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에 영국은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었다. 그리고 지난주 비틀즈는 그곳을 되찾았다.”
1964년 2월 미국 주간지 라이프는 영국 리버풀 출신 록 밴드 비틀즈의 미국 방문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영국 록 음악에 대한 미국의 완전한 항복이나 다름없는 표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경제적인 호황을 맞았다. 전쟁의 폐허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됐고, 소득이 높아진 영국인들은 전에 없던 풍요함을 누렸다. 먹고 살 걱정이 없어진 부모 밑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대중문화를 소비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표되는 미국 로큰롤은 영국 젊은층으로부터도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 로큰롤의 영향으로 1960년대 들어 영국에서도 록 밴드들이 대중음악의 중심에 서게 됐다. 비틀스, 롤링 스톤스, 닉스, 애니멀즈 등은 미국 로큰롤에 자신들의 색깔을 입힌 음악으로 음반 순위를 석권했다. 그리고 이들은 더 큰 시장, 즉 미국으로 눈길을 돌렸다. 대중음악사에서 이른바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때마침 당시 미국 음악 시장은 침체돼 있었다. 1958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군에 입대하고, 1959년 버디 홀리, 더 빅 보퍼, 리치 발렌스가 비행기 사고로 한꺼번에 숨진 이후 로큰롤은 일대 위기를 맞았다. 영국 뮤지션들 입장에서 보면 미국 시장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나 다름없었다.
1964년 2월 7일 영국 록밴드 비틀즈가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침공에 앞장선 밴드는 비틀즈였다. 이들이 발표한 곡 “I Want To Hold Your Hand”는 1964년 1월 25일 미국 빌보드 핫100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같은해 2월 7일 비틀즈가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자 미국의 신문과 방송은 앞다퉈 ‘비틀마니아(Beatlemania)’ 현상을 다뤘다. 이틀 뒤 비틀즈가 출연한 ‘에드 설리번 쇼’의 시청률은 이례적으로 높은 45%, 시청자 수는 7300만명을 기록했다.
비틀마니아 현상은 미국에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비틀즈가 미국을 방문한 9일 동안 미국인들은 비틀즈 음반 200만장과 비틀즈 관련 굿즈 250만 달러 어치를 구입했다. 비틀즈 밴드 로고나 멤버 사진이 들어간 모자, 티셔츠, 바지는 물론 비틀즈 잠옷과 과자까지도 불티나게 팔렸다. 남성 팬들은 비틀스 멤버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따라했다. 비틀즈가 전통적인 미국 남성 패션을 바꿔놓은 게 바로 이 때였다는 얘기도 있다.
비틀마니아 현상은 비틀즈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계속됐다. 같은해 4월 4일에는 비틀즈의 노래 5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부터 5위까지 ‘줄세우기’를 했다. 미국 대중음악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일부 미국 뮤지션들은 비틀마니아 현상에 편승해 “We Love You Beatles”(더 케어프리스), “I Understand Them(A Love Song to the Beatles)” 등의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비틀즈는 미국 공연·미디어·음반 업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대형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한 최초의 뮤지션이며, 음악과 영상을 결합한 뮤직비디오를 선보인 첫 뮤지션이다. 싱글 중심이던 음반 시장을 앨범 중심으로 바꿔놓은 장본인도 비틀즈다.
비틀즈가 시작한 브리티시 인베이전에는 수많은 영국 뮤지션과 밴드들이 속속 참전했다. 특히 롤링 스톤즈는 비틀즈와 함께 성공적인 양동작전을 펼쳤다. 미국 로큰롤 뮤지션 척 베리의 “Come On”을 커버한 곡으로 데뷔한 이들은 비틀즈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써준 곡 “I Wanna Be Your Man”으로 인기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I Can′t Get No) Satisfaction”은 1965년 7월 17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훗날 미국 록 음악 성장의 발판이 됐다. 비틀즈가 음악 작곡 측면에서 다양한 모티프를 제공했다면, 롤링스톤즈의 자유롭고 퇴폐적인 이미지는 록 음악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틀즈와 함께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대표 록 밴드로 꼽히는 롤링 스톤스.
피용익 / 이데일리