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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레터 2/호주濠洲 아들네 방문기]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팬데믹, 망할 놈의 코비드 19 때문에 가로막힌 우리 가족상봉이 4년만에 이루어졌다. 물론 때때로 무료라는 영상통화를 할 수 있으니 얼굴 잊어버릴 일은 없었지만, 실제 대면對面과 스킨십을 못하니 ‘죽을 맛’이었다. 국경과 도시 봉쇄가 풀렸다해도 출입국 절차는 너무 복잡해, 나같은 ‘아날로그 인간’은 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핸드폰 하나로 다 되는 세상이 나는 왜 싫을 뿐아니라 어려워서도 외면만 하고 싶은 걸까? 게다가 귀국하기 4시간 전에 멜버른공항에서 PCR 검사를 해야 하고, 검사결과 양성으로 판명되면 열흘간 입국도 못하고 호주 내에서 격리돼야 한다니 불안해서 살 수가 없었다.
아무튼, 9박10일(기내 두 밤 포함) 무사히 다녀왔다(5월 5-14일). 지각遲刻 방문기는 농번기인지라 바쁘기도 했고, 자칫 아내와 아들내외 자랑이 넘칠 듯해서 ‘팔불출八不出’소리 듣기 딱 좋기 때문에 미뤄 왔다. 흐흐. 그래도 할 수 없이 자판을 두들기는 까닭은 ‘추억은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일곱 밤을 아들네와 함께 지내며 관광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종합적으로 개괄槪括하는 까닭이다.
#1. 호주濠洲는 면적부터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의 70여배, 인구 2500여만명. 인구밀도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 대도시 몇 군데(시드니, 멜버른, 캔버라, 브리즈번 등) 아니면 국토 전체가 텅텅 비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평원과 불모지 사막투성이 나라. 멜버른을 가는데 싱가포르 환승을 포함해 15시간이나 걸리니(왕복 two night 허비), 완전히 오 마이 갓이다. 그리고 솔직히 한밤중에 고도 1만m나 되는 캄캄상공을 시속 800여km로 날아간다는 게, 생각하면 살이 떨리도록 두렵고 또 아찔한 일이다. 이대로 “쾅” 일거에 쥐도새도 모르게 가버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다행인 것은 아내와 나란히 손을 잡고 ‘죽을 수 있다’는 게 위안일까? 보고 싶은 작은아들과 새 아가를 보는 것은 바라고 또 바라던 일. 출발한 지 15시간만에 멜버른공항에서 반가운 허그를 하고, 곧장 점심을 먹자며 시내 음식점에 앉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첫 번째 간 곳이 <빅토리아주립도서관>. 도서관이 모든 시민에게 어떤 규제도 없이 완전 개방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1850년에 세워졌다하니, 역사도 꽤 됐다. 사서도 몇 명 없는 것같은데 이용자들은 침묵 속에 제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마침 ‘WORLD OF THE BOOK’전시회에서 한번도 내보이지 않은 책들을 진열해놓고 있는 것. 말로만 듣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마하트마 간디의 저서, 밀턴의 『실낙원』 시몬 보바르의 『제2의 성』 등의 책을 실제로 본 것은 감격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도립이나 국립 또는 국회도서관를 이처럼 자유롭게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책을 끼고 사는 제 엄마와 나를 위한 아들의 배려 덕분에 좋은 구경을 실컷 했다. 아내는 멜버른 출신 유명한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의 책과 동화책 ‘래비트’ 등 몇 권을 사다. 도서관은 이 나라 문화의 저력을 보는 듯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이어령 도서관’이 별세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져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2. 다음날 멜버른에서 40여km 떨어진 <단데농Dandenong산맥 국립공원> 트래킹에 나서다. 숱한 양치류 등 태고적 모습을 간직한 식물산림공원은 영화 ‘쥐라기공원’이나 ‘아바타’ 촬영지인 듯했다(미확인). 정상까지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산책하듯 걸어다녀온 기분은 엄청 삼삼했다. 어디 삼삼할 뿐인가. 살붙이, 피붙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야말로 최상이 아닌가. 이것 역시, 어디 여행만 가면 근처 둘레길, 올레길 걷기에 몰입하는 제 엄마 취향을 맞춘 스케줄. 내려오는 길, ‘서울뚝배기’라는 한식당에서 먹는 장터국밥은 또 어찌나 입에 감기던지. 단데농국립공원은 멜버른 관광의 히든카드로 불린다한다.
#3. 아들집으로 떠나기 전날 우리의 자랑스런 쉐프 백종원의 ‘본가’라는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백종원의 체인점은 동남아 등 10여곳에 진출했는데, 예약이 아니면 어림없다 한다. 백종원식 ‘우겹살’요리로 히트를 친 모양인데, 아들내외도 격주로 외식을 즐긴다했다. 소주가 17달러이니 겁나서 시키기도 어렵다. 좋았고. 오전엔 전통적인 벼룩시장flea macket 구경에 나섰고, 낙서골목grafitti street 등을 거쳐 야나강(yana river) 옆의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와인 한 잔을 하는데 환상적이다.
#4. 벌써 사흘째. 마침내 멜버른에서 한 시간여 달려 도착한 질롱GEELONG 아들네집 아파트 16층.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와 나는 눈부신 ‘오션 뷰OCEAN VIEW’에 ‘와우-’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럴수, 럴수, 이럴 수가! 이런 오션뷰를 감상하고 즐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감개무량. 남태평양 남단일 터인데, 일망무제, 막힘 하나 없는 수평선, 해안가의 소도시. 인구가 20만쯤 된다나. 변변한 아파트가 고작 두 동. 그중에서도 16층. 알록달록 수 백대의 요트가 정박해 있는, 무조건 한 폭의 그림도시이다. 아아-, 내 아들과 며느리가 이곳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정착을 했다는 게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정말 잘했다. 자랑스럽다. 뿌듯하다. 간호看護라는 직업은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일. 말 그대로 이타적利他的인, 신성한holy 직업인데, 천직으로 알고 선택하여 션샤인코스트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하여 certisfication과 영주권을 따낸 아들부부가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제주의 어느 곳에서 이런 오션뷰를 볼 수 있으랴. 마운틴뷰를 압도하는 광경이다.
#4.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들네집에서 빈둥빈둥 쉬고 싶은데, 좋은 곳, 맛난 곳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아들의 스케줄을 무시할 수 없어, 강행군을 해야 한다. 질롱에서도 2시간여 운전하여 역사적인 드라이브를 할 곳이, 빅토리아주 관광의 백미인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D’. 무슨 해안도로로 260여km가 된단 말인가. 서울에서 목포쯤 될까?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지는 대평원과 태평양 바다. 한 쪽은 지평선, 다른 쪽은 수평선. horizon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horison이 지평선과 수평선을 같이 뜻하는 줄 처음 알았다. 곳곳에 인생사진 찍기 좋은 전망대lookout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중에서도 꼭 가봐야 하는 곳이 ‘12사도apostles’. 오랜 침식작용으로 해안에서 떨어져나온 기기묘묘한 바위 12개가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듯하다고. ‘런던브리지’는 1990년에 해안선에서 떨어져 만들어졌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 1인 25달러한다는 헬기 관광을 강추하는데 거절했다. 돈도 돈이지만 이렇게 눈으로만 본다는 것도 대단한 호사豪奢인데 싶어서다. 260km 중간쯤인 ‘아폴로베이’주변에 예약된 펜션. 그곳에서 바라보는 오션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즉석에서 ‘일망무제一望無際’‘망망대해茫茫大海’‘창해일속滄海一粟’ 단어를 한자로 써 한글세대인 아들네에게 설명을 해줬다. 저 푸른 바다에 밤 한 톨도 안되는 우리 인간은 대자연 앞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바비큐파티. 아내는 연신 소고기가 너무 싸다며 많이 먹자고 구워댄다. 멋지다. 아름다운 밤이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같다. 인생사진 촬칵 촬칵. 바쁘기까지 하다.
#5. 돌아오는 길, 며느리가 운전하면서 양떼들이 모인 밭을 보며 ‘양밭’이라고, 말떼들이 모여 있는데 ‘말밭’이라고 하여 웃었다. 깜깜할 때까지 운전을 한 새아가에게 아내는 국제면허증을 해오지 못해 미안한 모양이다. 장거리 관광을 했다. 그러고도 질롱의 베트남쌀국수를 맛봐야 한단다. 질질 끌려다닌다. 어찌 가상하지 않는가. 저희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을 알려주고, 너무 무료하여 자주 이용하는 카페도 알려준다. 아들 말로는 “완전히 너무 심심한 천국boring paradise’라 한다. 천국은 천국인데, 너무 심심해 향수병鄕愁病homesickness이 심해 힘들다고 한다. 한국인 커뮤니티도 활성화되지 않고, 가까이에 친구 한 명 없으니, 유난히 정이 많고 소심한 아들이 그러고도 남으리라 싶어 안타깝다. 오죽하면 출근길 도로 표지판에 ‘keep left’영어만 봐도 왈칵 짜증이 난다니 이 노릇을 어찌할거나? 한글안내판 한 개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아들은 ‘지금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나’정체성identity의 혼란에 빠진 듯하다. 애비로서도 가슴이 아파 조선조 실학자 이덕무 선생의 호를 써주면서 조언을 했다. 이덕무의 호 중에 ‘오우아吾友我’가 있는데, 뜻은 ‘나는 나를 친구로 삼는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I friend me가 될까. 여기에서 friend는 동사로 ‘벗을 삼는다’는 뜻이리라.
#6. 다음날, 또 거리가 250km쯤 떨어진 국립공원에 가자며 아침 7시 서둘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 대평원의 끝은 어딜려나? 우리가 노래할 떼 ‘광활한 만주벌판’어쩌고 했지만, 이 벌판보다 넓을까 싶다. 사람도, 집도 거의 볼 수가 없다. 어떻게 무슨 농사를 지을까? 초보 농사꾼의 눈에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램피안 국립공원’은 순전히 돌산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 산을 오르는 게 큰일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뒷동산 오르기보다 쉬웠다. 해발 750m 정상pinacle에 서자 이런 장관이 없다. 바위들이 동글동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게 부안의 채석강 같지만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폭포는 인생사진 찍기에 딱 제격이고, ‘발코니’라는 전망대lookout에도 꼭 서봐야 한다. 도중에 제법 큰 고슴도치를 만났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한다’는 속담이 생각나 사진을 찍으며 웃었다. 야생을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행운이다. 더구나 호주의 상징인 ‘이무’도 보았고, 내려가는 길에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캥거루떼들을 볼 줄이야. 며느리의 “이곳은 캥거루밭입니다”는 멘트에 또 폭소.
#7. 아무리 편해도 여독旅毒이 쌓이는 것은 나이 탓일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에서 김치콩나물이나 끓여먹자고 했지만, 문제는 선물이다. 새아가가 아이디어를 낸다. 호주와 뉴질랜드 특산의 건강식품이 무릎관절에 특효인 ‘초록홍합green mussel 환丸’이란다. 옳다구나. 그것만 몽땅 사가자. 10여개를 챙긴 후, 작은엄마인 새 아기는 우리의 손자 선물 사기에 바쁘다. 강남 엄마들이 깜빡 죽는다는 브랜드 ‘스미글smiggle(smile+giggle)’이다. 일곱 살 어린이집 소풍가방과 필통 등, 애 선물만 해도 한 짐이다. 모처럼 조금은 릴랙스한 시간을 갖는다. 해안 둘레길을 걸으며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며 끊임없는 담소가 이어진다.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다.
#8. 마침내 가야 하는 날이다. pcr 검사를 위해서도 공항에 4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 중간에 ‘멜버른 미술관’과 ‘보타닉가든(식물공원)’을 들러야 한단다. 선진국답게 대도시 중심에 이처럼 규모가 큰 식물공원과 미술관을 시민들을 위해 공짜로 개방한다는 게 신기한다. 월러비공원의 ‘로즈 가든’은 주민들의 후원과 관리로 운영된다고 하니 대단하다. 보타닉가든에서 본 블랙스완black swan도 이채로웠다. 곳곳이 한 폭의 수채화이고 풍경화이다. 계절은 겨울 초입이어서 나뭇잎이 단풍이 들었다. 한가로운 선진국 어느 도시의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 미술관은 또 어떠한가. 미술 감상은 정말 힘든 일이다. 루부르박물관 <모나리자> 그림 한 장을 보기 위하여 몇 시간을 기다렸던가. 다리가 아파서도 더 못보겠다. 구경도 젊은 때에 해야 할 일이던가.
#9.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오는 가을에 다시 만나요. 아들내외는 ‘심심한 천국’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있다. 제발 얘들 바람대로 되기를 학수고대할 밖에. 브리지번 근처의 골드코스트 대학병원에 나란히 어플라이를 해놓은 상태. 그곳에서 오케이만 되면 곧바로 한 달 일정으로 고국 방문을 하려고 벼르고 있다. 그래, 너희도 4년만에 와봐야지. 아버지가 고향집을 어떻게 고쳤고, 할머니께 성묘도 해야 하고, 농사가 뭔지 구경이라도 해야지. 조카를 비롯한 형네 가족도 만나야 하고, 그리운 중고등학교 친구들도 만나 회포를 풀어야 하겠지. 아들아, 그럴 날이 금방 올 것이다. 그러니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관용구를 기억해두며, 우리 이제 헤어지자.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못만날 것을 염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이별은 너무 힘들고 서러운 것. 나같이 눈물이 많은 놈이 어찌 눈물이 나지 않으랴. ‘강한 것이 아름답다strong is beautiful’를 외치던 아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애교덩어리 새 아가도 어쩔 줄을 모른다. 그래, 우리 맘놓고 허벌나게 울면서 헤어지자. 하지만 믿을 것은 “우리는 곧 또 만난다는 것”.
#10. 평소 작은아들과는 성격이 맞지 않아 많이 다퉜다. 워낙 자기 주장이 강해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런 애가 제 어린 색시(2015년 10월 결혼했으니 햇수로 결혼 7년차이고, 새 아가는 만으로 28세이다)와 유학생활을 하면서 ‘철’이 많이 들은 것으로 보인다. 부모 생각을 어찌나 끔찍하게 하는지, 때론 민망할 때도 있다. 아무튼, 이번 여행에서는 아들과의 ‘갈등’이 말끔히 없어진 게 수확이라면 큰 수확. 언젠가 아들이 보내온 노트와 똥이 하나도 없는 볼펜 7자루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 쓴 글도 있지만, 저 혼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3급한자를 미친 듯이 공부했다는 것이다. https://cafe.daum.net/jrsix/h8dk/929. 같이 멜버른 시내를 돌아다니며 차이나타운의 상가 한자간판들을 착착 읽어내는 게 아닌다. 내 입장으로는 얼마나 신통하든지 머리를 몇 번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물론 간체자簡體字는 모르지만, 알려주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심심한 천국’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잘한 일이다. 한자를 안다는 것은 우리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를 알게 되므로, 독해력, 수학능력이 몇 배 향상이 되는 일이거늘, 한자를 전혀 모르는 한글세대들의 앞날을 늘 걱정하는 내 입장으로는 백퍼 환영할 일이 아닌가. 제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해 제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없는 20대, 30대는 고약하고 안될 일이지 않겠는가. ‘아주 한자 맞추기 내기를 하자;는 아들은 저 스스로도 대견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영어를 10년이나 꼬박 배운 나는 기초회화도 제대로 못하건만, 유학 7년만에 거의 원어민 수준이라는 아들과 며느리는 얼마나 노력을 했으면 그리 될까 궁금하다. 텔레비전 프로의 90%를 알아듣고, 일상생활은 거의 완벽하게 '노 플라블럼no prolbem'이라니, 믿기 어렵다. 내가 '모지리(모지란 놈)'일지니.
후기: 아들과 새 아가에게 바란다. 네 명이 여행하면서 여러 번 얘기했지만 “아들 며느리 덕분에 호강한다”는 말만은 어느 경우에서도 진심인 것을 잘 알 것이다. 비록 머나먼 타국에서 외롭고 힘들지만, 콩깎지가 끼어도 단단히 낀 사랑하는 옆지기가 언제나 든든히 옆에 있는 만큼 초심初心을 잃지 말고 늘 짱짱하게 잘 지내기만을 빈다. 사랑한다.
후기: 나는 아들에게 박노해의 <걷는 독서>와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선물하고, 나는 여행 중 아들집에서 발견한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사흘간 새벽마다 읽어 독파했다. 아들은 인문학적으로 너무 어렵고 머리 복잡한 책들을 읽고 있기에 김진명 작가가 쓴 재밌는 소설 등을 읽기를 권했다.
첫댓글 참 넓은 나라인데, 우째 움직이면 200킬로 헐!
성문 영문법 줄줄 꿰는 난 아직도 회화 젬병인데, 그집 막내는 늦게 공부해서 호주 용주권까지 대단한데.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