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이 속한 직장 모임의 회장님이 나와 한번 통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라고 했더니 얼마 후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해군 OCS 52기 회장이라며, ‘북극항로’에 대해 강연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도 해군 출신인데, 기꺼이 해야지요.”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OCS는 Officer Candidate School의 약자로, 군사훈련학교 출신 장교를 뜻한다. 흔히 ‘특교대’로도 불린다. 정규 해군사관
학교 외에 우수한 위관급 장교를 선발하기 위해 대학 졸업자들을 모집해 약 6개월간 교육한 뒤 임관시키는 학사장교 제도다.
우리는 ROTC로 해군에 입대해 항해·기관 분야에서 2년 1개월을 복무했지만, OCS 출신 중에는 3년, 혹은 5년 이상 복무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OCS 52기를 중심으로 바다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포럼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름은 ‘서해’라고 했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서해를 떠올렸지만, 뜻은 전혀 달랐다. 맹세할 ‘서(誓)’ 자와 바다 ‘해(海)’ 자를 써서, 말 그대로 바다에 충성을 맹세
한다는 의미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해병대의 구호가 떠올랐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
또 한편으로는 해기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해양대학의 옛 학훈도 생각났다. 종합대학으로 전환되기 전, 그 학훈은 단순하면
서도 강렬했다.
‘바다에 매골(埋骨)’,
즉 바다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였다.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상선에 올라 물류 수송을 위해 5대양 6대주를 누빈 사관들은 많다. 그러나 스스로 바다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 곧 ‘바다에 매골(埋骨)’을 진심으로 원했던 사람은 내가 알기로 거의 없었다. 그것은 결의라기보다 다짐에 가까운 말이었
고, 상징적인 표현이었다. 누구나 무사 귀환을 꿈꾸며 승선했고, 가족이 있는 육지를 마음에 품고 바다로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때로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을 거두어 간다. 사고로 배가 침몰해 선원들이 함께 수장된 일은 드물
지 않다. 그런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부산 태종대 입구에는 선원 위령탑이 세워져 있고, 해마다 관련 단체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그곳에 서면 바다는 더 이상 낭만이나 산업의 공간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엄숙한 장소로 다가온다.
나와 함께 승선했던 한 후배도 그런 경우였다. 호주에서 광석을 싣고 귀항하던 중 태풍을 만나 배가 침몰했고,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바다에 매골한 셈이 되었다. 최근에야 그의 부인이 선원 위령탑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한번 가보고 싶다는 뜻을 지인을 통해 내게 전해왔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그곳을 함께 찾아 안내해 주어야겠다는 생각
을 한다. 말 한마디 건넬 수는 없겠지만, 바다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도 남은 자의 도리는 다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바다에 맹세한다’는 말과 ‘바다에 매골한다’는 말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표현이 아닐까. 하나는 살아 있는 자의
각오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각오가 운명으로 굳어졌을 때의 모습이다. 바다는 그렇게 우리에게 삶의 터전이자 시험대이며, 때로는
마지막 안식처가 된다.
우리나라는 분명 반도 국가다. 그러나 북쪽이 막혀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삼면이 아니라 사방이 바다로 열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 우리가 숨 쉬고 먹고 사는 길은 대부분 바다를 통해 이어진다. 자원도, 에너지
도, 교역도, 결국은 해상로 위에 놓여 있다.
일찍이 영국의 월터 롤리 경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제국주의의 언어로 들릴 수도 있지만, 오늘
날에는 생존 전략의 언어로 읽힌다. 바다를 이해하고, 바다를 지키고, 바다를 활용하지 못하는 국가는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의 역사 속에는 바다를 무대로 한 위대한 기억이 흐르고 있다. 동북아 해상 교역을 장악했던 해상왕 장보고, 그리고 임진
왜란 당시 고작 13척의 배로 130척의 왜군을 물리친 성웅 이순신 장군. 그들의 피와 정신이 과연 우리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되 경외했고, 무모하지 않되 물러서지 않았던 그 정신은 지금도 우리의 DNA 어딘가에 녹아 있을 것이다.
바다는 말이 없다. 그러나 늘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맹세와 희생, 도전과 책임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래서 바다에 서면 사람은 자연스레
겸손해지고, 동시에 큰 꿈을 품게 된다. 바다에 맹세한다는 것, 바다에 매골한다는 것은 결국 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이 나라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분명하다. 그 길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바다 위에 놓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