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한방울'로 암 조기에 잡는 시대 열리나
혈액 속 DNA 검출해 암 확인
경과추적 등 이미 활용… 조기 진단 사용 임박
1회 혈액검사로 50여종의 암을 검출, 연구 발표
혈액 검사만으로 암을 조기 검진 할 수 있는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암’은 인류를 오랜 기간 악질적으로 괴롭히고 있는 질환이다.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도 암이다.
암으로부터 해방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조금이라도 일찍 알아채는 것이다. 췌장암, 대장암 등이 위험한 이유도 말기까지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손쉽게 하는 검사 중 하나인 혈액검사로 암을 진단할 수 있다면 어떨까? 자주 간편하게 검사가 가능해 조기 진단율이 높아지고, 생존율도 높아질 것이다. 그런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 혈액 속으로 방출된 DNA를 분석해 암 확인
암을 진단하는 건 쉽지 않다. 조기에 발견하는 건 더 어렵다.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선별검사로는 유방 X선 조영술(맘모그램), 분변검사, CT촬영, 내시경 등이 있는데, 검사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환자에게 불편한 과정이 포함돼 있다. 또 유방암은 유방암 검사, 폐암은 폐암 검사 등 암종 별로 각각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 한 번으로 완벽하게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면 감수할 수 있는 과정일지도 모르나, 아직 100% 민감도와 특이도를 가진 진단 방법은 없다. 민감도는 암 환자 중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의 비율, 특이도는 암이 없는 사람 중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정확하게 암을 진단하거나 치료 효과를 확인하려면 실제 조직을 추출해 검사해야 하는데, 이는 먼저 암 조직이 확인돼야 하기에 진단법으로는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혈액검사로 진단과 치료 효과까지 알 수 있는 방법인 ‘액체생검(liquid biopsy)’이 약 10년 전 제기되자 단숨에 암 치료 분야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암 조직이 아닌 암세포나 암 주변 세포에서 혈액으로 배출된 사이토카인 등과 같은 단백질, DNA 등 바이오마커를 분석하는 기술이다. 가천대 길병원 유전체의과학연구소 안정민 교수는 “여러 바이오마커 중 최근에는 세포에서 혈액 속으로 들어온 DNA인 cfDNA(cell free DNA)를 분석하는 방법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 세포든 암세포든 모든 세포는 핵 안에 DNA를 담고 있다. 세포가 죽게 되면 이 DNA들이 혈액 속으로 배출된다.
이게 cfDNA다. 정상 세포의 cfDNA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만, 암세포 cfDNA는 손상이 발생해 구별이 가능하다.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종원 교수는 “밝혀진 특정 돌연변이 범주 안에서 암이 어느 장기에 퍼져있고, 어디에서 파생된 암인지도 알 수 있다”며 “혈액 검사로 cfDNA를 분석하면 수백 개의 유전자를 알 수 있는데, 암이 생긴 위치에 따라 그 유전자 조합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수십 개의 유전자 조합을 동시에 확인해 여러 암을 진단하는 건 난도가 높고, 정확도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 cfDNA 분석 기술, 초기 암 민감도 아직 낮아
조기진단으로 큰 효용성이 있으려면 암 병기가 1기일 때부터 높은 정확도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1, 2기에 추적되는 암세포의 cfDNA는 양이 매우 미미해 민감도가 높지 않다. 미국 일루미나 자회사 그레일이 2019년 5월 개최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발표한 연구에서 암을 12종류로 한정 지어 진단했을 때 총 민감도는 76%정도 였다. 병기별로 보면 1기 34%, 2기 77%, 3기 84% 정도다. 암이 최초로 발생한 조직 예측도는 95%였고, 암이 없는데 있다고 잘못 판단된 정도는 1% 미만이었다.
cfDNA는 암 치료 분야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안정민 교수는 “cfDNA를 이용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뉘어 연구되고 있는데, 암 환자의 경과를 추적하는 방법, 사용하면 좋을 표적항암제를 매칭하는 방법 그리고 조기진단에 사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뉜다”며 “앞선 두 가지는 이미 사용되고 있고, 조기진단에 필요한 기술은 다른 것에 비해 난도가 높아 아직 실제로 사용되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암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는 유용하다. 먼저 경과 추적을 할 수 있다. 수술이나 치료 이후 혈액 검사로 확인되는 cfDNA양을 비교 분석할 수 있다. 완치된 암 환자라면 정기 혈액검사로 cfDNA량 추적으로 재발을 확인할 수 있다. 김종원 교수는 “전이된 암이라면 CT를 찍어도 어디서 시작된 건지 확인이 불가능한데, cfDNA를 분석하면 알 수 있다”며 “훨씬 효과적인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용할 표적 항암제를 선정하는 데도 유용하다. 안정민 교수는 “cfDNA를 분석해 어떤 돌연변이가 암을 유발했는지 알 수 있다”며 “이 기술로 환자에게 필요한 표적항암제를 수월하게 매칭할 수 있어졌다”고 말했다.
◇ 50가지 암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연구까지 나와
조기 진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연구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1회 혈액검사로 50여종의 암을 검출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글릭만 비뇨기과와 신장 연구소 에릭 클라인(Eric A. Klein) 박사 연구팀은 암 환자 2823명과 암이 없는 환자 1254명을 대상으로 cfDNA를 확인하는 검사인 MCED 검사를 진행해 민감도, 특이도, 암 발생 예측 정확도 등을 측정했다. 그 결과 암 신호가 50개 이상의 암 유형에서 감지됐고, 특히 효과적인 선별도구가 없는 암에서 높은 민감도를 기록했다. 발견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췌장암, 간암, 식도암 등에서 민감도가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다만 검사의 여러 암 유형을 한 번에 감지하다 보니 민감도는 떨어졌다. 병기별로 1기 환자의 민감도는 16.8%, 2기 환자는 40.4%, 3기 환자는 77%, 4기 환자는 90.1%였다. 암이 없는 사람에게서 암이 있다고 나타날 확률은 0.5%로 적었다. 연구팀은 “50세 이상 암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선별하기 위한 도구로는 배포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고 유용하다”면서도 “다만 초기 암에 대한 민감도는 아직 낮아서 기존 선별 검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해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 혈액 검사로 암 진단하는 미래 조금씩 다가오고 있어
혈액 검사만으로 암을 조기 검사할 미래는 분명히 차근차근 다가오고 있다. cfDNA로 암을 조기 진단하기 위한 연구와 기업의 노력은 계속 진행 중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10여개 정도의 기업이 노력하고 있으며,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기업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낙관론을 경계했다. 김종원 교수는 “분명히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조기 검진으로 활용되기 위해 초기 암을 검진해낼 수 있는 돌파구 기술이 나올 때까진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정민 교수는 “초기 암의 민감도가 낮긴 하지만 위양성이 낮고 암은 조금이라도 일찍 발견되는 게 생존율을 높인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지금 나온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의미는 있다고 본다”면서도 “건강검진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데이터와 민감도를 계산해 효용성을 검증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이라고 말했다.
(2021년 6월 29일 헬스조선) / 이슬비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