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일본의 검술이 도입된 시기는 조선의 영,정조대왕 때입니다.
당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직후로 조선국과 왜국은 그냥 사이가 안 좋은 나라가 아니라 적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국 정부는 왜국과의 교역을 일체 금지하면서 특히 조선국의 쌀이 왜국으로 반출되는 것을 매우 엄격하게 통제하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조선국 정부에서는 왜국에 쌀을 주고 대량의 일본도를 밀수입 하였고, 이를 조선의 군졸들에게 지급하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군인들에게 왜검의 수련을 강조하였고 심지여는 무신으로서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왜검(일본도)의 사용에 능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국은 두 차례 왜국과의 전쟁을 겪으면서 왜검의 우수성과 파괴력을 실감하였고, 따라서 비록 적국의 것이라 하더라도 우수한 것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우리의 국방에 이롭게 하자는 당대 실학사상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검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대한제국 때입니다.
대한제국은 조선국의 법통을 이어받은 근대국가로서 군대와 경찰이 분리되고, 학교가 생기고...기타 등등 중세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춰가던 시기라 할 것입니다.
이때 치안의 목적이라는 필요에 따라 일본의 격검이 도입되었고, 대한제국의 경찰들에 의해서 수련되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에는 격검이라는 이름으로 수련이 되었는데...이는 일본의 '경시청류격검형'으로서 현재의 검도(대한검도회, 전일본검도연맹)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후에 대일본제국검도형의 제정으로 경시청류격검형도 그 명칭이 검도로 바뀌게 됩니다.
아무튼...대한제국의 고종황제께서는 대한제국의 경찰들에게 격검(검도)를 수련케 하시었고, 대한제국 경찰과 일본제국 경찰 간의 친선 시합을 황제의 어전에서 치루게 하심으로써 그 수련의 성과도 친히 확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이후 대한제국이 주권을 일본제국에 이양하면서 부터 심히 강아지스러운 세월이 시작 되었습니다.
일본제국은 메이지시대와 다이죠시대를 거쳐서 드디어 쇼와시대에 이르게 되었고 이때에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가장 쥐랄를 떨치는 시대가 됩니다.
당시 일본제국 정부는 중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에서는 유도와 검도 중 하나의 무도를 선택하여 의무적으로 수련케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중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에 진학하였던 사람이라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유도나 검도를 수련하여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학교, 대학에 진학한 지식인들은 친일파, 좌익, 민족주의 등을 불문하고..암튼 핵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무조건 유도나 검도를 해야만 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면서 일본에서는 미군정이 실시되었고...현재 전일본검도연맹의 전신인 대일본무덕회는 전범단체로 찍혀서 강제로 해산이 되어버립니다. 이후 일본국이 다시 주권을 회복하면서 전일본검도연맹이 결성되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한반도에서도 미군정 이후 대한민국이 수립되어 자주독립국가로서의 주권을 회복하는데...이때 검도는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라 하여 수련이 금기시되고 경찰 등에서도 잠시 수련이 금지됩니다.
하지만 곧 다시 치안과 교도행정상의 필요에 의하여 검도의 수련을 권장하게 되었고, 당시의 대한검사회가 대한검도회로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검도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검도는 본래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자주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며, 특히 개인보다는 정부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치안, 교도행정 등에서 지대한 공헌을 해 온 것도 분명 사실이고, 지금 현재도 치안과 교도행정등에서 그 역활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생활스포츠로서 다시 거듭나고 있습니다.
영정조시대 이전부터 정부는 외놈이라고 불러 매우 천시 하였으나 남쪽의 외구들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달래는 격으로 3개항을 개항하여 교역을 하게 하였으며 그러던중 우리나라의 문물이 일본에 건너가기도하고 일본의 문화가우리나라에 들어오기도 하였는데 이때 일본검돌르 하는자가 매우 뛰어남이 인정을 받아 높은
첫댓글 보충설명 감사합니다 ^^*
영,정조시대에...백성들한테는 일본에 쌀을 반출하지 못하게 했으면서...정부는 일본한테 쌀을 준거네여...ㅡ.ㅡ;...ㅋㅋㅋ..고럼 정부가 법을 어긴거져..그땐 일본에 쌀 못주게 하는게 국가보안법가튼 거니까여...옛날이나...지금이나...별로 다를게 업네여...ㅎㅎㅎ
아마 영조랑 정조가 지금 사람이었다면여...통치행위??였으니까.....백성들은 상관마라고 했겟져???...ㅡ.ㅡ;;ㅋ
글구여..대한제국???..무니만 제국이지 그때도 일본식민지나 다름없지 않았나여???....그땐 정말로 우리나라가 필요해서 대한검도를 한게 아니구 일본이 하라고 시킨게 아닌가여???
영정조시대 이전부터 정부는 외놈이라고 불러 매우 천시 하였으나 남쪽의 외구들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달래는 격으로 3개항을 개항하여 교역을 하게 하였으며 그러던중 우리나라의 문물이 일본에 건너가기도하고 일본의 문화가우리나라에 들어오기도 하였는데 이때 일본검돌르 하는자가 매우 뛰어남이 인정을 받아 높은
관직을 받은 사실이 있는바 이는 현재의 통치행위와는 별개이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우리나라는 무를 천시하여 맥이 끊어진 상태에서 무예를 장려하기 위해 일본의 검술뿐만 아니라 중국의 무예도 받아 들인걸로 알고 잇습ㄴ다. 결론의 우리의 필요에의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