶), 빈한한 집안이라서 아무것도 없고 네 벽만 서 있다는 뜻으로 살림이 심히 구차함을 이르는 말을 가도벽립(家徒壁立), 집안이 네 벽 뿐이라는 뜻으로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가도사벽(家徒四壁), 석은 한 항아리고 담은 두 항아리의 뜻으로 집에 조금도 없다는 말로 집에 재물의 여유가 조금도 없음을 이르는 말을 가무담석(家無擔石), 한 집안에 주인이 둘이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군신의 다름을 이르는 말을 가무이주(家無二主), 집에서 먹는 평소의 식사라는 뜻으로 일상사나 당연지사를 이르는 말을 가상다반(家常茶飯), 타국이나 타향에 살 때는 고향 가족의 편지가 더없이 반갑고 그 소식의 값이 황금 만 냥보다 더 소중하다는 말을 가서만금(家書萬金), 집집마다 알려주어 알아듣게 한다는 뜻으로 누구나 다 아는 것을 이르는 말을 가유호효(家喩戶曉), 집의 닭을 미워하고 들의 물오리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일상 흔한 것을 피하고 새로운 것 진기한 것을 존중함을 비유하는 말을 가계야목(家鷄野鶩), 집의 닭을 미워하고 들의 꿩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아내를 소박하고 첩을 좋아함 또는 흔한 것을 멀리하고 언제나 새롭고 진귀한 것을 중히 여김을 이르는 말을 가계야치(家鷄野雉), 집집마다 살림이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해 살기 좋음을 이르는 말을 가급인족(家給人足), 집안이 가난하여 혼백이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뜻을 얻지 못하고 실의에 빠짐을 이르는 말을 가빈낙탁(家貧落魄),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었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은 벼슬자리라도 얻어서 어버이를 봉양해야 한다는 말을 가빈친로(家貧親老) 등에 쓰인다.
▶️ 鷄(닭 계)는 ❶형성문자로 鶏(계)는 통자(通字), 鸡(계)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조(鳥;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奚(해, 계)로 이루어졌다. 새벽을 알리는 새(鳥)의 뜻이 합하였으며 닭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鷄자는 '닭'을 뜻하는 글자이다. 鷄자는 奚(어찌 해)자와 鳥(새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奚자는 상투를 손으로 잡은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닭 볏으로 응용되었다. 사실 갑골문에 나온 鷄자는 좀 더 직관적이었다. 닭 볏과 다리, 꽁지까지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도 이것이 닭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소전으로 넘어오면서 닭의 볏은 奚자가 대신하게 되었고 隹(새 추)자가 더해지면서 볏이 있는 새를 뜻하는 雞(닭 계)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해서에서는 隹자가 鳥자가 바뀌면서 지금은 鷄자가 ‘닭’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鷄(계)는 ①닭(꿩과의 새) ②화계(花鷄: 되새. 되샛과의 겨울 철새) ③폐백(幣帛)의 하나 ④성(姓)의 하나 ⑤현(縣)의 이름 ⑥산(山)의 이름 ⑦물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닭의 알 달걀을 계란(鷄卵), 닭의 울음을 계명(鷄鳴), 닭고기를 계육(鷄肉), 닭을 가두어 두는 장을 계사(鷄舍), 닭과 개를 계구(鷄狗), 닭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계탕(鷄湯), 닭의 갈빗대라는 뜻의 계륵(鷄肋), 닭의 주둥이라는 뜻의 계구(鷄口),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을 계간(鷄姦), 밤눈이 어두워 밤에 사물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계맹(鷄盲), 닭을 잡아서 그 뼈나 눈을 보고 치는 점을 계복(鷄卜), 닭이 새벽을 알림을 계신(鷄晨), 닭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계탕(鷄湯), 닭의 갈빗대라는 뜻으로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을 계륵(鷄肋), 닭의 주둥이라는 뜻으로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말을 계구(鷄口), 닭의 무리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의 무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계군(鷄群), 독서하는 방을 계창(鷄窓), 닭을 기르는 일을 양계(養鷄), 집에서 기르는 닭을 가계(家鷄), 닭을 잡아서 죽임을 도계(屠鷄), 싸움 닭을 투계(鬪鷄), 썩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하여 내장을 빼고 털을 뽑고 얼린 닭을 동계(凍鷄), 묵은 닭을 노계(老鷄), 때 아니게 낮에 우는 닭을 오계(午鷄), 어미 닭을 모계(母鷄), 털이 흰 닭을 백계(白鷄),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계군일학(鷄群一鶴), 닭의 무리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란 뜻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일컫는 말을 계군고학(鷄群孤鶴),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속담으로 복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기회를 만나도 덕을 못 본다는 말을 계란유골(鷄卵有骨), 동쪽 닭과 서쪽 개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뜻으로 닭 우는 소리와 개가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하여 인가가 잇대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계견상문(鷄犬相聞),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는 뜻으로 인가나 촌락이 잇대어 있다는 말을 계명구폐(鷄鳴狗吠),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계명구도(鷄鳴狗盜), 닭 울음소리를 묘하게 잘 흉내 내는 식객을 일컫는 말을 계명지객(鷄鳴之客),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라는 뜻으로 큰 단체의 말석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말을 계구우후(鷄口牛後), 닭 울음의 도움이란 뜻으로 어진 아내의 내조를 일컫는 말을 계명지조(鷄鳴之助), 살갗은 닭의 가죽처럼 야위고 머리칼은 학의 털처럼 희다는 뜻으로 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계피학발(鷄皮鶴髮), 닭과 돼지가 한데 어울린다는 뜻으로 같은 고향 사람끼리 서로 친목을 도모함을 일컫는 말을 계돈동사(鷄豚同社), 닭과 집오리가 먹이를 서로 먼저 먹으려고 다툰다는 뜻으로 여염의 사람들이 서로 다툼을 일컫는 말을 계목쟁식(鷄鶩爭食), 닭 대가리는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남의 위에 서야지 남의 꽁무니에 따라 다녀서는 안됨을 일컫는 말을 계시우종(鷄尸牛從), 몸이 쇠약해서 침상에 기대어 몸을 지탱함을 일컫는 말을 계골지상(鷄骨之床), 다른 사람의 권세에 빌붙어 승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계견승천(鷄犬昇天), 맨드라미 열매의 과육이라는 뜻으로 여성의 젖가슴을 일컫는 말을 계두지육(鷄頭之肉) 등에 쓰인다.
▶️ 野(들 야, 변두리 여, 농막 서)는 ❶형성문자로 埜(야)는 고자(古字), 墅(야)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마을 리(里; 마을)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予(여, 야)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予(여, 야)는 물건과 물건을 강제로 떼어놓는 일이나 침착하여 초조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里(리)는 사람이 사는 곳, 野(야)는 마을에서 떨어진 곳, 넓고 넓은 곳을 나타낸다. 도시의 언저리를 郊(교)라고 하고 郊(교)의 언저리를 野(야)라 한다. 옛 글자체는 숲(林)과 흙(土)을 합(合)한 것(埜)이며 나무가 난 곳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野자는 '들판'이나 '교외'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野자는 里(마을 리)자와 予(나 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予자는 실을 감는 '실패'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여, 야'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런데 野자의 갑골문을 보면 土(흙 토)자와 林(수풀 림)자가 결합한 埜(들 야)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흙과 나무가 많은 곳을 표현한 것으로 숲이 우거져 있는 '들판'이나 '교외'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소전에서부터는 里자가 교외 지역의 의미를 대신하게 되었고 予자는 발음역할을 하게 되면서 지금의 野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野(야, 여, 서)는 먼저 들 야의 경우는 ①들, 들판(야) ②민간(民間: 일반 백성들 사이)(야) ③문밖, 마을, 시골(야) ④성(城) 밖, 교외(郊外)(야) ⑤구역(區域), 범위(範圍)(야) ⑥별자리(야) ⑦야생(野生)의(야) ⑧질박하다(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야) ⑨촌스럽다, 꾸밈새가 없다(야) ⑩길들지 않다(야) ⑪서투르다, 익숙하지 못하다(야) ⑫거칠다(야) ⑬등한하다(무엇에 관심이 없거나 소홀하다), 사리에 어둡다(야) ⑭비천하다(야) ⑮미개하다(야) ⑯방종하다, 자유분방하다(야) 그리고 변두리 여의 경우는 ⓐ변두리, 교외(郊外)(여) 그리고 농막 서의 경우는 ㉠농막(農幕: 농사짓는 데 편리하도록 논밭 근처에 간단하게 지은 집)(서)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침 조(朝), 더불 여(與)이다. 용례로는 지능이 미개하고 문화가 극히 뒤떨어진 상태를 야만(野蠻), 들에서 나는 나물을 야채(野菜),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을 야망(野望), 산이나 들에 저절로 나서 자람을 야생(野生), 마을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들을 야외(野外), 들 가까이에 있는 나지막한 산을 야산(野山), 야망을 이루려는 마음을 야심(野心), 농사를 짓는 사람을 야민(野民), 야심을 품은 욕심을 야욕(野慾), 들에서 하는 싸움을 야전(野戰), 성질이나 행동이 야하고 비루함을 야비(野卑), 좋지 못한 목적 밑에 서로 어울림을 야합(野合), 들에 친 진영 또는 거기서 하는 생활을 야영(野營), 교양이 없고 거친 사람을 야인(野人), 어떤 갈래에 달린 범위나 부문을 분야(分野), 여당과 야당을 여야(與野), 눈의 보는 힘이 미치는 범위를 시야(視野), 지표면이 평평한 넓은 들을 평야(平野), 아득하게 너른 벌판을 광야(廣野), 나무가 무성한 들을 임야(林野), 초야에 파묻혀 있음을 재야(在野), 두더지의 혼인이라는 뜻으로 허영심 또는 동류는 동류끼리 잘 어울림을 비유하는 말을 야서혼(野鼠婚), 현명한 사람이 모두 등용되어 민간에 인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야무유현(野無遺賢), 아무렇게나 지은 시골집을 일컫는 말을 야옥촌사(野屋村舍), 집의 닭을 미워하고 들의 꿩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아내를 소박하고 첩을 좋아함 또는 흔한 것을 멀리하고 언제나 새롭고 진귀한 것을 중히 여김을 일컫는 말을 가계야치(家鷄野雉), 집의 닭을 미워하고 들의 물오리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일상 흔한 것을 피하고 새로운 것 진기한 것을 존중함을 비유하는 말을 가계야목(家鷄野鶩), 성벽을 견고히 지키고 들의 작물을 거두거나 가옥을 철거하여 쳐들어오는 적에게 양식이나 쉴 곳의 편의를 주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우세한 적에 대한 작전 수단을 이르는 말을 견벽청야(堅壁淸野), 외로운 구름이요 들의 학이라는 뜻으로 속세를 떠난 은사를 가리키는 말을 고운야학(孤雲野鶴), 산꿩과 들오리라는 뜻으로 성미가 사납고 제 마음대로만 하려고 해 다잡을 수 없는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산계야목(山鷄野鶩), 이리 새끼는 사람이 길들이려고 해도 본래의 야성 때문에 좀체로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말로서 흉폭한 사람이나 신의가 없는 사람은 쉽게 교화시킬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낭자야심(狼子野心), 산 속에 자리 잡은 넓고 편평한 땅을 일컫는 말을 산중개야(山中開野), 두 다리의 여우라는 뜻으로 마음이 음흉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양각야호(兩脚野狐), 기름진 들판이 천 리에 달한다는 뜻으로 끝없이 넓은 기름진 들판을 이르는 말을 옥야천리(沃野千里), 산과 들에 가득히 뒤덮임을 일컫는 말을 만산편야(滿山遍野), 끝이 없이 넓은 들을 일컫는 말을 무변대야(無邊大野), 한가로운 구름 아래 노니는 들의 학이란 뜻으로 벼슬과 어지러운 세상을 버리고 강호에 묻혀 사는 사람을 나타냄 또는 한가로운 생활로 유유자적하는 경지를 이르는 말을 한운야학(閑雲野鶴) 등에 쓰인다.
▶️ 雉(꿩 치, 짐승 이름 사, 땅 이름 이, 키 작을 개)는 형성문자로 垁(치)는 고자(古字), 鴙(치), 鴩(치)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 추(隹;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矢(시, 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雉(치, 사, 이, 개)는 ①꿩(꿩과의 새) ②담, 장원(牆垣) ③넓이의 단위 ④쇠고삐(소의 굴레에 매어 끄는 줄) ⑤주사위의 눈 ⑥물건이 뒤섞인 모양 ⑦풀을 베다 ⑧목매다 ⑨다스리다 ⑩평정하다 ⑪벌여놓다 그리고 ⓐ짐승의 이름(사) 그리고 ㉠땅의 이름(이) 그리고 ㊀키가 작다(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꿩 적(翟)이다. 용례로는 꿩과 토끼를 치토(雉兔), 꿩의 알을 치란(雉卵), 꿩의 꽁지 깃을 치미(雉尾), 꿩과 생선을 치선(雉鮮), 꿩을 수 놓아 만든 휘장을 치장(雉帳), 꿩의 고기로 만든 산적을 치적(雉炙), 꿩과 닭을 치계(雉鷄), 꿩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치탕(雉湯), 생치구이로 저민 꿩고기를 여러가지 재료로 양념하고 주물러서 구운 반찬을 치구(雉灸), 꿩김치로 꿩을 삶은 물과 동치미 국물을 똑같이 타고 삶은 꿩고기를 넣은 음식을 치저(雉菹), 새치로 젊은 사람의 머리에 섞여 난 흰 털을 사치(射雉), 말린 꿩의 고기를 건치(乾雉), 몸의 빛깔이 흰 꿩을 백치(白雉), 말리거나 익히지 아니한 성한 꿩을 생치(生雉), 새해 선물로 보내는 꿩을 세치(歲雉), 수꿩으로 장끼를 웅치(雄雉), 봄 꿩을 춘치(春雉), 집의 닭을 미워하고 들의 꿩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아내를 소박하고 첩을 좋아함 또는 좋은 필적을 버리고 나쁜 필적을 좋아함을 가계야치(家鷄野雉), 봄철의 꿩이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제 허물을 스스로 드러내어 화를 자초함을 이르는 말을 춘치자명(春雉自鳴), 토끼 그물에 꿩이 걸린다는 뜻으로 소인은 계교로 좌에서 벗어나고 군자가 도리어 화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토라치리(兔羅雉罹), 개에게 물린 꿩이라는 뜻으로 아무런 이유없이 뜻밖의 화를 입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견색지치(犬咋之雉), 꿩 먹고 알 먹는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하여 두 가지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식치식란(食雉食卵)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