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 중문농협 조합원인 강주석씨(오른쪽)가 군납 식자재 경쟁입찰 도입으로 군납 길이 막힐 수도 있다는 소식에 열매솎기(적과) 작업을 마친 한라봉을 중문농협 직원과 함께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제주 직계약 공급 농가 ‘허탈’ “물량부족 때도 성실히 군납 그 대가가 이렇게 돌아오나” 군급식 부실, 운영시스템 때문 애꿎은 농민에 피해 전가 문제 농협, 공동선별출하 관리 철저 저가경쟁 땐 품질저하 불 보듯 “농민은 어떵 살랜 말이우꽈(농민은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에서 약 7273㎡(2200평) 규모로 노지감귤과 한라봉을 재배하는 군납농가 강주석씨(68). 강씨는 국방부가 군급식 농축산물 공급방식을 경쟁입찰로 변경할 예정이란 소식에 맥이 빠진 모습이었다.
예전 같으면 국군 장병들에게 맛있는 감귤을 먹이겠다는 생각으로 40℃를 웃도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한라봉 열매솎기(적과) 작업에 여념이 없을 때다. 하지만 요즘엔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앞으로 군납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처지에 놓여서다. 중문농협(조합장 김성범) 조합원인 강씨는 그동안 농협을 통해 군납용 감귤을 출하해왔는데, 경쟁입찰 도입으로 만에 하나 농협이 입찰에서 탈락하면 사실상 군납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강씨는 “최근 불거진 군급식 부실 사태는 식자재 품질이나 공급방식의 문제라기보다는 군급식 운영시스템을 원인으로 봐야 한다”면서 “그런데 이번 사태와 아무 관련 없는 식재료 납품방식에 손을 대 애꿎은 농민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농협은 2014년부터 군수지원사령부와 직계약을 맺어 군 장병들에게 감귤을 공급해왔다. 이전에는 국방부 방침에 따라 개별 군부대와 인근 지역농협이 1년 단위 계약을 하면 제주지역 농협이 해당 농협에 감귤을 납품하는 방식이었다. 그 후 유통과정 간소화를 통한 양질의 감귤 제공을 위해 국방부와 협의를 거쳐 직계약 체계로 바꾼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지역은 중문농협, 제주시지역은 조천농협(조합장 김진문)이 주관 농협으로서 도내 다른 농협들과 함께 감귤 군납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엔 약 1600t(노지감귤 1100t, 한라봉 500t)의 감귤이 장병들의 식탁에 올랐다.
김성범 조합장은 “농가들은 매년 계약물량에 따라 감귤을 계획생산하고 있다”면서 “다년간 경험이 쌓이면서 원활한 공급체계가 구축돼 앞으로 물량과 품목을 확대하려는 찰나에 발표된 경쟁입찰 도입방침은 이 같은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 말엔 한라봉 시세가 높고 물량도 부족해 납품에 어려움이 컸지만, 제주 감귤을 국군에게 보낸다는 상징성과 자부심 그리고 책임감에 손해를 보면서도 공급을 마쳤다”면서 “오랫동안 군납에 성실히 임한 대가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니 허탈하기 그지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농가와 농협은 경쟁입찰 도입이 계획생산과 판매에 차질을 주는 것은 물론 저가 경쟁으로 인한 품질 저하도 불 보듯 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강씨는 “농협에선 당도 선별을 통해 기준 이하 상품은 애초에 군납용으로 분류하지도 않는다”면서 “공동선별출하회 등 탄탄한 조직을 기반으로 품질을 관리하는 농협보다 저가를 앞세운 일반 업체가 나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김 조합장은 “젊은 장병들을 미래 잠재 고객으로 설정하고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납품 기준보다 높은 품질의 감귤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저가 입찰과 과잉 경쟁으로 품질이 저하되면 제주 감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감귤산업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방부의 성급한 정책 발표를 꼬집는 의견도 제기됐다. 진재봉 중문농협 유통사업단장은 “경쟁입찰 방침만 발표해놓고 입찰방식이나 일정 등 세부지침은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판매 예상량에 따라 생산물량을 정해야 하는 현장에선 정책의 불확실성 탓에 벌써부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불안한 정책 때문에 식자재 조달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제2의 군급식 부실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제주농협은 최근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 서귀포)과 농정간담회를 개최하고 기존 군납체계 유지 등 현안을 논의하고 정책을 제안했다. 위 의원은 이 자리에서 “농업계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제주농협은 앞으로 감귤류 직납 체계의 효율성과 경쟁입찰 도입 시의 부작용을 대내외에 알리는 농정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서귀포=심재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